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명동화랑 1970-1982]전이 의미하는 것
윤진섭 | 미술평론가
서초동에 위치한 SPACE21에서 지금 중요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응답하라 명동화랑 1970-1982]전(2025.11.19.-12.27)이 그것이다. 이 전시가 중요한 이유는 전시의 초점이 명동화랑의 설립자인 고(故) 김문호 선생(1930-1982)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의 공동기획자인 정연심과 이유진은 초대작가로 강국진, 김정숙, 김창열, 김태호, 박서보, 성능경, 윤형근, 이건용, 이우환, 진옥선, 하인두, 허황을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과 함께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진열, 전시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기획의 변에서 기획자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명동화랑을 거쳐간 많은 작가들이 한국미술사를 빛낸 중요작가로 기록됐지만,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적인 전위그룹 <AG>의 작가들은 2023년의 전시를 통해 이미 소개했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배제하였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70년대를 풍미한 전위그룹 <ST>의 이건용, 성능경과 단색화 계열의 김창열, 박서보, 김태호, 윤형근, 이우환, 진옥선, 허황, 추상조각의 김정숙, 색채추상의 하인두, 실험미술의 강국진을 초대하였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사진과 팸플릿, 엽서, 포스터 등등 명동화랑과 관련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 중에서 유독 팸플릿 하나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현대미술 1957-1972 추상-상황, 조형과 반조형전’(1973.2.17.-2.24, 2.25-3.4)이 그것이다. 이 전시의 출발점인 1957년은 마침 비정형(Informel) 회화운동의 기치를 올린 현대미술가협회가 출범을 한 해거니와, 이를 의식한 듯 김문호 대표는 팸플릿의 인사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어 주목된다. “흔히 우리나라 미술이 국제적 미술운동에 대한 각성과 함께 그 대열에의 직접적이며 의욕적인 참여의 시기를 1957년의 해로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대설정이 과연 타탕할 수 있느냐는 이 나라의 독자적 예술창조의 문제와 함께 다시 규명되어야 할 과제이기는 합니다만 그러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의의 자체 또한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경복궁 안에 개관한 해가 1969년인 점을 감안할 때, 불과 4년 후에 벌어진 이 전시의 탄생은 일개 상업화랑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 거의 공공미술관의 역할을 한 의의를 지닌다. 국립현대미술관에 큐레이터란 용어도 직책도 변변히 없던 그 당시는 문자 그대로 호랑이 담배피던 어둑한 시절이었다.
이 전시가 지닌 또 하나의 의의는 작가선정의 객관성을 지니기 위해 선정위원 제도를 두었다는 점이다. 선정위원에 미술평론가 유근준, 유준상, 이일이 위촉되었으며, 3인 공동명의로 된 ‘한국현대미술, 그 미래의 상기’란 장문의 서문을 팸플릿에 수록하였다(대표집필: 유준상). 참고로 초대작가 명단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1부 추상-상황: 권옥연, 김영주, 김정숙, 김종학, 김찬식, 김창열, 김형대, 남관, 박서보, 박종배, 윤명노, 이종각, 전상범, 전성우, 정창섭, 정영열, 조용익, 최기원, 최만린
2부 조형과 반조형: 권영우, 김구림, 김차섭, 박석원, 서승원, 심문섭, 엄태정, 이강소, 이건용, 이동엽, 이반, 이승조, 최명영, 하동철, 하종현, 허황(이상 가나다 順)
이러한 주제의 구분과 작가명단의 차이란 무엇인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지난 15년에 걸쳐 이미 발표되었거나 초대되었던 작가 또는 작품을 다시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려는데” 그 1차적 목적이 있었던 것. 그러니까 현대미술가협회를 비롯하여 모던아트협회, 창작미술가협회, 신조형파, 현대작가초대전(조선일보 주최) 등등 1957년에 결성된 현대미술 경향의 여러 단체들로 대변되는 시대적 배경과 ‘AG’와 ‘ST’, ‘신체제’ 등으로 대변되는 70년대 초반의 전위‧실험미술 단체들을 염두에 두고 ‘노도질풍(怒濤疾風)’의 도래에 대한 미래적 전망을, ‘그러한 징조’를 예견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7년의 창립을 기점으로 앞에서 언급한 단체의 창립동인들 대다수가 1부 전시의 명단에서 빠진 것은 의아하다.
이 단체들이 창립한 1957년에서 이 전시가 기획된 1973년에 이르는 기간에 화단에서는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1957년에 비정형 추상의 씨앗을 뿌린 현대미술가협회의 부상으로 대변된다.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그로부터 ‘지난 15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1부의 명단 중에서 비정형 추상을 추구한 현대미술가협회의 김창열, 박서보, ‘벽’전의 김형대, 60년미술가협회의 김종학, 윤명노, ‘악뛰엘’의 조용익 등이다. 이 점에 대해 일찍이 나는 <한국 모더니즘 미술 연구>(재원, 2000)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60년대 초반의 국제전 참가는 과도기적인 징후를 띠고 있었다. 일례로 1962년의 [제1회 사이공 국제미술전] 참여작가 명단은 이를 잘 보여준다. 베트남에서 열린 이 국제미술제에 민경갑, 박노수, 박래현, 서세옥, 권옥연, 문학진, 유경채, 이세득, 최영림, 김세중, 김정숙 등 국전출신의 보수세력과 박서보, 이수재, 정창섭, 이종상 등 혁신을 표방하는 신진세력이 함께 참가하고 있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비엔날레에는 김환기, 김기창, 서세옥, 김영주, 유영국, 유강열, 한용진 등 보수세력이, 같은 해 제3회 파리비엔날레에는 박서보, 윤명로, 김봉태, 최기원, 김창렬(커미셔너) 등 전원 혁신계열이 참가한다. 이같은 물갈이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되어 70년대 중반에 이르면 보수세력이 완전히 탈락하고 국제전 참여는 혁신계열의 아방가르드 작가들로 채워지게 된다. 70년대는 40대의 중견작가로 성장한 앵포르멜 1세대들이 한국미술협회(약칭 ‘미협’)를 중심으로 화단을 주도하던 때로 그 가운데서도 미협 이사장을 역임한 박서보의 약진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이른바 ‘박서보 사단’의 부상으로 대변되는 이 시기는 공과(功過)가 엇갈리는, 즉 찬사와 함께 비난의 표적이 되는 시기이다. 박서보를 둘러싼 이 무렵의 일화는 하인두의 ‘애증의 벗, 그와 30년’<선미술, 1985년 겨울호>을 참고하라.”
여기서 제2부의 명단은 1967년에 국립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무, 신전, 오리진)을 기점으로 변화된 화단의 기류를 반영한다. 이른바 6.25전쟁세대가 주창한 비정형 회화(앵포르멜)에 대해 저항한 세칭 4.19세대의 ‘탈평면’ 운동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된다. ‘AG’의 하종현(회장)을 비롯하여 김구림, 김차섭, 박석원, 심문섭, 이강소(AG, 신체제), 이건용(AG, ST),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아이상 AG, 오리진), 거기에 권영우, 이동엽, 허황(이상 단색화)이 가세하고 있다.
이번에 SPACE21에서 열린 [응답하라 명동화랑 1970-1982]전은 한국미술사와 전시기획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1970년대 명동화랑의 활약상을 테마로 한 기획전이다. 과거의 전시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전시다.
- 1차 게재: 서울문화투데이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