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오딧세이의 여로(旅路)
이선영(미술평론)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며

장소;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
차우희(1945-)의 작품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추상적 구성과 떠도는 기호들이 특징이다. 숫자나 문자 등, 검은 형태가 기호임을 알아볼 수 있지만, 정확한 의미를 읽을 수는 없다. 작품마다 그것들이 등장하는 맥락은 철저히 작가의 편에 있다. 그것들은 해독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기표들의 자유로운 유영이 만들어내는 조형성, 더 나아가서는 현대 언어 및 인간의 상황과 관련된 보편적 담론을 향한다. 담론은 서사와도 다르다. 서사가 선이라면 담론은 공간이다. 작가는 그 공간에서 거듭해서 출발한다. 담론의 공간은 의미가 아닌 의미의 작동과 그러한 작동이 일어나는 장(場)이다. 작품에 따라 화이트 부분은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 듯 누렇게 나타나기도 한다. 화면에 부유하듯 떠 있는 검은 단편들은 그것들이 단편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합체되어 의미로 완성될 기대(그것이 차우희처럼 영원히 유예된다 하더라도)를 낳으며, 이는 회화라는 정지된 매체에 잠재적 운동감을 주는 방식이다.
움직임에 내재된 시간성은 이야기의 진행과 관련되지만, 기착지 없는 작품에서 명확한 의미는 의미화의 과정으로 해소된다. 인간에게 언어의 위상을 생각할 때 주체 또한 과정 중에 있다. 왜 오딧세이였을까. 단적으로 그녀를 둘러싼 현실에 적절한 자리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군부독재와 가부장제가 결합된 근대 산업화 와중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자 작가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70년대 중반에 처음, 그 이후로 유럽을 자주 오가면서 작가가 고수한 오딧세이라는 신화적 상징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낭만적 모험보다는 불안한 여정에 가까웠다. 자유로운 여행이기 보다는 표류, 또는 난파까지도 연상되는 여러 단계들이 그녀의 작품 안에 산재한다. 하지만 흑/백의 대조로 이루어진 작품의 단호함처럼 작가는 결단을 내린다. 로버트 A 존슨이 쓴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에 의하면 신화는 그리스도교 신화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에 등장하여 오랜 구전 시기를 거쳐 나중에 문자로 정리된 고대의 산물이다.
차우희 편의 오딧세이의 신화는 ‘근원적인 것일수록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표현’(로버트 존슨)한다는 신화의 어법을 따른다. 이러한 단순화는 신화가 집단적 상상력의 산물로, ‘보편적인 주제를 지니는 이야기들만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로버트 존슨)(각주1) 단순함과 강렬함의 조합은 차우희의 작품에 일관적이다. 작가의 여정이 반영된 바탕화면은 혼합재료로 만들어지며, 때로 3차원상에 오브제로 발전하고, 때로 작가가 직집 행하는 퍼포먼스의 소품도 된다. 차우희에게 캔버스는 중성적 바탕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수십년의 오딧세이의 여정 이후에도 아직도 확고한 닻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작가에게 진정한 의미는 여정 그자체에 있다. 그는 긴 여정을 시시콜콜하게 재현하지는 않고, 심신이 닿은 장소를 함축적인 기호로 작품 안에 집어넣는다. ‘A Ship of Odyssey’라는 대표적 컨셉의 작품들에는 대개 작가만 아는 장소와 관련된 이니셜이 등장한다. 암호같은 수수께끼지만, 작가에게는 그 시공간에서의 기억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영광과 환희의 장소도 상처와 우울의 장소도 있을 것이다.

오딧세이 이후, 2016년 갤러리 그리다 출품작.
검은 기호는 오래된 나무에 새겨진 옹이들 같은 시간의 흐름이 내재한다. 밝은 바탕에 어두운 기호는 단지 그려졌다기 보다는 각인된 것 같다. 통상적으로 기호는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 기호의 특성을 상실하고 다시 사물이 된다. 사물은 재차 기호화되며 형식이 바뀌기도 한다. 차우희의 작품에서 기호는 대상과 분리되고 기의와 기표는 연이어 분리된다. 대상 혹은 사물로부터 분리된 단편들은 혼돈이자 해방, 해체이자 구축이다. 현대언어학은 지시대상/기호/기의/기표 간의 간극과 불일치를 강조하며, 이는 의미의 끝없는 표류를 낳았다. 표류란 의미의 확장일수도 해체일수도 있고, 그 사이에 많은 정도가 있어서 신비부터 맹목까지 다양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작가는 이 인식의 조건을 정주할 수 없었던 자신의 실존적 상황과 중첩시킨다. 지시대상이나 의미로부터 풀려나온 기호와 기표들은 새로운 의미의 생성을 위해 알지 못하는 길을 떠난다. 명암이 분명한 조형 언어의 구사는 잠재적 동감을 통한 이동을 표현한다.
