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규/ 상생_합, 지상낙원을 희구하는 


고충환 | 미술평론가


물질이 있으면 정신이 있고, 정신이 있는 곳에 물질도 있다. 자연이 있으면 인간이 있고, 인간이 있는 곳에 자연도 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양이 있는 곳에 음도 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어두운 곳에 빛도 있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악이 있는 곳에 선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있으면 네가 있고, 네가 있는 곳에 나도 있다. 

이처럼 실존(주의)적 주체론과 후기구조주의적 타자론에도 연이어지는 이분법은 끝이 없다. 이분법에 바탕을 둔 논리를 양비론이라고 하는데, 이런 이분법과 양비론의 상관관계로 세계가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질 들뢰즈라면, 세계기계라고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분법과 양비론 자체가 아니라, 상관관계에 있다. 대비되는 것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변증법이 나오고 인드라망(연, 그러므로 인과의 관계망)이 유래한다. 내가 너를 반영하고 네가 나를 되비치는 밑도 끝도 없는 거울효과로부터 세계관계가 유래하고, 정(작용)과 반(반작용)의 상호작용으로부터 합이 나온다. 

그래서 작가는 주제를 <상생_합>이라고 불렀다. 서로 대비되는 것들의 상호작용, 그러므로 상생으로부터 합이 도출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담았을 것이다. 대비되는 것들이 서로 도와 선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 이철규의 주제 의식은 관념적이고, 그림도 관념적이다. 형식과 내용이 부합한다고도 볼 수 있겠고, 여기에 아마도 작가가 기획하고 있을, 전통(관념산수와 민화)과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 부응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좋다. 전통을 소환해 자기화하는 과정과 방법론에도 상당한 설득력과 함께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렇게 작가는 평면적인 화면과 돋을새김 된 저부조 형식의 반 입체 화면을, 먹으로 그린 무채색 화면과 오방색을 적용해 그린 전통적인 색채감정을, 재현적인 화면과 도상이 강한 반추상적 모티브를, 그러므로 추상과 구상화면을,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으로는 먹그림과 금박을 대비시킨다. 하나의 화면에서 대비되는 것들이 서로 도와 조화를 이루는가 하면, 아예 다른 그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전체 화면을 일구는 식의 모자이크 작화 방식을 예시해주기도 한다. 인상적인 것으로 치자면, 재현적인 부분을 희미하게 그려 마치 화면 밑바탕에 잠자던 시간이 우러나오는 것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편이며, 필 선에서 전통적인 서체를 산 형상으로 변용해 그린(아마도 사람과 같은, 다른 형상으로도 변용 가능할) 부분도 주목된다. 
작가의 작업에서 특징적인 면으로 치자면, 저부조 형식의 반 입체 화면과 금박을 들 수가 있을 것인데, 아예 이 둘이 합체된 입체작품이 주목된다. 한지와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펄프를 조물조물 빗어 108개의 부처상을 만들었다. 정색하고 부처님을 모셨다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빗어 만든 것이 부처라고 해도 좋고, 사람이라고 해도 좋고, 그저 무명의 존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게 형상을 빗어 만들고, 표면에 금박을 입혔다. 딱히 머리랄 만한 것이 따로 없는데, 더러 꽃과 물고기, 새와 나무와 같은, 민화에서 차용하고 변용한 자연 소재로 머리를 대신한 것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부처(신성)와 인간(인성)과 자연(본성)이 한 몸으로 더불어 사는 지상낙원에 대한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108배로 표상되는, 108번뇌로 표상되는 세상살이에 대한 해법을 희구하기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