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여, 영원하라! 
-‘아마도’의 미적 전복성과 저항성에 대한 추억-
                       
윤진섭 | 미술평론가, 아마도 운영위원


Ⅰ. 
 나는 지금 한 장의 그림을 본다. 옆으로 긴 작은 노트에 후려 갈겨쓰고 간단한 그림을 곁들인 드로잉이다. ‘아마도 예술공간(Amado Art Space) 개관 Performance’라고 적혀 있다. 노트의 맨 위에 쓴 날짜를 보니 2013.8.12. 오후 7시다. 기록은 참 좋은 것이다. 까맣게 잊었나 했는데, 이처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지난 일을 상기시켜주니 말이다. 

 저 때는 참 신났었지. 동심으로 돌아간 듯, 창립동인과 하객들이 비닐 끈으로 만든 칙칙폭폭 기차에 몸을 싣고 본관에서 신관에 이르는 삼백 미터의 길을 즐겁게 떠들며 달려갔지. 호각소리를 신호로 다 함께 노래를 불렀어. “기차길 옆 아-마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일행은 마침내 발길을 멈춘 아마도 2관 앞 도로에 일렬횡대로 늘어섰다. 그리고는 처음 군대에 들어간 것처럼 앞을 바라보며 ‘차렷, 경례!’ 하는 나의 우렁찬 구호에 맞춰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일행 중 나를 비롯한 두어 명이 종이 가방을 모자처럼 쓴 모습이 사진에 보인다. 즐거워하며 다 함께 웃는 모습이 정겹다. 참 순수한 시간이었다. 저 시절은 언제 또다시 올까? 


Ⅱ.
 퍼포먼스를 할 때면 난 무조건 신이 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충청도의 시골 농촌에서 팔 남매의 막내로 자란 난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던 어머니의 감쌈 아래 개구쟁이 짓도 참 많이 했다. 그 기질이 죽지 않고 살아서 그런지, 들판을 뛰어다니는 천둥벌거숭이처럼 퍼포먼스를 할 때면 상상력을 발휘, 관객들과 한 몸이 돼 논다. ‘놀이’와 ‘재미’에 바탕을 둔 나의 퍼포먼스는 ‘아마도 개관기념 퍼포먼스’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기차놀이가 끝나고 저녁에 파티가 벌어졌다. 이때 예술을 향한 무한한 자유와 작가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아마도>의 정신이 유감없이 발산되었다.  

 다시 즉흥적인 발상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래, 맛있는 음식이 있구나. 다 같이 즐기시며 노시라. 반성합니다! 나는 주변에 있는 분들과 함께 즉석에서 테이블 몇 개를 잇대 놓고 그 위에 접이 의자를 일렬로 늘어놓았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테이블에 올라가서 의자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음식을 드시면서 각자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거라도 좋습니다! 나는 대열의 앞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의자 하나를 두 손으로 번쩍 들고 외쳤다.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테이블 위에 앉아 음식이 담긴 접시를 손에 든 채 즐겁게 웃는 참가자들을 보시라! 박혜성 대표는 뭐가 저리도 좋으실까? 서진석 운영위원은 맨 앞에서 맛있게 음식을 드시는구나. 

 ‘관객참여’는 퍼포먼스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라지? 드디어 흥겨운 여흥 시간이 돌아왔다.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만면에 웃음을 띤 여성이 연주하는 빠른 템포의 바이올린 음악이 흘러나오자 장내에는 일순 탄성이 터지면서 흥겨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때 누군가 서진석 운영위원의 머리에 주변에서 구한 긴 종이상자를 씌웠다. “자, 여러분. 아무 내용이라도 좋으니, 여기에 사인해주세요. 역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서진석 위원이 천천히 주변을 걷기 시작하자 검정 사인펜을 든 축하객들이 각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윤범모 운영위원(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글씨다. ‘사랑’은 이진명 큐레이터의 사인이다. 그 외에도 양지윤 큐레이터, 김미래 작가, 도로시 윤 작가 등등 많은 축하객들이 즐겁게 즉흥 사인 퍼포먼스 행사에 참여했다. 이어서 벌어진 윤범모 운영위원의 자작시 낭송에 즐거운 아마도 개관 첫날의 밤이 깊어갔다. 


Ⅲ.
 아마도 10년의 역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Art & Sex #1: Sex+Guilty Pleasure>전(2014.10.6.-11.6) 이다. 장지영 아마도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 전시는 회화, 오브제, 미디어아트, 드로잉 등등 다양한 매체와 방법론을 통해 성 담론을 펼쳐나가고 있는 작가들을 초청하여 현대사회에서 성(性)이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묻고자 했다. 