흑백은 기호들이 읽혀지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대조이며, 특히 중세 후기에 인쇄문명이 개시되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을 때 중성적인 패턴으로 자명화됐다. 동양의 전통에서는 흑/백이 대조되는 서예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는 보편적 형식이 되었던 것이다. 차우희가 젊은 시절부터 문학에 심취했던 점도 조형적 언어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가 미술 이외의 예술과 더 친근했던 점은 독일에서 작업할 때 현대음악가들과 교감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흑과 백의 역동적 구성은 음표같은 역할을 한다. 현대음악의 악보는 여러 기호들이 뒤섞인 풍부한 기보법이 특징이다. 추상이나 구성이라는 형식 자체가 음악과 공유된다. 차우희가 선택한 흑과 백은 밤과 낮처럼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대조항으로, 삶과 죽음의 관계처럼 강한 극성을 가진다. 정처 없는 유랑이나 떠남이라는 주제는 삶 안에 죽음을 강하게 끌어들인다. 안전한 안쪽에서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을 따라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에게 바깥으로 떠도는 것은 그자체가 불안이다. 그것은 정주민이 유목민을 볼 때의 관점과 비슷하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은 격차만큼의 긴장과 잠재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양에서 특히 중시됐던 음/양의 대조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 양극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항을 겹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존재/부재와 관련되는데, 상징적 질서의 가장 중요한 기표로 간주된 팔루스(Phallus)는 그 기준으로 간주되었다. 이 기준에서 여성은 또 다른 존재가 아닌 부재였다. 이 그림자같은 존재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타자다. 차우희의 오디세이는 유랑하는 여성의 신체-심리적 조건을 전제한다. 남성이라는 하나의 성이 기준인 정신분석학에서 여성은 유령같은 타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히스테리의 어원은 자궁(hystera)이다. 정신분석학의 사전적 정의에서 ‘히스테리의 어원이 자궁인 이유는 고대 그리스 이래 자궁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장기로 보았고, 히스테리는 자궁이 머리로 올라와서 생기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즉 ‘히스테리의 원인은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자궁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발작하는 것’(각주2)이라고 간주되었다.
여성의 병은 그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지정해 준 자리를 벗어났을 때 도래한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한국에서 여성/작가로서 떠나기 힘든 여정을 감행했다. 당시 아이가 있는 여성작가로서의 빈번한 출국과 해외 체류는 죄의식과 해방이라는 분열적 상황에 직면하게 했으며, 이는 스스로의 작품을 ‘오딧세이’라는 열쇄말로 표현하게 했다. 여성이자 작가에게 가정은 자신과 자식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지만, 예술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사할 때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정신분석학의 반(反)여성적 해석은 뒤로 한다면, 정상/비정상의 대조로 가능한 낙차는 에너지 발산의 원천이다. 차우희는 여러 실험을 해왔지만, 작품의 기본은 캔버스이며 회화는 기표들이 표류하는 장이 된다. 표류는 정처없기도 하고 흑백의 돌이 승패를 겨루는 바둑판 같은 게임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 평문은 차우희의 평면작품에 한정하여 사회적, 예술적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사회적 차원; 공적 영역과 분리된 사적영역으로부터의 탈주
차우희가 한국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작업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독일연방정부 학술교류기금 (D.A.A.D.)을 받은 해가 1985년, 그녀의 나이 40세였다. 이후 10여년이 지난 후 베를린 문공부 과학, 연구, 예술기금(1996)으로 또 다른 중요한 기회를 얻은 전후로 작가 스스로 ‘오디세이’와 동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유목의 삶/작업이 이어졌고, 그 흔적은 70세가 넘어서 열린 개인전인 <오딧세이 이후>(갤러리 그리다, 2016)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에서 자유로운 출입국을 전제로 하는 본격적 세계화는 1990년대부터나 가능했다. 차우희가 떠나고 되돌아오기를 거듭한 1970-80년대만 해도 ‘아이 엄마’ 앞에 놓인 장벽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몸의 이동을 동반한 오딧세이라는 신화적 정체성 자체가 당시 여성에게는 드문 예에 속한다. 지금은 아닐까? 개체가 계통발생을 되풀이하듯,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여성 작가의 상황은 시대와 상황을 돌파해 온 한 작가의 생애에 주목하게 한다.

