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평화를 위해 바친 제물/전위의 전사 오를랑
윤진섭 | 미술평론가
01.
오를랑(ORLAN)은 누구인가? 세계 100대 여성작가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 태생의 작가 오를랑. 그/녀(H/S) 1) 에게 더 이상의 수식은 필요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몸 자체가 예술인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미시(微視)에서 거시(巨視)로, 거시에서 미시로 순환하는 하나의 정교한 미학적 체계이다. 일찍이 이 점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금세기의 저명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오를랑의 예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대미술이 야기한 중요한 미학적 쟁점에 접근해 들어가는 일과 직결된다. 지금까지 많은 이론가들이 그/녀 2) 의 작품세계에 대한 해명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인 해석에 그치고 만 것은 그/녀의 작품세계가 매우 암시적이며 다면체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론, 정신분석학, 기호학, 사회학, 젠더이론 등을 동원한 여러 분석들은 그/녀의 작품세계가 지닌 심오한 의미를 완벽한 담론의 형태로 담아내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과 관련된 비평들은 미시적이건 거시적이건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완전한 분석을 가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몸의 정체성, 권력, 종교, 미/추, 선/악, 성(聖)/속(俗), 소통, 성(性) 3), 젠더 등의 범주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그/녀의 미적 담론은 하나의 척도로 접근하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너무도 광대하기 때문이다.”
-윤진섭, <성(聖)과 속(俗)의 문턱에서>, 2001, 세줄갤러리 주최 오를랑 초대전 서문-
그렇다. 오를랑은 젠더(gender)의 범주를 초월한다. 오를랑(ORLAN)이란 이름이 남성에도 여성에도 속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냥 인간이다. 나는 최근에 그/녀의 작품세계가 지닌 의미를 가리켜 ‘평탄작업’에 비유했는데 4) , 그 골자는 높은 산(남성)을 깎아 골짜기(여성)를 메꾸는 일과 관련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를랑은 전사(戰士)이다. 실제로 그/녀는 90년대 초반에 무려 아홉 차례나 성형수술을 불사하면서 평생토록 온몸을 바쳐 남성중심사회가 만들어놓은 뿌리 깊은 편견과 불평등에 관해 발언해 왔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인류의 평원이다. 인류가 지향하는 높은 이상이 안착해야 할 평탄한 세계인 것이다.
02.
세계는 그처럼 신성한 과업을 위해 오를랑을 내려보냈다. 아니, 스스로 태어났다. 그/녀는 외친다. “나는 그대가 나임을, 내가 그대임을 재가한다.(I AUTHORIZE YOU TO BE ME, I AUTHORIZE MYSELF TO BE YOU)” 이 얼마나 명쾌하면서도 힘이 있는 선언인가? 그/녀의 이 당찬 발언은 인간을 속박하는 그 어떤 제도나 관습도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의 권리를 유린할 수 없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곧 당신이고 당신이 곧 나라는 등식은 인간의 평등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아홉 차례의 성형수술로 인하여 더 이상 신체의 사용이 곤란해지자 오를랑은 가상현실(VR)의 세계에 주목하게 된다. 컴퓨터를 이용한 이미지의 합성은 미술표현의 새 장을 열었다. 그/녀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된 여성의 지위에 대해 주목했다. ‘몸’,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몸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온갖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전통적억압에 대해 주목한 그/녀는 이미지 합성기법을 통해 평탄작업을 벌여나갔다. 이때 오를랑이 택한 전략은 여성의 지위 상승을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을 폄하(貶下)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성공한 여성들을 모델로 삼아 ‘자기화’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큐리(Marie Curie)를 비롯하여 같은 노벨상 수상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란의 나르게스 모함마디(Narges Mohammadi) 등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모델의 분신이 되는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
03.
