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고 연결하다

홍영인 전 (5월 9일-7월 20일,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2)

Occupy: 우리는 연결되고, 점유한다 전 (6월 10일-9월 3일, 전남도립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인간 사회를 틀어진 지배 질서는 법을 비롯한 상징적 언어를 통해 작동하며, 그 사회 구성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종의 환경이 된다. 하지만 그 질서의 전환이 요구될 때 예술은 유효한 접속 지점을 발견한다. 예술은 효과가 없어서 역기능조차 발휘하고 있는 무력한 자율성이나 형식주의를 벗어나 활기를 되찾는다. 새로운 질서를 위해 과도기의 국면에서 각질화된 사회의 규칙은 현실계를 거쳐 새로운 질서로 거듭날 것이다. 한 방향만을 보는 발전주의는 예술을 주변화시킨다. 화려함과 풍요로움은 예술이나 예술가의 몫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지나갔다고 믿어지는 전쟁과 혁명, 국가폭력 등이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심지어는 발전된 과학기술에 의해 더욱 격화되는 양상 속에서 작가들 또한 상호작용한다. 이들은 무명의 영토인 바깥에서 타자와 대화적 상상력으로 대응한다. 타자들은 연결되고 연결한다. 


그들의 언어는 미술 고유의 감각으로 간주된 시각중심주의가 아니라, 소리에 주목하는 특성을 보인다. 시각은 이성적 관념이 중시하는 이상적 감각으로, 집중적이며 지배적이다. 제도와 결합된 이데올로기로 사회의 지배적 규칙을 자연적 운명으로 포장한다. 이들의 작품에서 소리는 노동하고 저항하며, 작업하며 수행하고, 고통받고 죽어가는 몸에서 발생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자연적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이 강조된다. 지배적 질서에 의해 타자화된 존재들은 배제 및 자기 보호 본능에 의해 가시화되지 않지만, 살아있는 존재는 특유의 소리를 낸다. 앎과 지배의 대상인 무명의 존재들은 억압적 질서에 발언하고 노래한다. 그리고 같은 운명에 처한 자연 및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던 전통의 소리에도 귀기울인다. 이러한 감각의 전환, 현재를 재배치하기 위한 기억의 호출은 껍데기만 남은 개인의 자유를 갱신할 미지의 공동체를 일깨운다.

   


타자들이 연대하는 장

  


에코 누그로호, The Time of Chaotic Beauty, 2025, 아크릴 벽화, 500x1570cm(사진출전 전남도립미술관)



당시에 흔할수록 후세에 희귀해진다는 고고학적 역설이 있다. 오늘날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많은 뉴스들이 쏟아지지만, 그 의미가 되새겨지기에 정보홍수의 물살은 너무 거세다. 이세현은 예술적 기록을 통해 삶의 기록이 소멸되는 속도를 완화시킨다. 경악할만한 충격적 사건들이 지나간 역사적 장소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여정의 출발점이 된다. 권승찬의 [무기력한 풍경]은 국민보도연맹(國民報導聯盟)을 주제로 한 회화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판화지에 아크릴과 목탄 연필로 어둡게 그려진 죽음의 현장에서 증거는 사라진 상태다. 1949년에 창설된 이 반공계몽단체는 전국 각지에서 최대 120만명의 양민을 재판도 없이 학살한 악명높은 기관이다. 계몽은 어둠을 낳은 것이다. 반공이라는 가치가 침해할 수 없는 금기가 되면서 국가폭력의 억울한 희생자들은 직시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로 남아있다. 중국 작가 진양핑(Jin Yangping)은 파편화된 이미지와 몸을 나열한다. 그것은 양자가 모두 사물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문같은 공적 폭력부터 알아서 권력에 맞춰가는 몸의 상황이 커튼이나 천막같은 차원과 동렬에 있다. 하지만 몸과 회화의 단편들은 그만큼 연결되려고 꿈틀댄다. 


홍콩의 아이작 총 와이(Isaac Chong Wai)의 작품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드러난 테러 사건에 주목한다. 난데없이 공격당해 쓰러지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구현했다. 중심/주변의 양극화가 낳은 폭력은 불행의 원인을 주변에서 찾으며, 불행의 결과가 집중되는 곳도 주변이다. 국가보안법이 강화되어 공공성이 극도로 위축된 홍콩의 상황은 편재하는 일상적 폭력에 눈뜨게 했다. 우크라이나 예술가들의 단체인 오픈 그룹(Open Group)이 연출한 무대는 가라오케지만, 마주보는 양쪽 벽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공습이나 긴급 대피같이 전쟁시에 발생하는 불길한 소리와 관련된다. 이 단체의 한 작가도 지금 전쟁터에 있다는 것은 그들의 예술이 그만큼 긴박함을 말한다. 튀르키예 작가 에르칸 오즈겐(Erkan Özgen)의 작품 [원더랜드]에 등장하는 벙어리 소년은 몸짓으로 전쟁통의 시리아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한다. 말을 하지 못하기에 그의 몸짓 언어는 더 처절하다. 고향을 떠나는 소년의 감당해야 했던 폭력의 강도는 이미 말을 초월하는 것이다. 작품 [하레세]는 전쟁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참전용사들이 무기를 악기 삼아 연주하는 영상으로 재미와 절묘함은 비극을 잠시 잊게 한다. 악기와 무기는 양극화된 세계관을 대표하며 리드미컬한 음으로 연결된다.