기억의 상자, 2010년 워터게이트갤러리 전시에 출품
작가는 2016년 개인전(갤러리 그리다)에서 ‘나의 작업을 돌이켜 보면 90년대 초의 <오딧세이의 배> 이후 주로 90년대 후반에 집중된 <Stray Thought on Sails>, 그리고 2000년대 진행한 <Sail as Wing>, 덧붙여 2010년 진행한 설치 작업 <La Boite de la memoire>등이 우선 떠오른다.’고 회고하면서, ‘회화 작업 중 <오딧세이의 배>가 큰 맥의 가장 윗줄기’라고 자평한다. ‘<오딧세이의 배>에서 시작된 항해는 작업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되었고 이후의 다른 작업들로 진화하여 미지의 영역으로 나를 내몰았다’(갤러리 그리다 전시소개 중에서). 긴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작품 [오딧세이 이후](2016) 시리즈는 기호들이 듬성듬성 박힌 캔버스 천 실루엣이 복잡한데, 보는 이에 따라서 사람 얼굴부터 지도같은 형태를 떠올릴 수 있다. 지도와 달리 얼굴의 경우 제자리에서 떠나는 정신적 여정이다. 작가는 그 전시에서 ‘캔버스 천은 망망한 대해를 위해 펼쳐진 돛이기도 하고 원하는 곳을 찾기 위한 지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지도에는 기억 속의 장소, 가령 정미소와 구멍가게가 있던 어릴 적 동네의 모습이 반영되기도 한다. 그 지도의 중심에는 집이 있을 것인데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시절의 집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사이엔가 이제는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고 한탄하는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려갈 지도가 집이라고 기대한다. 누렇고 외곽선이 분명치 않은 형태는 오랜 항해의 결과를 암시한다. 캔버스 천은 설치작품에서 빈 가방으로도 변모하면서 끝없이 이동 중인 작가의 상황을 대변한다. [기억의 상자(la boite de la memoire](2010, 워터게이트 갤러리) 전에서 선보인 작은 가방 형태의 작품들은 저마다의 기호를 각인하고 있다. 차우희의 그림이 여러 매체를 쓰면서 두툼해지는 것의 연장이 오브제 작업이다. 그 전시에서는 설치 작업과 드로잉, 회화작업이 함께했다. 밝은 바탕에 새겨진 어두운 기호는 여러 형식을 관통하는 기본 어법이다. 2012년 드로잉 작품만 모은 전시(갤러리 팔레 드 서울)에서 상자가 펼쳐지는 듯한 이미지의 작품들은 회화작품처럼 간결하고 강렬한 기호형태가 특징이다.
상자도 그렇지만 가방 역시 그림이나 배처럼 무엇인가를 담는 것이다. 가방의 경우 이동성이 더 강조된다. 유목민같은 상시적 이동을 위해서는 간단해야 했고 몸과 밀착되어야 했다. 어떤 기호는 검게, 어떤 기호는 바탕색과 크게 구별되지 않게 표시되어 있다. 바탕색과 같은 기호는 잠재적이고 검정색 기호는 현실적이다. 잠재성과 현실성의 관계는 가역적이다. 그것은 작가의 심리적 지도가 아직도 작성중에 있음을 말한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유행가도 있지만, 차우희에게 배는 정착할 곳을 찾아 떠도는 자아를 상징한다. 배는 집의 축소판, 이동하는 집에 해당된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국가인 독일에는 34살에 처음 갔다. ‘애가 7살 때 학교 들어갈 때 담임 만나서 우리 아들 좀 잘 부탁한다 하고 갔어요’(고동연과의 인터뷰, 이하 인터뷰로 표기) 미대를 졸업한 30대 한창의 작가가 걱정했던 바는 ‘한국에 있다 보면 주부밖에는 안 되는’(인터뷰) 상황이었다. 남편과 아이가 남아있는 한국사회로부터의 탈주는 죄의식과 불안감을 동반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의 작품 주제가 ‘내 아이’였다는 점에서 차우희 또한 ‘엄마 작가’였다. 자신의 소중한 창조물인 자식이 작품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평이한 재현주의는 아니었고, 명암의 굵은 ‘표현주의적인’(인터뷰) 방식이라는 점에서 미술계에서 ‘여류작가’로 분류되곤 하는 이들의 아기자기한 ‘생활예술’ 풍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었다. 1977년에 현대화랑에서 전시에서 판매도 잘되어 자기가 번 돈으로 독일행을 감행한 것은 여성작가의 독립적인 활동에 대한 첫 번째 조건을 말해준다. 가사 활동이든 예술 활동이든 사회가 공적으로 대가를 주지 않는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작품이 유통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그림자 노동이 지배하는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은 작가라는 공적영역에서의 활동과 구별됨으로서 여성 작가에게는 문턱이 된다. 무엇을 피해 떠났는가가 오딧세이의 여정의 진짜 내용을 말해준다. 1970-80년대 차우희가 넘어야 했던 현실적 장벽은 여성의 자리로 간주된 사적영역이었다.