쿠르베(Gustav Courbet:1819-1877))의 유명한 <세상의 기원>(1866)을 패러디한 오를랑의 작품은 이상적인 인류의 고원을 위해 세계를 해석하는 그/녀의 관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성의 하반신을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그린 쿠르베의 원작을 패러디한 오를랑의 작품 제목은 <전쟁의 기원>(1989)이다. 이 작품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남성기의 발기한 모습이다. 그/녀는 여성기를 발기한 남성기로 대체함으로써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가 다름아닌 남성임을 환기시켰다. 세상을 낳은 주체가 여성임에 반해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주고 세상을 분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주체는 남성임을 강조한 것이다.
04.
오를랑의 몸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바쳐진 하나의 제물이다. 그/녀는 마치 인류의 죄악을 대속(代贖)하기 위해, 혹은 미의 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태어난 성녀와도 같다. 그/녀는 언젠가 말했다. “미래를 기억하라”고. 이러한 그/녀의 예언은 이미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성 오를랑(Saint Orlan)’이란 이름으로 행한 퍼포먼스를 통해 제시되었다.
지고한 순결의 상징인 동정녀에서 창부의 모습으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흑백 사진으로 찍어 발표한 오를랑의 <스트립쇼>(1966)는 남성적 시각에서 여성을 해석한 기존의 관행에 대한 거부이다. 이러한 오를랑의 급진적 저항과 도전은 미에 대한 한 사회의 관념을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미의 관념을 제시하고자 한 오를랑의 야망을 보여준다. 그/녀는 그처럼 도전적인 행위를 통해 ‘성(聖)/속(俗)’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허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 불교적 표현은 성인의 마음속에 창녀가, 창녀의 마음속에 성인이 들어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역시 인류의 고원을 향한 평등의 개념이 아닐 수 없다.
05.
현대미술에서 대속(代贖)의 문제는 일찍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그는 ‘난장 신비극(Orgies-Mysteries-Theatre)'을 통해 희생과 부활의 문제를 다루었다. 디오니소스 축제를 전범(典範)으로 삼은 헤르만 니치의 행위극(O.M Theatre)은 극단적인 소란과 엑스터시, 그리고 감각적 충격을 통해 일상적 체계의 교란과 동시에 기존의 미적 가치를 전복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난장은 일상의 모든 세속적 가치나 질서를 교란하는 기제이다. 일상공간에서 신성공간을 거쳐 다시 일상공간으로 돌아가는 집단적 반성과 세계 순환의 문턱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혼돈에 찬 세계는 정화작용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얻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 희생제의는 대속을 통해 죄악에 가득 찬 세계를 구원하는 정화의 기능을 하였다.
성(聖)과 속(俗)의 문제는 오를랑 작품세계의 주된 테마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절개하는 희생제의를 통해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가는 국면의 전환을 반복한다. 그/녀가 만드는 컴퓨터에 의한 얼굴 이미지 합성작업은 성형수술 퍼포먼스의 리얼리티를 가상(virtuality)과 결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시바크롬 사진에 나타난 그로테스크한 형상들은 미적 가치와 범주를 둘러싸고 전개될 21세기 미학 논쟁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06.
언젠가 오를랑은 “나는 나의 몸을 예술에 바쳤다(I have given my body to art)”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이 말속에는 봉헌(奉獻)이라는, 다소 엄숙하면서도 비장한 뉘앙스를 풍기는 종교적 아우라와 함께 몸의 신체성을 강조한 신념이 담겨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수술대에 맡김으로써, 단지 말뿐이 아닌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발언을 입증해 왔다. 그녀의 성형수술 퍼포먼스는 전통적 미의 관념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예술의 제단에 몸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희생을 통해 세계를 정화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의 소산이다. 그/녀의 퍼포먼스가 지닌 이러한 희생제의적 측면은 몸의 제시를 통해 다양한 담론의 생성을 유도함으로써 관람자들과 적극적 소통을 기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언젠가 그린버그의 메마른 형식주의에 심한 거부감을 표명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예술이 삶을 떠나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끊임없이 삶에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라고 본 그/녀의 예술관이 담겨 있다.
07.