인도네시아 작가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의 벽화 [혼돈 속의 아름다운 시간]은 현실의 질서가 발생되는 잠재적 혼돈을 축제같은 분위기로 표현했다. 축제는 전쟁처럼 일상을 단절시킨다. 양극의 외면적 유사는 질서와 무질서, 고통과 희열이 상반되지 않는 세계이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아크릴 벽화는 빛과 어둠의 관계 또한 포함한다. 그의 고국 또한 민주주의를 위한 격변기를 거쳤다. 자수와 태피스트리 등 지역 공동체의 전통공예는 현대미술과 접속되며 연대를 상징한다. 강수지‧이하영의 [민주주의 덕질하기]는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하다. 그 출발은 2024년 겨울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하는 이들의 축제같은 시위현장이다. 각자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 쏟아져 나온 젊은 여성들에게서 한국사회는 생각지도 못한 민주주의의 원동력을 발견했다. 그들은 생각만 많고 행동에 굼뜬 기성세대와 달리, 아니다 싶으면 바로 자리를 박차고 튕겨 나왔던 것이다. 가볍고 활달한 젊은 감각은 소비주의를 넘어 또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출발이 되고, 이는 개인의 세계를 무시하는 지배적 권력에 저항하게 한다. 수십개의 솜이불을 엮어서 공중에 띄운 이산의 작품 [타자와 더불어 봄을 이룬다(與物爲春)]는 부드럽고 포근하며 계단을 올라가면 구름 위의 풍경같은 모습도 연출된다. 2024년 겨울 부당한 지배질서에 맞서 광장에 모였던 이들이 외치고 싶었던 것처럼, 타자들의 목소리를 증폭시켜줄 마이크도 군데군데 설치했다. 꿈같이 형성됐던 일시적 공동체가 사라진 일상의 광장에는 여전히 다중(多衆)의 온기가 남아 있다.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전남도립미술관의 전시 컨셉인 ‘점유하다(Occupy)’가 ‘단순히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 비어 있던 자리에 이야기를 만들고, 침묵 위에 목소리를 더하는 행위’(전시 서문)이며, 광장이라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장소를 염두에 둔다면, 홍영인의 ‘다섯 극과 모놀로그’는 여성과 자연 등 오랫동안 타자화되어 있던 가치들과 연대함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보다 내재적이다. 그가 연출한 무대는 말 없는 사물과 동물, 사라진 전통과 사람들에 대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동체의 문제를 자기와의 대화로 풀어나간다. 작품의 범위는 지금 여기를 넘는 시공으로 확장된다. 암각화로만 남아있는 아득한 시대까지 소급되며, 자연이 입력한 프로그램만으로 먼 여행을 하는 조류의 영역까지 뻗어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소리에 대한 감각은 연속적이다. 작품들의 상당수가 일종의 악기이며, 이는 전시 기간 중 행해진 몇 번의 퍼포먼스를 통해 시연되었다. 작품 [차임벨 기계]나 [벨 스크린]은 금속과 도자기 등으로 만들어진 종이 포함된다. 도구이자 악기이자 작품은 잔잔한 풍경(風磬) 소리처럼 서로를 반향하고, 노동의 리듬과도 조응한다. 모노로그의 무대는 광장에 울려 퍼지는 정치적 구호나 K-pop 소리와는 대조된다. 


하지만 사운드 설치 작품 [우연한 낙원]에서 상영시간 내내 들려오는 DMZ 지대의 새떼 소리는 군중의 함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놀라움을 준다. 두루미 떼는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 의해 ‘잠시’ 열린 생태적 낙원을 점유한다. 인간이 물러난 자리에서 번성하는 두루미는 인간과 자연의 적대적 관계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다. 작가는 인간의 관점이 아닌 두루미 되기에 상응하는 변신을 통해 말없는 자연의 소리를 전한다. 이 작품의 협업자 오웬 로이드는 작가의 목소리를 13개의 음질로 분석하여 이를 천 개가 넘는 두루미의 울음소리와 연결 짓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을 거친 소리는 작가와 두루미의 소리가 합창으로 재연되는 듯한 효과를 낳았다. 5채널로 재생되는 소리는 그 누구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다성(多聲)으로 울려퍼진다. 무리로 생활하며 항상 복수의 소리를 낸다는 두루미는 다중(多衆)처럼 여럿과 하나의 조화를 보여준다. 그것은 자연음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며, 작가의 모노로그와 상보적으로 작용한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돼 관객의 눈높이와 동선에 맞춘 40미터의 원형 태피스트리에는 여성들의 베짜기 노동을 상징하는 천으로 감싸여 있으며, 졸린 눈을 비비며 했을 여공들의 재봉질이 제작기법에 포함된다. 


베짜기부터 재봉질에 이르는 노동의 리듬은 자연의 리듬과 크게 다르지 않을 노동요부터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기 위해 연대했을 때의 소리(구호, 노래)에 편재한다. 거기에는 소리를 내는 몸이 있다.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 현계옥, 반일 투쟁을 이끈 제주의 해녀 부춘화,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지도자 신순애 등, 한국 근현대 여성 노동운동사의 인물들을 자수와 아플리케 등으로 새겨져 하나하나 호명된다. 기생, 해녀, 여공 등은 모두 몸에 억압과 착취를 새긴 타자 중의 타자이다. 관객이 구조물 안쪽으로 들어가서 볼수 있는 울주 천전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받은 이미지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보다 긴 시간대에 배치하여 보편화시킨다. 작품 [고리 던지기]에서 짚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과 천연염색 등으로 만들어진 7개의 고리는 노동과 유희를 결합시킨다. 작가는 다양한 기원들을 실로 삼아 함께 짜나간다. 여러 작품을 관통하는 크고작은 둥근 구조는 서로의 연결망을 나타낸다. 신화와 역사, 제의와 놀이, 기록과 기술, 자연과 문화가 융합되는 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이다. 자기 안으로 깊숙이 들여놓은 문제의식은 완벽한 형식적 완성도로 나타났다.   


출전; 아트인컬처 202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