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타자의 거울 2503〉, 2025,
아크릴 거울에 스크래치, 색상변환 LED, 한지, 라이트 박스, 혼합기법, 120×120cm

김준기, 〈타자의 거울 2506, 2507, 2508, 2509, 2502〉, 2025,
아크릴 거울에 스크래치, 색상변환 LED, 한지, 라이트 박스, 혼합기법, 각 180×90cm
근래에 안산시가 주최한 《단원미술제 선정작가》전 시상식에 심사위원장의 자격으로 축사할 기회가 있었다. 올해로 26회째인 이 공모전은 3심제인데, 최종심인 3심은 단일 작품 심사가 아니라 작품 다수가 전시된 작가심사여서 인상적이었다. 조선 시대 중엽, 안산 출신의 대표적인 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9년에 창설된 이 공모전은 주지하듯이 한국화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홍도’라는 이름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화 분야의 작가들이 최종심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화의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응모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이번 본선에 올라온 11명 작가의 전공 중 한국화의 비중이 가장 높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단원미술제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이 침체된 한국화단에 활기를 불어넣을 촉매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맞이한 한국화의 침체는 그 역사가 생각보다 깊다. 지난 1960-70년대에 한국화(동양화)는 최고의 전성기였다. 내로라하는 동양화의 원로작가들이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하면 고가의 작품들이 족족 판매됐다. 문자 그대로 ‘동양화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한국화의 측면에서 볼 때, 1970년대는 불운한 시대였다. 1960년대 초반부터 비롯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거듭되면서 1970년대의 산업화시대는 아파트 건설 붐을 불러일으켰다. 날이 갈수록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아파트 밀집촌이 형성되었다. 본디 한옥의 구조에 맞게 디자인된 동양화의 족자·편액·병풍 등은 아파트 공간에 어울리지 않아 물과 기름처럼 겉돌다 버려졌다. 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지금부터 10-20년 전부터 비롯된 한국화과의 폐과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한국화 인구의 감소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자칫 전통의 단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굳이 ‘조상의 혼’이니 ‘역사의 단절’이니 하는 상투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역사가 긴 예술의 맥이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우려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하여 2017년에 한국화진흥회의 창립에 앞장선 민경갑 ‘한국화의 날’ 창립 대회장은 한 매체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작가들도 창작을 이어가기 힘든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화는 전통에 기반을 둔 예술 장르이자 30년전 만해도 우리 화단을 대표하는 예술이었다. 그러나 점차 비평가들과 대형 전시에서 외면받았을 뿐만 아니라, 경매가 도입되면서 시장가격 또한 폭락했다. 이것은 한국화 작가들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서 옥션, 비평가, 기획자 등 외부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내부의 문제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미술세계』 2018년 1월호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 한국화는 다시 자문해야 할 것이다. 과연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가?
NFT와 ChatGPT로 대변되는 급변하는 주변 상황은 한국화가들로 하여금 보다 냉철한 현실인식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지필묵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재료에 대한 도전이 몰고온 위기의식은 한국화에 대한 새로운 의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물질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화는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 것인가. 여기에 한국화단이 처한 문제가 되는 상황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위기가 곧 기회이기도 한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한류, 그 가운데에서도 ‘케데헌’의 열풍은 한국화엔 둘도 없는 희소식이다. 이제 신명나는 파도타기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