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 한국 실험미술의 미래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최근 몇 년간 미술계에서 부상된 미술 경향을 꼽자면 ‘실험미술(experimental art)’을 들 수 있다. 1960-70년대 한국 미술의 현장을 뜨겁게 달군 실험미술은 ‘전위미술(avant-garde art)’과도 통했다. 무엇을 실험한다는 것은 곧 남보다 앞서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험에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일종의 지적 모험인 실험은 실패를 전제로 하며, 그런 까닭에 ‘거사’를 위한 치밀한 준비가 요구된다. 용기와 열정,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뚜렷한 신념은 ‘실험’에 필요한 최상의 덕목이다. 
 지난 한국 현대미술을 되돌아볼 때, 60-70년대의 실험 또는 전위미술은 과거의 어떤 미술운동보다도 과감했고 행동적이었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전위미술로 간주되는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의 등장,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일찍이 이에 대해 쓴 글이 있어 여기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70년대라고는 했지만, 이 글의 논지에 맞는 미술운동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 1967년도의 일이다. 1967년 12월 11-16일에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20대의 작가들로 구성된 ‘무’, ‘신전’, ‘오리진’ 동인들이 합동으로 벌인 이 전시회는 60년대 중반까지 주도적인 경향이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강력한 이의제기 형식으로 출범한다. 연령상으로 볼 때 4.19세대에 속하는 이들 청년작가들의 의식을 한 마디로 규정짓다면 그것은 곧 ‘실험정신에의 왕성한 의욕과 열기’였다. 이 세 그룹에 속한 작가들은 미술을 바라보는 관심과 영역이 서로 달랐지만, 미술에 새로운 의식을 담는 그릇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미술은 부단히 그 형식적 틀을 깨나가야 할 그 무엇이란 점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곧 ‘전위정신’의 충일이었다.”
  -졸고, <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전개와 그 양상-이벤트, 오브제, 개념미술을 중심으로-, [미술평단], 1991년 여름호>-   

 당시 척박했던 한국미술계의 풍토에서 전위의 깃발을 올린 이 혁명적 거사로부터 57년이 지났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과 구겐하임미술관의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전 이 두 전시회는 제목은 다르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의 공동주최였으며, 그중 후자는 L.A의 해머뮤지엄으로 순회 전시되었다. 
은 어느덧 80대의 원로가 된 당시의 청년작가들에게 헌정된 뜻깊은 전시였다. 이 전시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평생 실험과 전위미술의 외길을 걸어온 원로작가들의 삶의 궤적을 극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작가는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등이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성능경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조명은 각별했다. 
 최근 성능경의 작품세계에 대한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해외 언론에 난 기사들의 내용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저명한 미술사학자 조앤 기(Joan Kee)는 ‘ARTFORUM’에 기고한 글을 통해 70년대 중반에 신문이란 대중매체에 주목한 성능경의 독창적인 시각을 소개했다. 그 외 성능경을 소개한 해외 언론으로는 ARTFORUM의 찰스 그린(Charles Green)의 기사를 필두로 The Guardian의 데이빗 스미스(David Smith)의 2023년 9월 3일 자 기사, 타일러 코번(Tyler Coburn)이 쓴 2023년 9월 6일 자 ArtReview지의 기사, 성능경과 카비르 잘라(Kabir Jhala)의 인터뷰를 다룬 THE ART NEWSPAPER의 2023년 9월 28일 자 기사, ArtAsiaPacific의 2023년 11월 1일 자 HG Masters의 기사 외에도 New York Times, MoMA, Ocula, Artue, Art Fact, Artsy, Frieze 등등에서 성능경에 괸한 내용이 검색된다. 참고로 최근 성능경의 작품이 구겐하임미술관과 MoMA에 소장됐음을 밝혀둔다.   
 성능경은 당시 <신문: 1974. 6. 1 이후>란 작품을 통해 언론 검열이 성행하던 독재정권 치하의 사회상을 비판하였다. 제3회 <ST>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일종의 퍼포먼스 한국미술사에서 ‘이벤트(Event)’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작가는 이건용이나 실제로 이벤트를 가장 먼지 행한 작가는 성능경이다. 이건용은 1975년 백록화랑에서 열린 [오늘의 방법]전에서 <이벤트-현신(現身)>을 발표한 후 자신의 행위를 <Event Logical>로 명명하였다. 성능경은 1974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3회 [ST]전이 열리기 두 달 전부터 동아일보 기사를 오리기 시작하여 [ST]전이 열리는 기간 동안 매일 전시장에 나와 벽에 부착한 신문(8면, 4개의 패널)에서 신문 제호, 광고, 만화 등만 남기고 모든 기사를 면도칼로 오려 청색과 투명한 아크릴 상자 안에 기사와 배지(背紙)를 분리하여 넣었다.  
였다. 그때까지 성능경의 행위를 주목한 평론가는 오로지 방근택 뿐이었다. 방근택은 <공간>지에 기고한 전시 월평에서 “왜 광고는 오리지 않는가?”라고 썼다. 비록 단평적 성격의 것이었지만  또한 이 무렵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현대화랑에서 발행한 <화랑>지에 게재된 ‘현대미술작가 100인’에 성능경을 포함시켰다. 
, 당시 비평에 목말라 있던 성능경은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 그 은공을 잊지 않은 성능경은 보은(報恩)을 했는데, 그로부터 무려 37년이 지난 뒤였다. 2011년, 경기도미술관 주최로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전이 열렸을 때, 성능경은 오프닝 퍼포먼스에서 고가사다리에 올라 예의 불타는 부채를 손에 들고 방근택(1929-1992)의 이름을 높이 외친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 있더라.”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일화는 아마도 성능경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지금으로부터 한 해 전인 2023년, 성능경은 백아트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졌는데, [아무것도 아닌 듯...성능경의 예술 행각]전(2023.2.22.-5.24)이 그것이다. 이 전시는 비록 일개 상업갤러리에서 열린 소규모의 것이었지만, 전시 내용이 알차 성능경의 독보적인 작품세계에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50여 년 간 오직 전위적 실험미술의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70퍼센트, 기술이 30퍼센트로 아무리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뜻. 
이라고, 운도 따랐다. 이 전시는 같은 해 6월에 열릴 예정인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에 앞서 열렸으며, 그다음에는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2023.9.1.-2024.1.7.)과 L.A의 해머미술관(2024.2.1.-5.12) 전시가 잇달아 열릴 예정이었다. 성능경은 이 전시들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 발행한 전시도록에 실린 작가별 페이지 배당을 확인한 결과, 10페이지 이상 배당된 작가명단과 2인 이상의 그룹을 제외한 단독 페이지 수는 다음과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 도록: 김구림 18면, 이승택 17면, 이건용 12면, 성능경 16면, 이강소 12면. 구겐하임미술관 주최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전 도록: 김구림19면, 이승택 17면, 이건용 14면, 성능경 16면, 이강소 12면. 