근대에 사적 영역은 강화되었다. 정치학자 페이트만(Carole Pateman)은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the sexual contract](1989)에서 근대적 시민사회는 공적 영역과 사적영역을 분리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시민사회에 있고 동시에 시민사회에 있지 않은 한 영역으로 통합되었다. 사적 영역은 시민사회의 일부분이지만 시민적 영역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계약의 작성자이자 자유로운 시민인 개인은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복종을 통하여 등장한다.(각주3) 강력한 산업화 시기. 독재정치가 배제하지 않은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작가가 속하면서도 탈주하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복종의 질서가 내재된 사적영역었다. 페이트만은 정치경제학자들이 어머니의 노동을 경제적 힘이 가해져야 할 원료 혹은 시민사회가 건설되기 위한 자연의 기초요소로만 본다고 말한다. 여성작가는 국내외 미술계라는 공적 영역에서 ‘아버지/돈버는 사람’처럼 ‘가치 창조자’(각주4)가 될 필요가 있었다. 결혼하여 가족을 꾸린 젊은 여성에게 예술 활동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육아 문제로 생각된다.
예술도 어렵지만 그나마 예술 작업이 가장 쉽다고 생각될 만큼 강도 높은 전일 노동에 직면한다. 그 전쟁같은 시기에도 가늘게나마 작업을 놓지 않았던 여성작가들은 작업을 하지 않으면 더 견디기 힘들었던 생활에서의 소외를 증언한다. 물론 예술이나 육아나 헌신이라는 점은 같다. 낸시 초도로우(Nancy J, Chodrow)의 [모성의 재생산 The Reproduction of Mothering]에 의하면, 여성의 어머니 노릇(mothering)은 성별 노동 분업의 몇 안되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요소로, 겉으로 보기에 자연스러운 여성의 출산, 수유 능력과 육아에 대한 책임 사이의 연계성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어린 시절은 광범위한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의 어머니 노릇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각주5) 1970년대 한국, 30대의 여성작가에 예술적 자율성의 조건인 근대의 자유로운 ‘개인’은 요원한 것이었다. 떠남, 유랑 등 작가의 뇌리에 평생 박힌 개념들은 상징적 질서가 지정해 준 여성의 자리로부터의 거리를 말해준다. 거리두기를 평생에 걸쳐 실행했던 차우희는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에서 전일적으로 헌신하지 않는 나쁜 어머니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다.
예술적 차원; 차이에 의해 표류하는 기호들
차우희의 작품에서 기호는 다른 작품과의 대화적 관계 속에 더욱 활기를 띈다. 현대언어학에서 기호와 대상 간의 임의적 관계가 강조된 이후, 기호는 대상보다는 다른 기호와의 차이적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고 여겨진다. <오마주 정선>전(2012, 표갤러리 서울)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과의 대화를 시도한 작품으로, 공간이 아닌 시간, 그것도 어린 시절 등 가까운 시기가 아닌 보다 먼 시점으로의 여행이다. 왜 겸재였는가. 마침 당시에 작가가 겸재가 살던 서촌에서 본 인왕산 풍경이 계기가 되었지만, 예술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시대를 초월하는 교감이 아니었을까. [오마주 정선] 시리즈는 1980년 이후 작가의 주무대였던 유럽이 아닌 지금여기, 자신이 살고 작업하는 현장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작가에게 겸재의 인왕산 풍경은 마치 세잔에게 있어서 생 빅투아르 산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겸재가 바위, 산, 나무를 그리며 시도한 기법은 세잔의 작품 생 빅투아르산의 기법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2012. 8. 22. 헤럴드경제 인터뷰 중). 그 산을 소재로 한 세잔의 작품은 현실적 대상과 그림이라는 대상을 최대한 근접시켰다는 미술사적 의미를 가진다.