오를랑은 멀티미디어/퍼포먼스 예술가이다.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의 실천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모든 수단과 장비, 도구, 매체의 사용을 서슴지 않는다. 그/녀는 다양한 의료기구를 비롯하여 팩스, 비디오, 영화, 댄스, 의상, 심지어는 인공위성까지도 동원하는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얼굴 이미지 합성으로 전환하기는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형수술을 통하여 신체를 변형시키는 작업이 주축을 이루었다. 5) 아프리카와 멕시코, 콜롬비아의 방문은 그/녀로 하여금 고대 이방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의 절개된 아랫입술에 흙으로 빚은 원반을 끼워 넣는 아프리카 부족의 풍습은 그녀에게 강한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문신, 피부절개, 반인반수(伴人半獸), 가면, 입무식(入巫式), 희생제의(犧牲祭儀) 등등 이국(異國)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은 얼굴 이미지 합성에 필요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이마에 봉긋이 솟은 두 개의 부드러운 뿔은 이제 오를랑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실제의 얼굴에 솟아오른 뿔과 사진 속의 뿔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실제와 가상을 혼동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며, 컴퓨터는 그/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실제와 가상을 혼합하는 최적의 매체이다. 자신의 얼굴에 고대 부족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을 혼합하는 그녀의 방식은 미래의 미술을 향한 하나의 전략이다.
문신, 피부절개, 뿔 이식, 귀 장식, 보석 상감과 같은, 희생제의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적 형식들은 컴퓨터의 가상공간에서 그/녀의 얼굴 이미지와 합성되어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바뀐다. 반인반수(伴人半獸)에 가까운 오를랑의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강한 미학적 충격을 준다.
그/녀의 <재형상/전콜롬비아 자기복제(Refiguration/Self-Hybridation précolombienne)> 연작은 서구 문화의 역사를 통해 오랫동안 유지돼 온 재현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이의제기이자 미의 기준에 관한 기존의 미학에 대한 도전이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천사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자칼이다.”, “나는 악어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잡종개이다. 나는 검은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백인이다. 나는 여자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남자이다. 나는 결코 나의 피부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그/녀의 발언에 나타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수술을 통해 ‘여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되는’ 맥락과 궤적을 같이 한다. 미의 절대적인 가치와 범주에 대한 그/녀의 이러한 저항은 <자기복제> 연작을 통해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다양한 종류의 괴수(怪獸)와 인간, 신과 인간을 결합해 놓은 듯한 기묘한 형상들은 미의 절대적인 기준에 대해 던지는 그/녀의 의문부호이다.
08.
그/녀의 사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마도 눈일 것이다. 우리 마음속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일말의 우수를 동반하고 있다. 그/녀의 눈은 착취와 억압으로 점철된 유럽 문명, 곧 제국주의의 역사로부터 시선을 돌려 야생적 삶이 영위되는 ‘슬픈 열대’ 6) 로 향한다. 그/녀의 피와 살은 대속을 위해 바쳐진 공물(供物)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야생적 삶에 대한 찬미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지극한 연민과 사랑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나의 피요 살이라”고 예수가 말했듯이, 오를랑은 자신의 피와 살을 예술의 제단에 바침으로써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몸소 실천한다. 그/녀는 샤먼이다. 그녀는 피의 희생을 바침으로써 영혼의 전이를 이룸은 물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녀가 보여주는 새로운 삶의 시작은 엘리아데(Eliade, M)의 말을 빌리면, “태초의 시작, 즉 우주가 처음으로 낮의 빛을 본 시각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이 원형반복성은 세계를 성화(聖化)하는 기제인 동시에 우리를 초시간성과 초역사성의 지평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09.
