한국 방문은 20년 만이다. 짧게 체류하며 여러 미술아카이브를 방문하는 동안 이전과 달라진 풍경이 놀라웠다. 나는 도쿄문화재연구소에서 자료의 수집·정리·보존·제공을 담당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 업무를 둘러싼 전제와 속도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껴졌다. 단순한 보존을 넘어, 이를 사회에 환원하고 새 의미를 부여하려는 열정이 관계자와 시설에서 느껴졌다. 기록은 시간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동적인 기반’이라는 생각이 뿌리내려 있는 듯했다. 그중 한 예가 김달진미술연구소다. 사설 기관이지만 설립 이래 선구적으로 미술 자료를 체계화하여 오랜 기간 일반에 공개해왔다. 특히 『서울아트가이드』와 연계 체제를 구축하고, 김달진 소장의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강점이다. 온라인에 정보를 발신하면서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라는 전시장을 갖추어 이용자가 직접 원본 자료를 접할 수 있다. 민간 기관이지만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4년 8월, 일본 아트도큐멘테이션에서 주최한 “미술문화재 정보 네트워크화”를 위한 효고현립미술관 국제 세미나에 한국 발제자로 김달진 소장이 참석했을 때 만난 인연이 있었다.



좌) 박래경 큐레이터의 구보타 시게코 여사를 추모하는 편지 ⓒ 김달진미술연구소 디지털 아카이브
우) 도쿄문화재연구소 소장, 미키 타몬의 옛 소장 자료 중 구보타 시게코의 편지


최근 한국의 국공립·기업 산하의 여러 기관이 각각의 강점을 살린 다양한 발전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최신 장비와 AI를 활용한 시소러스(thesaurus) 구축에 힘쓰며 검색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국의 분관을 활용해 근현대 미술을 포괄적으로 체계화하며, 리움미술관은 비평가 자료와 구술 역사를 결합해 기록과 이야기를 통합한 아카이빙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아카이브가 다양한 주체의 협업과 경쟁을 통해 성장해 왔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일본과 한국은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과거의 사건이 현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양국의 미술 연구자가 자료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나누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교류와 역사 인식의 심화에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정점 관측’으로서 아카이브는 민감한 과제를 다루는 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의 아카이브 역시 오랜 수집을 통해 풍부한 자료를 갖추고 있다. 전국 미술관과 연구 기관에 수집된 자료는 목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도쿄문화재연구소에는 20세기 초 도쿄에서 활동한 한국 화가를 조사하는 연구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백남준의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에 관한 1차 자료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화나 통합 검색 체계 구축은 한국에 비해 신중한 편이며, 저작권과 예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미술사 연구에서 아카이브 활동은 기상 관측과 같은 ‘정점관측’과 유사하다. 각 기관이 일정한 관점으로 미술계의 완만한 흐름을 지속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언뜻 무관해 보이는 전시회나 미술 비평, 작품 제작의 움직임이 동시대적인 연결고리로 드러난다. 아카이브는 역사를 구성하는 소재를 조용히 모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장치이다. 만약 일본과 한국의 아카이브가 연계되어 자료와 메타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 미술사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다. 양국의 시소러스 통합을 통해 국경을 넘는 검색이 가능해지고, 공동 디지털 전시회는 문화적 배경을 상호 보완할 것이다. 물리적 교류뿐 아니라 데이터 차원에서의 협력이 미래의 가능성을 넓힐 것이다.

아카이브는 미래의 역사 서술의 기반이다. 축적된 자료와 증언은 미지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이를 발굴하는 것은 후대의 연구자와 시민이다. 현재의 수집·보존·공개가 100년 후의 문화 형태를 결정짓는다.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얻은 자극을 가슴에 품고, 한일 양국이 쌓아온 축적을 모아 풍부한 문화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조용하지만 확실한 사명일 것이다.



킷카와 히데키, 김달진, 타시로 유이치로
2025.6.23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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