stray thought on sais, 1992년.

오마주 정선, 2011-12년 표갤러리서울 출품
색과 형을 근접시키는 붓터치로 풍경을 거의 정물처럼 그린 세잔은 여러 재료를 활용한 촉각적이고 구축적인 화면으로 근대 회화의 기본 문법을 만들었다. 작품 [오마주 정선] 시리즈는 여러 겹의 천을 바느질로 이어붙여 콜라주하고, 이를 캔버스에 올린 후 유화 물감을 여러 번 덧발라 완성했다. 이 작업은 그려진 것만큼 만들어진 것이다. 캔버스천은 바탕이자 형태가 된다. ‘저는 기본이 캔버스에요. 그러니까 캔버스를 계속 다양하게 활용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조각을 하나하나씩 넣어서 생명을 주고 싶은 거예요. 그러다 보면 하나의 어떤 의미가 부여되고요’(인터뷰) 세잔과 입체파 화가들에게 중요했던 만져질 듯한 촉각적 공간감이 전통적인 시각적 환영을 대체한다. 작업실의 앞 산은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처럼 동질이상의 작품을 시리즈로 생산하게 했다. 겸재의 [인왕제색도]로 대변되는 동양화는 크든작든 그 안으로의 산책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적 시점이 존재한다. 앞산 풍경에서 오딧세이의 여정만큼이나 이동이 내재한다. 여기에서도 숫자, 알파벳 같은 기표들은 등장하며 여전히 화면 위를 떠돈다.
작품에는 작업실에서 하는 앞산(인왕산)의 상상적 이동 시점들이 내재한다. ‘이러한 기호는 상형문자처럼 어떤 형상을 닮기도 하지만 감정의 모양을 형상화하기도 한다.’(2012년 갤러리 팔레 드 서울의 Drawing 전 전시소개 중) 물리적, 심리적으로 조우한 대상에서 받은 인상과 기표들의 연결이다.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특성에 대해 ‘기표들은 작가의 일상 중에 만난 어떤 인물이나 특정 장소, 시간 등을 상징하는 상징 언어’(2012년 표갤러리 전시소개 중)로 평가되었다. 검정색 기표들은 바탕색 기표들과 달리 음영 표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나 살처럼 얼룩덜룩 친근한 표면은 검은 지역에서 급격하게 추상화된다. 기호나 그 단편인 검은 띠들은 느슨하게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징을 박은 듯한 긴장감이 부여된다. 블랙이 음(陰)이라면, 차우희의 작품에서는 음이 양보다 더욱 강력하다. 블랙은 얇은 원근감에 평면성을 부여한다. 세잔의 후예인 입체파 화가들이 그림의 자율성의 전제인 평면성을 확보하기 위해 글자가 인쇄된 종이를 화면에 꼴라주한 미술사적 선례가 있다.
2010년 <기억의 상자> 전에서 전시장 전면에 배치된 12개의 선반에 넣은 캔버스 가방들은 오디세이의 배, 그 돛폭의 기억을 담고 있다. 12에는 12 별자리, 십이지신 등의 상징이 포함된다. 기호는 처음에 분명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져 해석의 대상이 된다. 당시에는 누구나 읽을 수 있었던 것이 후대에는 아무나 읽을 수 없게 된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조건을 처음부터 실행하여 기호의 불투명성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본다. 2011년 정선 오마주 시리즈에서 대지나 살같은 느낌의 바탕면과 상호작용하는 기호는 시간에 따라 부침(浮沈)하고 부유(浮游)하는 모양새이다. 변화나 이동은 수직적, 수평적 차원 모두에서 일어난다. ‘흰 캔버스 가방 위의 흑색의 문자기호들은 신의 조형물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호를 담고 있다는 해석과 그 안에 숨겨진 인간 본연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것을 기표로 표현한 것이다’(2010, 워터게이트갤러리 전시소개 중)
‘캔버스는 삶의 장이에요. 필드라고 하는 것이요. 내가 거기에서 펼치는 거예요. 그리고 기호이기도 해요...저한테는 기호랑 글자가 중요해요. 예를 들면 함부르크를 지날 때를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에는 글자가 나와요. H 하고 나타나요...어떤 내가 만나는 도시 내가 만나는 물건에 대해서 알파벳 글자를 넣었어요.’(인터뷰) 문학에 대한 선호는 문자 기호의 한 근원을 알려준다. 작가는 청소년기 뿐 아니라 미대 다닐 때도 지속되었던 문학적 경험에 대해 ‘뭔가 내가 모르는 세상이 여기 있고요. 단어 하나가 다 빛나는 거예요. 그냥 이렇게 지나가는 이런 얘기가 아니라 단어 하나가 문장 하나가 빛이 나는 거예요.’(인터뷰) 이런저런 문턱을 통해 젊은 여성 작가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을 한국 미술계의 풍토와 달리, 그에게 예술적 깨달음을 주었을 문자들은 빛을 발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빛과 어둠의 관계처럼 명암 대조가 분명한 차우희의 작품에서 인쇄된 글자의 조건이 나타난다. 읽기 위해서는 바탕과 차이가 있어야 하고 간격도 있어야 한다. 차이에 기반하는 언어의 조건은 조형 언어도 마찬가지다.
