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윤, 〈우미미 연비비-늦은 봄날의 노래 A Song on a Late Spring Day
2025 전시 전경 ⓒ HONG Ji Yoon


얼마 전 안산시에 소재한 김홍도미술관을 찾았다. 1관에서 열렸던 《우미미 연비비(雨微微 煙霏霏)》전(7.8-9.7)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디지털에 기반을 둔 미디어 아트가 대세를 이루는 오늘의 미술계 상황에서, 아날로그 중심의 회화, 입체, 설치, 그리고 약간의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영상) 등을 통하여 한국화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이 전시가 중요한 것은 현재 30-50대 한국화 작가의 최신 경향과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한국화에 관한 한, 첨단의 실험과 향후 이들이 지향해 나갈 작업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준 것이다. 김홍도미술관의 김지안·김장은 학예연구사가 기획한 이 전시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 전시가 한국화는 시대에 뒤처지고 고루하다는 대중의 선입견을 과감히 깼다는 점이다. 이른바 지(紙), 필(筆), 묵(墨)으로 대변되는 한국화의 근본정신을 지키면서도, 오늘의 현실에 맞게 평면, 드로잉, 설치, 오브제, 영상, 퍼포먼스에 주력하는 작가의 작업에 주목, 그 요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한국화 기수들의 활기에 찬 활동을 조명하였다. 

둘째, 이 전시는 안산이라는 지역에서 열려 문화의 중심인 서울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전시의 내용이 알차고 좋으면 언제든 문제의 전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점이다. 사실 몰라서 그렇지 오늘날 지역에서 열리는 전시 가운데 서울의 그 어떤 전시보다도 좋은 전시들이 많이 있다. 이 말은 서울과 지역을 편가름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서울 편중이 여전히 심한 현실에서도 지역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當爲)를 뜻한다. 지역에도 실력 있고 재능이 많은 학예사들이 서울에 못지않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이들의 활동을 주목하고 지켜보는 것으로 힘을 싣고자 한다. 
셋째, 그동안 한국화는 ‘한국화의 날’ 선포(2017), ‘한국화진흥회’ 창립(2017) 등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였지만, 그처럼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이’에 갇힌 한계를 노정(露呈)하였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준말)’이 말해주듯이, 비록 귀신 이야기와 같은 해묵고 고루한 소재라도 새로운 그릇에 담으면 신선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신화’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이른바 K-POP과 한류의 열풍이 전 지구촌을 뒤덮는 이때가 바로 한국화 부흥의 적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80년대의 수묵화 운동, 2000년대 초반의 ‘동풍(東風)’을 잇는 새로운 열풍이 한국화에서 불기를 기대한다. 

김용원, 문이원, 박제성, 성민우, 수무·녹음, 유태근, 홍지윤이 참가한 이번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화 부흥의 첫 조짐을 보여준 계기로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비는 부슬부슬 안개는 자욱’이라는 뜻을 지닌 ‘우미미(雨微微) 연비비(煙霏霏)’는 당나라 때의 시인 장필의 시 ‘춘만요(春晩謠)’에 나오는 시구에서 딴 것이다. 전시 리플렛의 해설에 따르면, 이 구절은 “부슬비와 안개가 어우러진 풍경은 시적 감각과 정서적 밀도를 자아내며, 전시가 지닌 미학적 구조와 감성의 결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풀이 된다.

좋은 풀이다. 이 전시가 전체적으로 실험적인 성격을 띠었으되, 작품 하나하나를 접하면 정감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초대작가들은 할당된 전시실을 독자적인 작품으로 가득 채웠다. 따라서 관객은 방 하나하나를 다니면서 서로 다른 개성을 뿜어내는 작품세계를 즐겼을 것이다. 나는 모처럼 맛보는 한국화의 집단적 축제에 흠뻑 젖어들었다. 좋은 작가 선정에 훌륭한 기획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책(facebook)에 다음과 같이 썼다. 멀리서 발품 팔고 와도 아깝지 않은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