마이클 하임(Michael Heim)은 [가상현실의 형이상학(The Metaphysics of Virtual Reality]이란 책에서 컴퓨터에 의한 가상현실의 체험이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가상공간 속의 사물들은 20세기의 마지막 30여 년 동안에 나타난 폭넓은 문화현상, 곧 컴퓨터화되어가는 현상에 속한다. 그는 그 한 예로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를 들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컴퓨터 매트릭스 상에서의 사물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늘 겪는 일상적 경험은 오히려 지루하고 비현실적이다. 그렇기때문에 실제와 허구를 구분할 줄 아는 우리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의 조건하에서 우리는 결국 인공적인 경험의 산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걸프전에 참전한 조종사의 경우처럼, 실제 행위가 모의된 움직임의 반복에 불과하다면 그 행위는 직접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마이론 E. 크루거).
10.
디지털 방식에 의한 이미지 합성으로 이루어진 오를랑의 시바크롬 사진들은 가상과 실제 사이에서 벌어지게 되는 주객의 전도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찍이 장자는 ‘호접몽(胡蝶夢)’의 우화를 통해 꿈과 현실의 모호성에 대해 논한 바 있다. 하루는 장자가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그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무릉도원을 날아다녔다. 꿈에서 깨어나자 장자는 자문한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이 우화만큼 가상현실에서 벌어지는 몰입 효과를 극명하게 대변해 주는 것은 없다.
오를랑의 작품들은 존재와 실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자 예술적 실천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끝없는 탐색은 컴퓨터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미학적 논제에 속한다. 다시 마이론 E. 크루거의 말을 빌리면, 만일 실제와 맞먹을 만큼의 인공경험이 우리를 둘러싼다면 존재와 실재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일은 더 이상 비현실적이거나 허황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오를랑의 반인반수 이미지들이 동영상으로 나타나는 극적인 가상현실 속으로 깊숙이 몰입해 들어간다면 그 이미지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우리는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미학적 질문이 가능하다. 그만큼 가상현실의 문제는 이미 우리의 곁에 바짝 다가와 있는 것이다. 오를랑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은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미적 취미나 가치판단을 둘러싼 좋고 나쁨(好惡)의 범주를 초월한 하나의 실재이며 엄연한 현실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그녀를 가리켜 ‘통제할 수 없는 살’이라고 부른 것처럼, 그녀는 작업은 우리의 미학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다.
11.
오를랑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연민과 공포를 통한’ 심미적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은 작품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혐오, 그리고 공포의 감정이 어느덧 연민으로 바뀌어 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고대 희랍의 비극이나 디오니소스 축제에 있어서처럼 연민과 공포를 통한 카타르시스는 오염된 사회를 정화하는 심리적 기제이다. 혼돈(카오스)에서 질서(코스모스), 일상공간과 신성공간의 사이에 문턱이 존재하는데, 그 인류의 반성을 위한 마당에 오를랑이 있다. 그녀는 샤먼인 동시에 종교이다.
12.
나는 오를랑의 명성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엽기에 가까운 그/녀의 작품은 국제 미술계에서 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성형수술이 주류를 이루는데, 날카로운 메스로 피부를 절개하고 꿰매는 수술장면이 대중이 보기에는 매우 끔찍했던 모양이다. 오를랑은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뉴욕에서 행한 작품은 세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피부를 절개하는 전 과정이 일종의 퍼포먼스로서 인공위성을 통해 파리와 터론토의 미술관에 중계되었다. 국소 마취를 하였으므로 오를랑은 또렷한 의식으로 수술장면을 TV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는가 하면 독서를 하기도 하였다.
