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공조로 짜여지는 세계

  

이선영(미술평론가)

  


문보리의 [시간의 소리, 감각의 파동] 전은 관객의 참여에 의해 맥박 소리가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 소리의 파장은 색색의 실로 구현된다. 미세한 변화를 기록하는 파장이 시각화될 때 가느다란 실같은 느낌이 있다. 어린이 장난감 중에 실로 연결된 전화기도 있지 않나. 소리를 이미지로 번역하는 작품은 각 쟝르 고유의 언어에 치중하던 순수주의를 벗어나 여러 감각을 교차시킨다. 하지만 여기저기 어설프게 걸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문보리의 작업은 치밀하면서도 융통성이 있다. 결국 작가란 자기의 방식으로 세상을 다시 쓰는 사람인데, 그의 경우 짜기가 기본언어가 된다. 자기 언어가 확실하면 말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며 새로운 시도 또한 가능하다. 융합이나 통섭의 조건은 넓이가 아니라 깊이이다. 깊이로부터 나오는 넓이가 요구된다. 그의 작품은 시계같은 정교한 내부기관을 갖추고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한다. 



기억, 알고리즘, 시그널_흙으로부터, 2025, LVS 갤러리 전시전경


관객의 이동 시점에 따라 마술처럼 색이 다르게 입혀지는 면들은 기술과 예술과 마술의 접점에 있다. 직기뿐 아니라 컴퓨터라는 유용한 그릇에 한데 담긴 다양한 감각들은 기계가 몸 뿐 아니라 정신의 확장이기도 함을 알려준다. 인류에게 유용한 도구인 직기가 씨실과 날실로 천을 짠다면, 컴퓨터는 정보를 0 또는 1의 비트로 저장해서 순서대로 연산하는 방식을 따른다는 점에서 비교될 수 있다. 기술의 역사는 양자의 관계가 단지 비유적 차원을 넘어서 매우 근접함을 보여준다. ‘짠다’는 단어는 직물이나 프로그램에 공통어로 쓰인다. 직물에 무늬가 짜여진다면 컴퓨터의 경우에는 알고리즘에 의한다. 인지과학과 공감각적 예술에 대한 중요한 가이드가 되는 저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에서 ‘어떤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특별한 윤곽의 서술은 정의들의 연속체로 이루어지며, 그 각각은 이전에 정의된 과정들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직물이든 프로그램이든 자기 안에 내재하는 규칙들을 따르게 마련이다. 촘촘하게 짜여진 작품 사이로 느슨하게 실타래를 남겨놓은 한 작품은 그것이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을 노출한다. 직기 앞에 앉아 손수 다듬은 실들을 교차시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단지 한 공간에 자리하여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들었다는 차원이나 짜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공간적 지각과 시간적 기억을 함께 짜 넣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언어도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직기의 원리가 컴퓨터와 비슷하기에 양자의 융합은 내재적이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에 의하면 융합이란 원래는 인접하지 않은 두 개(또는 그 이상의)의 기호들이 공동 활성화에 참여하고 메시지들이 점점 집약되어 마치 하나의 기호인 것처럼 결속될 경우에 일어난다. 기호의 그물조직의 대부분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두 기호의 그물 관계의 밀접함이 성립된다.



 Weave Wave_B_Violet toward F. Pink, 2025



 Weave Wave_B_Violet toward Gray, 2025



소리-색 알고리즘 불정역, 2025-1


이를 통해 정확한 번역은 불가능해도 대략적인 번역 등가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보리의 공(共)감각적 작품은 여러 기호들로 엮인 망으로, 여기에서 감각 간의 불연속은 있지만, 그 또한 주어진 것을 그대로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다시 쓰는 방식이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을 텍스트로 바꿀 때 가능하다. 텍스트 이론은 세상의 모든 것을 텍스트, 즉 ‘짜여진 것, 얽힘, 짜여진 방식’으로 이해한다. 작품을 텍스트로 다시 보는 것은 네트워크화된 세계와도 조응한다. 텍스트 이론을 널리 알린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텍스트는 닫혀있는 정의가 아니라 무한한 구조가 있으며 복수 언어적이다. 코드들의 무한한 역동성은 다양한 의미를 가능하게 한다. 연속적인 결합을 통해 확장되는 텍스트는 상호텍스트가 되어 서로를 참조한다. 텍스트는 ‘공통적인 주제나 화제로 서로 연결된 절들의 일관성 있는 연속체’(움베르토 에코)로 정의한다. 