Ⅱ.
 성능경은 1944년생이다. 어느덧 팔십의 노경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청년처럼 혈기왕성한 그는 지금도 팬티만 걸친 나체 차림으로 ‘품바’ 퍼포먼스를 벌인다.
 “‘실험미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이처럼 장황하게 성능경 이야기만 하는가”고 혹자는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도 없는 법이다. 과거와 미래는 오직 시시각각 지나가는 현재의 연장일 뿐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말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1995년, ‘미술의 해’를 맞이하여 서울시립미술관 정도 600년 기념관에서 열린 [공간의 반란: 한국의 입체‧설치‧퍼포먼스 1967-1995]전의 도록에 이 전시의 기획자인 나는 서문을 썼는데, 그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상 간략히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전위미술은 일련의 궤적을 그리며 전개돼 왔다. 그리고 그 궤적의 제1선에는 항상 그 시대의 새로운 세대들이 동시대의 미의식을 선도해 왔다. 통시적인 입장에서 볼 때 약 30년에 걸친 다양한 세대의 미적 산물들은 오늘 우리 미술의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 3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동시대에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 기간에 걸쳐 나타난 미의식의 변화와 각 시기의 주요 쟁점을 살펴보자는 소박한 의도에서 이 기획전이 꾸며졌다. 이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초기의 그룹 동인 중 대다수는 왜 실험을 그쳤는가? 60년대의 작업과 오늘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 시기 동안만 활동하고 사라진 작가들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려질 것인가? 삶과 예술이란 제도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존재하는가? 이미 작업을 그친 작가의 작품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오늘의 평가 사이에 존재하는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등등.”   

 이 전시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열렸음을 상기할 때, 전위와 실험의 입장에서 그 이후의 과정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랬을 때, 60여 년 전에 열린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의 참가 동인들을 비롯하여 ‘AG’, ‘ST’, ‘제4집단’, ‘신체제’등 전위그룹들이나 혹은 독자적인 개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개진한 작가들 중에서 현재까지 초기의 실험 내지는 전위정신을 견지하고 있는 작가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도출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일련의 테스트 문항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항목을 설정했다. 그것은 첫째, 매체실험적 측면에서 가령, 퍼포먼스를 현재도 지속하고 있는가? 퍼포먼스를 하더라도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가? 평면, 입체, 설치, 퍼포먼스 등 형식이나 매체를 막론하고 한 가지 스타일의 동어반복이 얼마나 지속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해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위한 실험과 전위의식의 결여의 문제. 셋째, 작업의 일관성의 문제, 즉, 초기부터 현재까지 작품이 어떤 계기들의 연속이었는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작업이 일관성과 맥락이 없이 전개된 경우를 가리킨다.  

Ⅲ. 이른바 작가주의에 따르는 치열한 작가의식은 특히 실험 내지 전위미술의 핵심이랄 수 있다. 그러할 때 앞에서 예로 든 성능경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성능경은 [ST] 그룹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전위와 실험미술을 실천한 보기 드문 작가이다. 지난 10년간 단색화의 열풍이 주도한 상업주의의 물결은 성능경을 비켜 지나갔다. 퍼포먼스와 신문, 오브제, 설치미술, 개념미술 사진을 위주로 작업한 그에게는 팔릴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설령 있었다 해도 난해했기 때문에 상업화랑의 작가 목록에 들지 못했다. 그런 그가 상업화랑과 관계한 것은 극히 최근으로 2023년의 백아트갤러리 초대전을 필두로 현대화랑과 미국 뉴욕의 리만머핀갤러리가 전부이다. 그런 그를 가리켜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미학자 블라디슬로 타타르키비츠(Wladyslaw Tatarkievicz)가 말한 것처럼 ‘승승장구의 전위주의자’로 칭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으니 그도 누구처럼 거부가 될지 어찌 알겠는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해머뮤지엄의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을 다룬 역사적인 전시는 젊은 시절부터 실험과 전위를 위해 정열을 불사른 한국 원로작가들의 이름을 예술의 전당에 올린 것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역사는 냉혹한 것. 앞으로 30년 후인 2054년에 이르면 미술사는 또 어떻게 기술될지, 그것이 궁금하다.        
     


글쓴이 윤진섭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미술비평으로 철학박사(ph.D)를 받았다. 한국의 실험미술과 전위미술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비평과 전시기획,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 1차 게재 퍼블릭 아트 202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