오를랑이 이처럼 극단적인 형태의 퍼포먼스를 행하게 된 이면에는 그/녀 나름의 독특한 삶의 이력이 있다. 사춘기 때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몸이었다. 아담한 키에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인 그/녀는 열일곱 살 때부터 자신의 누드를 찍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가 찍은 사진은 초상화나 인물사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포즈와 달리 두 팔과 양다리를 뒤튼, 매우 고혹적인 포즈였다. 긴 머리에 뭔가를 강렬히 응시하는 듯한 시선은 얼핏 에로틱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춘기의 소녀들이 항용 그렇듯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듯한 이 사진에는 유혹을 당하고 싶은 욕망과 주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사이의 갈등이 내포돼 있다. 그/녀는 이 사진에 “오를랑은 그녀 자신을 출산한다.”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불어 특유의 말장난에서 비롯되는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오를랑은 그녀의 자아에 대한 사랑을 출산한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진 작업을 겪었던 그/녀는 1977년 아주 흥미를 끄는 하나의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예술가의 키스”라는 행위예술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관객들,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의 관심을 끌었다. 검정색 옷 위에 리얼하게 유방을 묘사한 갑옷 형태의 부착물을 걸친 오를랑은 행인들로 하여금 목 부분에 난 통로로 5프랑짜리 동전을 집어넣게 하여 동전이 성기 부분에 닿으면 그 사람과 프렌치 키스를 하는,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으로 인하여 그/녀는 직장인 학교에서 해고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는 세태를 강렬히 비판한 이 작품으로 인하여 명성을 얻었다.
13.
오를랑의 작품은 그/녀의 신체가 중심이 된다. 그만큼 그/녀의 작업은 신체에 대한 꾸준한 탐색으로 전개돼 왔기 때문이다. 초기의 누드 사진을 비롯하여 70년대 중반의 ‘키스’ 작품, 그리고 80년대 이후의 성형수술 퍼포먼스와 최근의 컴퓨터 합성사진 작업에 이르기까지 신체는 메시지 전달의 매개체가 되어왔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은 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 성모 마리아 등 명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얼굴 일부를 합성하여 자신의 얼굴을 성형한 작품에 이르러 극대화되고 있다. 서구적 미의 절대적 가치 기준에 의문을 표시한 그/녀의 이 작품은 미와 추, 성과 속의 개념에 대한 질문으로 읽힌다.
최근 들어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콜롬비아, 멕시코, 아프리카의 가면을 합성시킨 사진작품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다년간에 걸쳐 이 지역을 여행한 바 있는데, 특히 여성의 절개된 아랫입술에 흙으로 빚은 원반을 끼워 넣은 아프리카 부족의 풍습은 그/녀에게 강렬한 문화충격을 주었다. 문신, 피부절개, 반인반수, 가면, 입무식, 희생제의 등등 이국의 다양한 문화적 형식은 최근 사진 작업에 필요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실제로 이마에 봉긋이 솟은, 초승달 모양의 작고 귀여운 인조 뿔을 넣고 다니는 오를랑은 강한 개성의 소유자이며, 문화 테러리스트이자 금세기 최고의 전위예술가이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천사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자칼이다.”, “나는 악어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잡종개이다. 나는 검은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백인이다. 나는 여자의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남자이다. 나는 결코 나의 피부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이러한 아이러니는 수술을 통해 “여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되는” 맥락과도 같다. 미의 절대적인 가치와 범주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자기복제> 연작을 통해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다양한 괴수와 인간, 신과 인간을 결합해 놓은 듯한 기묘한 형상들은 미의 절대적 기준에 던지는 그녀의 의문부호인 것이다.
14.
광주에 위치한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의 이번 오를랑 초대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오를랑의 작품세계가 미디어아트와 관련된 최신의 진보된 과학기술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광주비엔날레 30주년 특별기념전으로 열리는 [오를랑 하이브리드:A.rtistic I.ntelligence]전은 스마트폰에 내장된 앱에 의해 구동되는 증강현실의 놀라운 세계를 보여준다. 말 그대로 대중의 직접적인 체험에 의한 예술의 광역화 현장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 7)
이번 전시를 위해 주최 측이 발행한 리플렛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 여기에 인용한다.
“신체로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적 내러티브를 담아내는 오를랑은 이번 전시를 통해 기술을 활용하여 물리적 신체를 다시 한번 가상의 공간에서 해체하고 결합하고 혼종한다. 자신의 몸이 예술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라고 말하는 오를랑은 변형된 가상의 신체를 활용하여 사회적 목소리를 예술적 실천으로 강렬하게 발화한다. 이번 전시는 기술이 가지는 무한한 장르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오를랑의 작품세계를 통해 기술 매체를 활용한 예술적 확장과 그 공생에 조우하고자 한다.”
