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겸 / 겹의 미학
윤진섭 미술평론가
조각가로서 평생 ‘단순과 절제미’를 추구한 김인겸(1945-2018)의 작고 5주기 기념전이 서초동에 위치한 Space21에서 열렸다. [IMAGE SCULPTURE](2023.11.1.-12.9)전은 이보다 앞서 을지로에 있는 The SoSo갤러리에서 열린 김인겸과 김산(사진작가/김인겸의 자)의 2인전과 함께 비록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김인겸의 조각과 드로잉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두 전시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조각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김인겸 특유의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인겸의 드로잉이란 과연 무엇인가?
김인겸의 드로잉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조각가로서 그의 간단한 이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알다시피 김인겸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세워지면서 커미셔너인 미술평론가 이 일에 의해 윤형근, 곽훈, 전수천과 함께 출품작가로 지명되었다. 이때 김인겸은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하여 일약 국제적인 관심을 끌게 되는데, 그 이듬해인 1996년에 퐁피두센터의 초대를 받아 레지던시에 머물게 된 것은 그 여파였다.
김인겸 특유의 미니멀한 조각의 평면적 전개라고 할 수 있는 드로잉은 바로 이 무렵에 탄생하였다. 화집에 실린 드로잉 관련 아카이브 자료에 의하면 드로잉은 검은색 물감을 듬뿍 묻힌 스펀지나 스퀴즈로 이루어졌다. 말 그대로 장차 구현할 조각작품을 위한 에스키스의 성격이 짙었던 것. 즉, 3차원의 입체적 구조가 2차원 평면에 옮겨진 것으로 일종의 전개도인 셈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시작된 김인겸의 평면적인 조각 과정 전체를 생각한다면, 이 드로잉 작업은 선후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상호보완적인 동시에 자족적인 것이 특징이다. 김인겸의 조각과 드로잉의 관계는 때로는 본격적인 조각을 위한 밑그림의 성격을 띠면서도 한편으로는 드로잉 자체가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드로잉 작업이 2018년 작고할 때까지 일관되게 지속된 배경에는 이처럼 드로잉에 대한 김인겸의 강한 애착이 놓여 있었다.
화집의 연보에서 김인겸은 훗날 자신의 조각에 영감을 준 것은 창호에 난 사각의 작은 구멍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양반집 고택과 같은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보이는 ‘차경의 미’ 또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 열린 문들이 일자형으로 나란히 관통하는 공간구조의 특징이 김인겸의 조각작품이나 드로잉에 자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인겸의 조각과 드로잉은 ‘겹’의 미학이다. 검정을 비롯하여 청색, 적색, 금색, 은색 등등 단일한 색으로 제작된 드로잉은 색의 농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일정한 면적의 겹침 효과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모시를 비롯한 얇은 사(紗)가 이루어내는 겹침의 하늘하늘하고 투명한 느낌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기운생동의 기세가 느껴진다. 전에 내가 썼듯이, 동양미학의 한 특징이랄 수 있는 여백은 그의 ‘조각적 회화’가 지닌 심미적 특질임에 분명하다. 사실 형태를 바탕에 까는 이 능력만큼 김인겸의 회화적 감각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1997년의 <Dessin de Sculpture>에서 출발하여 1998년의 <Space of Emptiness>, 2000년대의 <Space-Less>에 이르기까지 김인겸의 단색 드로잉은 갈수록 섬세해지면서 감각적으로 극대화된다. 회화보다는 조각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탓인지 단색화의 열풍이 유독 김인겸의 단색 드로잉을 비켜 지나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김인겸의 조각은 이처럼 숱한 드로잉의 훈련이 조각에 반영된 결과이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입체의 두께에 도전하면서 조각이 회화에로 이동해간 흔적이다. 김인겸의 예민한 감수성이 작품의 형과 색에 고루 스며 한 치의 오차나 흠도 허용치 않으려는 깐깐한 성정이 그 흔적의 행간에 알알이 배어 있는 듯 하다.
-1차 출처: 퍼블릭 아트, 20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