최초의 본질이나 기원이 아닌, 선행 언설들로 짜여진 텍스트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과 관련된다. 코드화된 기호체계로 세계를 완전히 재현할 수는 없지만 의미작용의 보편적 관계를 찾아내려는 욕망은 세계를 주파한다. 복잡한 증후들로 가득한 세상은 여러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상호보충적으로 이해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텍스트는 원초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고 불완전한 원초적인 것을 대신하는 보충만이 있을 따름이다. 세계는 ‘차이적 관계 및 참조관계의 그물망’(데리다)이다. 디지털일수록 아나로그가, 아나로그일수록 디지털이 필요한 과도기에 살고 있다. 어느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은 맹목과 공허로 이어질 뿐이다. 칸트는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고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제 내용은 아나로그, 형식은 디지털이라고 해야 할 만큼 가상현실의 비중이 더욱 커진다. 물론 현대예술을 거치면서 내용의 형식, 형식의 내용이라는 보다 통합적인 방식이 제시되었다.



. Color Spectrum 시리즈, 2025 



우물 그리고 실마리, 2025 (바깥부분)



우물 그리고 실마리, 2025 (안쪽)


하지만 형식주의의 그림자는 예술을 다시 장식화했다. 텍스트 이론이 전제하는 ‘작가의 죽음’ 까지는 아니어도 현대의 작가는 창조자보다는 매개자에 더 가까와진다. 여러 가지 실로 짜는 문보리의 작업은 은유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실을 빛으로 본다. 빛이 만든 색을 실로 쌓으면 빛이 쌓이고 이것은 색면이 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빛은 전자기기 뒷면의 복잡한 전선 뭉터기같은 선들에 적용되었다. 빛-선은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와 비유된다. 빛은 디지털의 장점이 속도임을 은유한다. 보이지 않지만 공간에 편재하는 소리도 디지털을 매개로 시각화된다. 사람들이 더 이상 오가지 않는 한적한 기차역이나 작가가 전통 실을 구하려 다녔던 평화롭던 삶의 터전이 무너진 재난의 현장에서 수집된 소리와 이미지의 활용은 아나로그와 디지털을 만나게 했다. 디지털 언어는 복제와 속도, 그리고 정보의 저장 용량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고전부터 대중음악까지 오래된 음악을 재생하고 이를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하며, 심지어는 이미 죽은 음악가의 기록 사진들을 활용하여 연주하는 동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더 세밀하고 빠르게 반복적으로 계산 기능한 컴퓨터 기능 덕분이다. 하지만 그 모두는 2차,...n차 생산물일 뿐, 최초의 작품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고전 명작을 음향합성기로 변주하는 것과 처음 시작이 음향합성기에 의한 것은 차이가 있다. 후자가 예술의 반열에 오르려면 예술가가 거쳐야 할 고통과 열락이 반복되어야만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어디선가 뚝 떨어진 듯한 가상현실의 문화의 현실적 토대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영상이 입혀지고 소리의 파장을 표현한 문보리의 작품은 직접 짜여졌다. 데이터화된 것을 재편집하지 않고 녹음기를 들고 현장에 간다거나 우울하면서도 환희에 찬 빗소리, 사라진 간이역에서의 소리 등은 코드화 이전의 현실이자 질료이다. 