미술은 시대의 기술발전을 담는 그릇이다. 과학은 기술의 모태이면서 새로운 기술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이 그렇고 인상주의 시대에 빛의 도입이 그랬다. 모터의 발명이 없었다면 장 팅겔리(Jean Tinguely: 1925-1991)의 키네틱 아트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마찬가지 의미에서 T.V의 발명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낳은 모태인 것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 이어서 나타난 새로운 예술상의 혁신은 컴퓨터에 기반한 인터넷의 전세계적인 확산이다 8). 컴퓨터에 이은 인터넷의 등장은 종이편지가 지닌 아날로그 형식을 전자우편(e-mail)이란 디지털 형식으로 바꿔놓았다. 20세기 초엽, 이태리를 중심으로 확산된 미래주의(futurism)의 열풍를 부추긴 것은 다름아닌 ‘속도’의 개념이었다. 그때는 움직이는 기차바퀴의 모습이 회화를 위한 새로운 소재였지만,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앱(app: ‘application’의 약자)을 비롯한 QR코드, 증강현실, 인공지능(AI), 챗봇(chatbot), 가상현실, 모의현실(simulated reality) 9) , 메타버스가 대세인 시대다. 장자의 우화 10) 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를랑의 이번 광주 전시는 그동안 자신의 몸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기술실험이 집약돼 선보인 오를랑 개인의 ‘박람회장’을 방불케 한 거대한 쇼 였다. 그것은 장자의 우화처럼 어떤 작품에서는 실제의 오를랑이 진짜 오를랑인지, 가상세계의 오를랑이 진짜 오를랑인지 구분이 어려운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아래의 <15>는 오를랑과 함께 한 나의 경험을 기술한 것이다.
15.
<오를랑 하이브리드(ORLAN hybrids:A.rtistic I.ntelligence>전이 개막한 2024년 9월 5일 오후, 오를랑의 강연이 끝난 후에 벌어진 오를랑 주도의 버라이어티 쇼(Slow Sexuelle) 11)는 관객참여형 난장 퍼포먼스였다. 어두운 실내 분위기에서 사이키델릭 조명이 무대를 현란하게 비추는 가운데 벌어진 이 쇼에서 나는 무대의 한편 구석에 세워둔 여러 피켓들 중 12) 에서 <This is MY BODY, MY SOFTWARE(이것은 나의 몸이자 소프트웨어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의 애창곡인 <뜨거운 안녕>을 전자음악의 반주에 맞춰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피켓을 든 참여자들이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실내는 마치 여자의 입술을 닮은 청색과 녹색의 반점들이 현란하게 떠도는 싸이키델릭한 분위기 탓에 마치 나이트클럽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진짜 오를랑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13). 무대에는 검정색 바탕에 프랑스어로 된 오를랑의 어록들이 흰색 글씨로 가득 인쇄돼 있고, 휘황찬란한 조명과 레이저의 불빛처럼 예리한 섬광들이 획획 어두운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다.
순간, 독특한 서체로 디자인된, 불어 문장이 가득 적힌 큰 보자기로 나의 몸과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노래를 듣던 오를랑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를랑은 피켓을 들고 옆에 서서 흥을 돋우던 이경호 센터장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천천히 보자기를 푸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가사의 내용과 열정껏 부른 노랫소리는 무관함을 실감하고 적이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에 보니 오를랑은 이 센터장과 보자기로 몸을 두르고 있었다. 그 뒤에 <울고 있는 여인들은 화가 나 있다(Les femmes qui pleurent sont en colère)>라고 적힌 피켓이 보였다.
16.
