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온페이퍼 2025 전시전경 ⓒ 제공 황정인


매년 가을은 비영리기관부터 미술시장에 이르기까지 전세계가 분주하다. 한국의 9월이 키아프서울과 프리즈서울의 열기로 가득했다면, 뉴욕 맨해튼의 9월은 아모리쇼(Armory Show)를 필두로 연이어지는 아트페어와 전시로 거리마다 활기가 넘쳤다. 유럽 아방가르드의 실험적 스타일을 소개하면서 미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모더니즘의 확산에 영향을 준 역사적인 아트페어인 아모리쇼와 더불어, 맨해튼에서는 20세기 모던 미술을 소개하는 인디펜던트20세기(Independent 20th Century), 신진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볼타아트페어(Volta New York), 종이 매체에 초점을 맞춘 아트온페이퍼(Art On Paper) 등 수많은 행사가 뉴욕의 남북을 가로지르며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이 중 아트온페이퍼(ny.thepaperfair.com)는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비교적 신생인 아트페어로, 9월 4일부터 7일까지 Pier 36에서 열렸다. 다양한 현대 미술 장르와 매체를 다루는 여타의 아트페어와 달리 종이라는 매체적 특징에 초점을 맞춰 전통적인 종이 기반 회화와 종이의 조형적 실험 가능성을 탐구한 매체 특정형 아트페어다. 기획 운영사는 마케팅 에이전시 Team a21의 자회사인 AMP(Art Market Production, 이하 AMP)로, 시각 예술 분야의 이벤트 기획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며, 2011년부터 현재까지 아트온페이퍼·샌프란시스코아트페어·시애틀아트페어·애틀랜타 아트페어 등 4개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전세계 주요 갤러리 82곳이 참여하고 각 갤러리 전속작가의 종이 작품과 종이를 창작의 주요 매체로 하는 작가를 소개했다. 익히 알려진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종이 드로잉 작품에서부터, 종이를 새롭게 해석한 실험적인 종이 조형 작업, 종이를 회화의 기본 매체로 선택하면서 저마다의 주제를 다룬 작품, 그 밖에도 사진, 판화 작품에 이르기까지 종이라는 매체의 확장 가능성과 회화 매체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통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종이라는 매체가 지닌 조형적 확장 가능성을 토대로 아트페어가 열리는 전시장 외에도 실험적인 설치 작품이 휴식 공간과 카페 공간 곳곳에 전시됐다. 또한 북아트센터(Center for Book Arts)와의 공동 주최로 열린 ‘북스마트페어(Booksmart Fair)’가 전시장 한켠에 페어 안의 페어 형식의 행사로 열리면서 종이 매체와 북아트의 연결성을 모색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페어 기간 동안 브루클린의 판화 전문 공방인 슈스트링 프레스(Shoestring Press)가 매일 스크린프린팅 시연을 전시장 현장에서 진행하면서, 판화의 제작 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벤트도 함께 열렸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갤러리소소가 2023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했으며, 올해는 경기문화재단과의 협업으로 권도연, 권순영, 김수나, 김지은, 이진형 작가의 작품이 소개됐다.


아트온페이퍼 공식 웹사이트 ⓒ 2025 ny.thepaperfair.com


무엇보다 아트온페이퍼의 행사는 아모리 쇼에 참여하는 주요 갤러리도 하나의 위성 전시로 전속 작가의 종이 작업을 별도로 소개하는 장소로 활용하거나, 다른 매체의 작품에 비해 비교적 시장의 접근이 쉬운 종이 기반 작품을 좋은 가격대로 제공하면서 새로운 컬렉터 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유명작가의 대표작에 가려져 비교적 덜 알려진 희귀작을 만날 수 있다는 점, 현대 인쇄 기술의 발달과 소셜 미디어 세대의 감수성이 만나 자유롭고 독창적인 기법으로 풀어낸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전통적인 아트페어의 무게감을 조금 덜어내고 유쾌하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 뉴욕의 미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매력있는 예술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