안동길25_소리는 비처럼, 2025



안동길25_소리는 비처럼, 2025



안동길25_소리는 비처럼, 2025


예술은 코드에서 코드로 이동할 뿐인 과정을 넘어서 질적 전환을 요구한다. 다른 차원들 사이의 불연속적 시공간은 작가와 관객에 의해 생성을 위한 잠재적 장으로 제시된다. 단지 코드에서 코드로 옮아갈 뿐인 번역은 몇 번의 신기함을 소비로 체험하면 끝이다. 그런 류의 문화생산물은 작가의 의지나 열정, 상상력 등이 느껴지기보다는 기술의 발전을 알려줄 뿐이다. 독점을 위한 갖은 수단이 동원되곤 하지만, 기술은 금방 공유되며 진부해지고, 그 부가가치도 오래가지 않는다. 문보리가 수십년 동안 배우고 행하고 가르쳐왔던 섬유예술은 어떤가? 모더니즘 국면에서 화면의 평면성을 넘어선 표면성까지 추적되는 와중에 ‘공예’를 넘어서 ‘순수예술’의 본류와 만나기도 했지만, 이론적 담론의 한 장으로 소진된 감이 있다. 디지털 문명의 한가운데 살며 창작하는 이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보다 자의식적이고 근본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컴퓨터의 모태로서의 직조기의 역사성을 되집어’ 보는 작가는 인간 문명의 중요 부분인 섬유 부문의 공정이 컴퓨터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 과정을 강조한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컴퓨터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에게 천공지를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은 카드로 조절하여 복잡한 직물 무늬를 만드는 자카드 직기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계산을 자동화한다는 베비지의 개념은 명령어 체계(알고리즘)를 통해 단순 계산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음을 포함한 여러 정보도 처리할 수 있다는 진정한 의미의 컴퓨터 개념은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평가되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에 의해 개진되었다. [괴델 에셔 바흐]는 ‘그(베비지)의 해석기관은 자카드 직기가 꽃과 꽃잎을 짜듯이 대수학의 무늬를 짰다’는 러브레이스의 말을 인용한다. 호프스태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본질적인 기법 중의 하나는 두 개의 처리 절차가 넓은 의미에서 동일해지는 것을 감지하는, 즉 하나의 과제를 자연적인 하위과제로 분할하는 모듈화(modularization)라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프로그램은 ‘고리 속에 있는 고리’라는 구조를 가진다. 또한 이런 종류의 덧씌워진 고리들은 뜨개질이나 자수같은 일상적인 활동에 대한 편집 명령에 쓰인다. 



기억, 알고리즘, 시그널_흙으로부터, 2025 



기억, 알고리즘, 시그널_흙으로부터, 2025 



기억, 알고리즘, 시그널_흙으로부터, 2025 


섬유예술의 역사에 현대의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디지털은 코드라는 방식을 통해 각 감각영역의 상호 번역을 더욱 쉽게 한다. 가령 컴퓨터로 음이 재생될 때 영상과의 상응이 일치되는 경우가 있다. 단지 그때의 합성음이 진정한 음악인지, 그 영상에 의미가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러한 합성 음-이미지가 환경화 된 거대한 화면을 타고 점차 확대되어 간다. 고층빌딩은 현실적이거나 잠재적인 인터페이스가 되고 실내 또한 마찬가지다. 장식화되어 소비되는 동영상의 제작 및 유통은 기계의 발달로 더욱 수월해진다. 현대의 작가는 이러한 변화까지 포함한 문화 생태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 안으로 약간 휘어진 [Weave Wave] 시리즈는 마치 스피커처럼 소리를 모아주는 듯한 형태다. 천으로 울림통을 싼 오래된 전축 스피커의 모습이 떠오른다. 보는 방향에 따라 미묘하게 색을 변화시켜 짠 표면은 그자체가 미세하게 펼쳐지는 음의 계열과 비교된다. 


다른 작품들에서 더 적극적으로 개진되는 공감각성이 침묵하는 사물에서도 관철된다. 삼실과 인견사 등을 사용하여 짠 직조 부조작업은 실의 형태와 색을 음파처럼 보이게 한다. 작품 [소리-색 알고리즘: 불정역]에서 작가는 지금은 잊혀진 불정역에서 소리를 채집하고 이를 색으로 번역했다. 한때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을 정류장이었지만, 이제는 바람소리 벌레소리 등 기차역 이전의 자연의 소리가 포착되었다. ‘채집된 소리를 진동수를 기반으로 하는 색 스펙트럼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코딩)을 제작’하였다. 소리에서 추출된 컬러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직조작업이 진행되었다. 소리가 색의 선으로 번역되는 과정은 작가의 주관적 상상력보다는 그가 조우한 현실을 최대한 살려내려는 방법(여기서는 소리-색 알고리즘)이 채택됐다. 대형 설치 작품 [기억, 알고리즘, 시그널_흙으로부터]에서 관객이 심박 센서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면 증폭된 사운드가 공간에 울려 퍼진다. 