예술가는 섬세한 감정을 지닌 부류의 인간들이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의 분위기는 고음인 탓에 오를랑에겐 마치 악을 쓰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어쩌면 내가 지른 고음이 ‘폭력적’으로 느껴졌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반면, 이 센터장이 부른 노래는 감미로운 프랑스의 샹송 <그리운 연인의 노래(La Chanson Des Vieu Amants> 14) 였다. 노래 자체가 살살 녹는 것처럼 부드럽다. 그 이미지는 바로 평화, 사랑, 애정으로 연결된다.
오를랑은 비록 성형수술이란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한 작가이나 심성이 여리고 폭력을 혐오한다. “나는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피켓의 내용 그대로다. 그런 오를랑의 태도에는 가식이 없다. 오직 삶과 예술의 일치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들과 오를랑의 성형수술 퍼포먼스를 비롯한 충격적으로 보이는 작업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
17.
이것이 바로 동양의 선(禪)에서 ‘흰 것(白)을 들어 검은 것(黑)’을 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작품을 보는 눈이 깊지 못한 사람들은 흰 것은 흰 것으로, 검은 것은 검은 것으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현대미술의 감상에서 이는 가장 낮은 수준의 단계에 속한다.
오를랑이 제시한 <성형수술 이후>의 사진들은 매우 충격적이다. 입술은 두툼하게 부었고 눈 주변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으며, 눈과 입술 가장자리를 비롯한 얼굴 전체에 수술의 흔적이 남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폭력적인가? 아니다. 검붉은 피와 멍의 이면에 가려진 슬픔을 봐야 한다. 오를랑의 대속(代贖)을 향한 기호로서의 피와 멍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어떤 잔상들과 연결되면서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오를랑의 얼굴에 난 상처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리면 풍크툼(punctum)의 진원지이다. 나는 오를랑의 이 사진들을 처음 접했을 때 받은 충격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뭐랄까, 스스로 자청한 성형수술의 고통이 불러일으킨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녀의 제의용 가면과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마도 눈일 것이다. 우리 마음속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녀의 시선은 깊은 우수를 수반하고 있다. 그/녀의 눈은 착취와 억압으로 점철된 유럽 문명, 곧 제국주의의 역사로부터 시선을 돌려 야생적 삶이 영위되는 ‘슬픈 열대’로 향한다. 그/녀의 피와 살은 대속을 위해 바쳐진 공물(供物)이다. 15)
18.
오를랑이 수술대에 몸을 눕히고 얼굴을 성형한 것처럼, 나 역시 각기 다른 시기에 쓴 서너 편에 달하는 나의 글들을 모아 새로 쓰거나 재배열하거나, 첨삭하거나 이따금 짜깁기하면서 이 글을 썼다16).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소재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이듯, 나 역시 나의 문장을 가지고 지면(紙面) 성형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그/녀가 예술의 실험을 하듯이, 나 역시 비평적 실험을 했다. 이 행위는 과연 진리에 육박해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 과연 진리가 있기는 한 것일까? 그냥 하나의 세계를 해명하고자 한 하나의 길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의문부호 하나를 남기면서 글을 마친다.
- 1차 게재: ORLAN hybrids,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발행, 2024
ㅡㅡㅡㅡㅡ
1) 대문자로 ‘ORLAN’이라고 표기되는 그/녀의 이름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중성적 개념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나는 오를랑을 가리키는 대명사를 일관되게 ‘그/녀’(H/S)‘로 표기하고자 한다. 이 명칭은 보통명사인 ’인간‘을 의미한다.
2) 원문에는 ‘그’로 씌여져 있으나 이 글에서는 일관되게 ‘그/녀’로 바꿈.
3) 사실 오를랑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나 자신도 ‘그’ 혹은 ‘그녀’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지만, ‘그’도 ‘그녀’도 오를랑을 지칭하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순도 100 퍼센트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단 두 개의 단어로 인간의 성을 가를 수 있겠는가? ‘ORLAN’이란 이름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의 이름인 바, 이는 여기서 거론한 ‘평탄작업’과 관련이 있다.
4) 2024년 10월 5일에 G.MAP에서 열린 오를랑의 작품세계에 대한 토론회에서 한 발언 참조.