 장지영 큐레이터는 도록의 서문에서 아마도 연구소는 ‘예술과 성’을 주제로 지속적인 전시를 펼쳐나갈 예정이라고 밝히고, 그 첫 번째 주제가 ‘성(性/sex)’이 지닌 두 측면, 즉 죄의식(guilty)과 쾌락(plesure)이라고 썼다. 이른바 성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겉과 속이 다른 두 개의 문화적 양상에 대해 작가들이 펼치는 적나라하며 대담한 성의 세계를 통해 새로운 성 담론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 규범과 실제 성 사이에서의 괴리 또는 사회적 규범의 허상이 가져오는 씁쓸함”을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이 기획전의 개막 퍼포먼스를 제안받고 고민에 싸였다. ‘예술과 성’이라, 대체 이를 어떻게 풀어간담? 성(性)하면 색안경을 쓰고 보는 가뜩이나 보수적인 사회에서 말이다. 여담이지만, 서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궁금해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모텔의 입구마다 펄럭이는 가림막이 그것이요, 둘째는 그것도 모자라 차량의 번호판 앞에 세워놓은 판자다. 이 이중의 장치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연구소가 기획한 ‘예술과 성, 죄와 쾌감(Art&Sex: Guilty Pleasure)’은 이 이중적 장치의 이면에 숨은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살펴보자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이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유교 문화의 잔재인 한국사회의 근원적 이중성을 비꼬는 상징어이듯, 뿌리 깊은 가면의 허상을 벗겨보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형성된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사상이 한국 사회의 기층문화를 단단히 결박한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민 중에 문득 떠오른 것이 조개탕과 가지무침을 메뉴로 한 음식 퍼포먼스였다. 그렇다. 이 음식을 푸지게 차려놓고 관객들과 출연자가 한자리에 모여 다 함께 즐기는 가운데 솔직한 성 담론을 펼쳐보자. 나는 아마도의 학예실에 음식 재료와 조리기구, 그리고 행위 때 입을 흰색의 요리사용(用) 가운을 요청했다. 

 음식 퍼포먼스 중간에 특유의 부채를 태우며 제문을 읽어나가는 원로 행위예술가 성능경 선생의 즉흥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동안, 왕치(王治/Wangzie)는 준비해 온 ‘성(性) 선언문’을 관객들에게 배포했다. 참고로 그 전문을 여기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성(性)을 성(聖)하게 하라!
수성(守性)을 하는 일은 수성(守城)보다 어렵다. 성(性)이 강하면 기둥 하나가 수천 명의 병사를 당할 수 있으니, 성을 기르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성은 삼라만상(參羅萬像) 번식의 근원이요, 생활의 기쁨을 증가시키는 요체이다. 일어나지 않는 놈은 어루만져서 일으킬 일이요, 깊지 않은 우물은 바닥을 더 파면 된다. 

깨어라! 굵은 기둥이여! 넘쳐라! 깊은 저수지여!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면 비가 내리지 않으나 젖은 하늘에 천둥이 치면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대 기름진 들녘이여, 
동녘이 밝아올 때 수태를 고지하라! 

성(性)은 동틀 녘에 성스러워진다. 그 성을 에너지 원(源)으로 쓰라. 
때는 바뀌어 이제 여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 
그대 힘없는 가지들이여, 부디 이 튼실한 조갯국을 먹고 몸을 보신하라. 

보신하라! 보신하라! 보신하라! 보신하라!

내가 그대들의 마르지 않는 성(性)을 위하여 주문을 외우나니 오로지 ‘뿅’이니라. 

뿅! 뿅! 뿅! 뿅! 뿅! 
   
2014.10.6.
아마도 예술공간/연구소 주최 
<Art&Sex>展을 위한 performance

왕치(王治/Wangzie)

 행위예술가 왕치가 선언문을 낭독하는 동안 주로 여성 관객들이 많은 장내는 활기로 가득 찼으며, 특히 후렴구인 ‘보신하라!’와 ‘뿅!’을 다 함께 복창할 때는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신바람이 씽씽 났다. 


Ⅳ.
 ‘아마도’는 기존의 화랑이나 미술관과는 달리, 보다 자유롭고 열린 공간이 되길 원했다. 특히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젊은 작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운영위원들은 자주 모임을 갖고 운영방법에 대해 논의했으며, 개관 초기에 여러 차례의 운영위원 회의를 거쳐 마련된 것이 <아마도 에뉴얼날레-목하진행중>과 <아마도 전시기획상>, <아마도 사진상>이다. 이 상들이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마도’의 큰 기둥들이라고 한다면, 그 사이사이에 이루어진 전시들은 젊고 재능 있는 청년작가들에게 개방된 ‘아마도’의 골격들이다. 이들이 있어서 마치 시골의 허름한 여인숙 건물을 연상시키는 ‘아마도’ 특유의 미적 아우라가 형성될 수 있었다. 나는 ‘아마도’에 들를 때마다 “사물의 진리는 폐물에서 가장 잘 읽혀진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외친다. “아마도여, 영원하라!”
    

- 1차 게재: 아마도예술공간 클로니클 201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