기억, 알고리즘, 시그널_흙으로부터, 2025 



기억, 시그널 25, 2025


‘작업과 연동된 센서는 관람객의 심장박동수를 측정하고 이 수치와 연동된 심박 소리와 빛의 변화를 구현한’ 작품이다. 실로 짜여진 직물 사이사이로 늘어진 광섬유 다발은 그가 사용하는 여러 실 중의 하나처럼 사용됐다. 컴퓨터 기기의 복잡한 선들을 보고 작가는 실뭉치를 떠올렸다고 한다. 작가에게 실로 무언가를 짜는 것은 잇다의 의미가 있고, 이어지는 대상은 극적인 차이가 있으며 그러면서도 유효한 접속의 지점 또한 존재한다. 그 모두를 실감 나게 작동 중으로 만드는 것은 살아 숨쉬는 사람이다. 기계는 인간을 주변으로 모는 경향이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극적 주인공의 역할이 부여된다. 어두운 전시장에서 빛나는 광섬유가 발하는 빛의 흐름은 움직이는 궤적같다. 손으로 짜는 것에 비해 기계로 짜는 것은 빛의 속도에 가까운 느낌을 줬을 것이다. 기계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생각에 반란을 일으켰던 산업혁명 시기의 방직 공장에서의 문제도 여전하고, 생산양식의 일방적 추세에 문제를 제기할 집단화된 노동과 노동자가 있는가의 문제가 더해진다. 


생산공정이 자동화된다고 해서 예술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부분은 같이 가치가 하락한다. 전반적으로 인간 자체의 가치 하락이다. 이는 인간이 생산/소비의 수단으로 전락한 이래 예견된 흐름이다. 문보리는 섬유예술의 정체성에 대해 골몰하지만 그 지점을 통해 오히려 여러 가닥의 실을 끌어들인다. 그 범위는 흙부터 생체센서에 이른다. 높은 층고의 전시장을 활용하여 날아오를 듯 설치되었으나, 여태까지의 자연의 순리를 규정해 온 중력에 순응한다. 예술과 공예, 인간과 기계, 아나로그와 디지털, 자연과 문명, 전통과 현대 등, 작업에 끼워 짬을 통해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짜여진 것, 즉 텍스트로 예술작품을 다시 읽는 것은 강력한 텍스트성, 즉 맥락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만들어낸 맥락을 죽 밀고 나가는 것이 예술의 조건이며, 그 목적은 매체의 질적인 기준과 개방감을 동시에 성취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가 10여 년 전부터 시도해 온 ‘디지털 직물조형’, ‘인터랙티브 직물조형’의 예다. 



sound & frequency, 2024,2025



보이지 않는 경계_F.P.F.G, 2025



 연속성, 2025


작품 [안동길2025_소리는 비처럼]은 곡면 직조부조 오브제에 프로젝션 맵핑된 작업이다. 안동 삼실로 짠 독특한 질감의 면을 스크린으로 삼아 덧씌워진 영상은 작가가 평소에 삼실을 구하기 위해 다녔던 안동 금소마을의 재난 현장이다. 얼마 전 대형산불로 폐허가 된 장소에서 수집된 소리는 폐허 속에서도 삼씨가 발아하여 싹을 틔우고 삼을 수확하는 농부의 일상 풍경과 함께 흘러간다. 이 작품은 AI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생성형 이미지와 결합하여 변화하는 이미지로 구성되었다. 식물의 순환 주기는 직조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과 더불어 재생에 대한 메시지와 연결된다. 빗소리는 화재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다시 뿌려진 씨의 발아를 촉진시킬 것이며, 섬세한 골이 패인 직조 부조의 질감과 어우러진다. 작가는 ‘직물은 경사한올과 위사한올의 교차가 모여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고 미디어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 단위가 합쳐져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사실상 동일한 방식’이라고 밝힌다. 


작품 [우물 그리고 실마리]에서 짜여진 것과 실마리가 동시에 제시되는 작품은 작업의 과정이 드러나 있는 듯하다. 관객은 말끔하게 정돈된 것만 보지만, 작가는 수많은 요소를 엮어 짜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낸다. 빛이 새어 나오는 원통을 들어다 보면 우물 바닥처럼 보는 이를 되비추는 반사면이 깔려있다. 반사면에 의해 더욱 빛나는 내면의 직조, 그 바깥은 엉킨 실마리다. 엉킨 실들은 작업 중의 작가처럼 과정 중의 주체로 다가온다. 작품을 텍스트로 보는 것은 대상 뿐 아니라 주체에도 해당된다. 작품의 견고함과 달리 텍스트는 도처에 구멍이 존재한다. 그 구멍들은 새로움이 생성되는 자리이다. 소리에서 발생하는 파동을 직조부조로 표현한 작품 [sound & frequency (소리와 진동수)]에서는 실을 선처럼 사용하는 그의 방식이 잘 드러난다. 파동은 드로잉으로도 미디어로도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채집된 소리는 파동이 되어  3차원상에서 실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