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학 박사 학위를 받긴 했지만, 뭘 해도 번번이 실패했던 홍유명! 일명 홍 박사는 심심풀이로 시작한 유튜브에서 1년 만에 구독자 10만 명을 넘기며 ‘실버 버튼’을 거머쥐었다. 3년도 채 안 된 지금, 그는 100만 구독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머릿속엔 다음 단계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100만이 되면, 미술대학 강당에서 생방송 팬미팅을 하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 자리에는 공중파 단골인 미술평론가와 최근 그림에 빠진 유명 연예인도 초대할 계획이다. 그 다음 해엔 ‘홍 박사의 세계 미술관 투어’까지 진행할 참이다.
“몸값을 올릴 때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혼자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학위 이후 단 한 번도 ‘필드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박사’의 콤플렉스가 숨어 있었다. 어느 논문보다 댓글이, 그 어느 학회보다 구독자 수가 더 솔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 했던가? 그는 인기 절정의 ‘홍 박사의 아틀리에 탐방’을 접고, 신진 작가 포트폴리오를 리뷰하고 무료로 컨설팅해 주는 새 채널 ‘홍 박사의 아트 프로젝트’를 열었다. 그건 신의 한 수였다. 전자는 유명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다니며 셀럽의 인기에 전적으로 기대는 콘텐츠였다면, 후자는 청년 작가들을 위해 현실 인식에 기반한 실질적인 컨설팅을 해주는 코너였기 때문이다. 명색이 ‘박사’인데, 이번엔 진짜 예술 현장에 기여하고 싶었다.
‘포트폴리오 리뷰’ 코너는 단순히 젊은 작가의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까대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고민을 듣고, 막힌 실타래를 푸는 ‘친밀한 컨설팅의 장’이었다. 공모 지원, 국내외 레지던시,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포트폴리오 구성 노하우, 눈에 쏙 들어오는 작품 주제와 키워드 정리, 쉽게 쓰는 작가 노트, 완벽한 디스플레이 비법에 이르기까지, 그의 리뷰는 거침이 없었지만, 조언은 현실적이었고 따뜻했다. 심지어 공모전 심사위원의 눈을 사로잡는 ‘비법’까지 아낌없이 나눴다.
성과는 선명했다. 그의 리뷰를 거쳐 한 작가는 30대 1의 경쟁을 뚫고 공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했고, 한 학생은 프랑스 에콜드보자르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국립미술관의 기획전에 초대된 작가, 갤러리로부터 연락받은 중견 작가까지 모두 그의 구독자였다. 남녀노소, 학력 불문하고 많은 구독자에게 현실감 넘치는 그의 콘텐츠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뿔싸! 그러나 복병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주말 생방송에 초대한 한 작가가 문제였다. 표현주의풍의 작업이 마음에 들어 섭외했지만, 완전한 오판이었다. 그녀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작가’였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고, 언어는 거칠었다. ‘몸짓 회화’라는 표현을 쓰는 홍 박사에게 그녀는 “타성과 관성에 도전하는 왼발 회화라 불러야죠!”라며 계속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 아니, 그게 뭔 차이라고... ‘삐~ 삐삐~’ 편집도 불가능할 만큼 말이 터져 나왔다. 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뜨린 후 “악!” 소리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아뿔싸!!
XXXXXX
일주일의 휴방 후 그는 댓글창을 열었다. “홍 박사가 한 방 먹었네”, “쟤 요즘 예능에 나오던데, 이제 거기서 뜨겠네”, 뭐 그런 내용과 비웃음이 화면을 뒤덮었다.
그날 밤, 막내딸 유정은 친구에게서 받은 ‘홍 박사의 좌충우돌’이라는 짤을 보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토닥 달래준다. 홍 박사의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그 눈앞엔, 100만 구독자를 향한 ‘골드 버튼’이 유령처럼 날아가며 사라지는 헛것이 어른거렸다.
홍 박사는 노트북을 덮었다. 잠시, 방 안이 고요했다. 그는 화면 꺼진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얼굴 위로 겹치는 어떤 환청에 휩싸인다. 그것은 박사논문 심사위원이었던 나강압 교수의 당시 말 한마디!
“그래, 이제부터 뭐하게요? 실기하는 사람이 굳이 박사까지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으니.”
* 이 글은 팩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