정신분석을 언어학으로 다시 읽은 자크 라캉(각주 6)은 부유하는 기표의 특성을 지니는 작품과 작가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로렌초 키에자는 [주체성과 타자성; 철학적으로 읽은 자크 라캉]에서 ‘기의는 또다른 기의를 통해서만, 또 다른 의미작용을 참조함으로서만 자신들의 목표에 이를 수있다’는 소쉬르로부터 시작한다.(각주7) 기의들의 상호의존이나 언어의 변별적 구조라는 언어학적 가설은 기호와 대상의 보이지 않는 끈을 느슨하게 한다. ‘차이적 체계’(소쉬르)로서의 언어는 애초에 표류의 조건을 가지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표와 기의 사이의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간극’을 강조하는 라캉은 소쉬르적 기호의 통일성을 파괴한다. 기의가 기표 사슬의 효과로서 기표의 횡선 아래에서 계속해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분열된다.(각주8) 언어를 통해 인간 주체가 되는 정신분석학적 전제에 의하면 주체는 언어의 분열적 조건을 공유한다.
라깡에 의하면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전혀 일대일 대응관계가 없기에, 기표는 그 어떤 의미작용 효과도 갖지 않는다. 기표는 다른 모든 기표들과의 차이적/ 대립적 관계 안에서 고려될 때만 의미화하며, 의미작용 효과를 생산한다.(각주9) 즉 어떤 기표도 완전하게 주체를 의미화하지 않는다(각주10). 모든 개별 인간이 언어를 능동적으로 조작할 수 있기 오래전부터 언어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각주11)에 한정되지 않고 감옥 같은 상징의 질서를 벗어나 다른 말을 시도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주어진 운명을 작가 또한 짊어지고 떠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차우희의 회화작품에 출몰하는 중요한 조형적 특징인 문자들은 ‘무의식의 언어적 구조’(라깡)(각주12)이다. ‘문자는 의미없는 기표’지만 동시에 그것이 ‘언어의 실재적 구조’(라깡)(각주13)라면 작가의 탐구적 여정은 끝이 날 수 없다. 차우희의 오디세이의 배는 무엇인가를 실어나르는 빈 배로서의 기호가 아니라, 채워질 수 없는 욕망으로서의 삶 그자체로 떠도는 기표인 셈이다.
각주
각주1) 로버트 A 존슨, [신화로 읽는 여성성 SHE](고혜경 옮김, 동연) p6-9
각주2) 나무 위키 ‘히스테리’의 정의 참조
각주3) 페이트만(Carole Pateman)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the sexual contract](1989)(이충훈, 유영근 옮김, 이후 출판사) p28-29
각주4) 페이트만(Carole Pateman), 위의 책, p.198
각주5) 낸시 초도로우(Nancy J, Chodrow) [모성의 재생산 The Reproduction of Mothering](1978)(김민예숙 강문순 옮김, 한국 심리치료 연구소) p20
각주6-13, 순서대로 페이지 표기) 로렌초 키에자, [주체성과 타자성; 철학적으로 읽은 자크 라캉](2012) 이성민 역(난장), p136, p104, p109, p126, p112, p126, p124, p125
출전; 차우희 오디세이(책임연구원 고동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