5) 내가 이 글을 쓴 때가 2001년이니 그 이후 오를랑의 작품세계에 나타난 변화를 생각하면 실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내가 판단하기에 오를랑은 세계탑10(top10)의 반열에 올라야 마땅한 월드 스타 중 한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80세를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 표현 매체에 기울이는 그/녀의 끊임없는 관심과 호기심, 예술을 위해서는 어떤 신체적 위험도 불사하는 예술혼과 열정, 추진력에 있다. 내가 이 글을 쓸 때의 문화적 환경과 과학기술의 조건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컴퓨터에 기반을 둔 인터넷과 이메일은 유행하였지만, 지금처럼 어플리케이션(app)에 의한 대중참여는 앱이 개발된 1010년 이후에나 가능했다. 오를랑이 이번 G.MAP 전시에서 보여준 앱과 증강현실에 의한 다양한 대중참여 작품들은 미술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6)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가 1955년에 펴낸 기행문의 제목이다.
7) 오를랑의 전시가 열리는 기간중에 G.MAP이 주최한 호주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스텔락(Stelarc)의 초대 강연은 매우 획기적인 행사였다. 오를랑과 함께 미디어아트 분야의 세계적인 두 거장을 동시에 초대한 이경호 센터장의 노고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를 표한다. 2000년에 서울의 인사동에서 열린 [서울국제행위예술제(Seoul International Performance Art Festival(SIPAF 2000)에 오를랑과 스텔락을 초대한 적이 있는 나로선 이번의 두 행사가 오랜 친구를 만난 뜻깊은 자리였다.
8) 전에 어딘가 썼듯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1932-2006)은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사이의 경계인이었다. 소위 World Wide Web(www)과 이메일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가 동시성과 함께 예술의 전세계적인 광역화 현상을 낳고, 이는 다시 세계를 거미줄처럼 엮는 얼책(facebook)과 인스타그램의 등장으로 새로운 예술경험의 모드를 낳았다.
9) 가상현실의 하위개념으로 가상현실을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구현한 시뮬레이션.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10) 꿈에서 본 나비가 나인지 현실의 내가 나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태를 가리킴.
11) 이날 벌어진 오를랑의 퍼포먼스 제목임.
12) 피켓은 오를랑의 어록들 중에서 고른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의 몸은 예술작품이다.”, “나는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울고 있는 여인들은 화가 나 있다.”, “나는 항상 예술을 해 왔다. 나는 다른 것을 할 줄 모른다.”, “나는 장식적인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정한 아티스트는 충고가 필요하지 않다.” 등등.
13) 2016년에 열린 세줄갤러리의 개인전에서 증강현실을 이용한 작품은 오를랑의 아바타를 통한 인상깊은 가상현실 체험이었다. 벽에 부착된 그림 속에 그려진 경극 등장인물의 커다란 가면에 QR코드가 숨겨져 있는데, 거기에 스마트폰을 대고 찍으면 오를랑을 닮은 분신 아바타가 그림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환영이다. 가상의 입체감이 있는 이미지를 보고 마치 실제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도 나는 실제로/처럼 다가오던 오를랑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일까?
14) 제라르 주아네스트 작곡에 자크 브렐이 작사한 1967년에 발표된 프랑스의 명곡으로 줄리에트 그레코가 불렀다. “물론 우리에게는 폭풍의 날도 있었지요. 20년의 사랑, 그것은 미칠 듯한 사랑이었어요.”란 가사로 시작하는 20년 동반의 노부부가 인생을 회고하며 부르는 노래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15) 이 글 08에서 글을 약간 추가하여 재인용함.
16) 오를랑의 이번 방한을 위해 나는 짧은 기간에 그/녀를 위한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월간 미술세계 2024년 10월호에 실린 <ORLAN, Surprise! 72 hours with Yoon Jin Sup>과 서울아트가이드 2024년 10월호에 실린 <오를랑, “나는 내 몸을 예술에 바쳤다”>를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