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공론』 33호 표지, 제공: 이순욱 『동양화총론』 본문, 제공: 이순욱
동양화와 전혁림, 그리고 호크니
배병오 | 미술연구자,
부산대 예술․문화와영상매체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
한 미술 잡지가 환갑을 넘긴 지역 중견 화가를 다시 세상에 소환한 일이 있었다. 1979년 7월 31일 발간된 『계간 미술』 제10호 기획 기사 ‘작가들을 재평가한다’를 통해서다. 주인공은 화가 전혁림. 한 미술평론가가 전혁림을 과소 평가된 작가로 소개한 것이 계기였다. 기사의 핵심은 “잊혀져 있어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인 전혁림. 전혁림이란 작가야말로 방금 인구마다에 회자되어지고 있는, 죽은 그 누구 열 사람과도 바꿀 수 없는 현존해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며, “이 불확실한 시대에 그는 가장 확실한 존재”1) 라는 점이다. 화백의 아들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기사가 나간 뒤 부산에서 활동할 때 제작한 작품은 다 팔려나갔고 돌아가셨다는다는 소문마저 있던 아버지의 새 작품을 구하기 위해 그해 겨울 서울의 한 화랑 대표가 통영까지 돈 보따리를 들고 갑자기 방문할 정도였다고 한다. 2) 당시 전혁림은 이러한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창작활동의 초기 주요한 거점이었던 부산을 떠나 고향 통영에서 묵묵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혁림은 특이한 이력의 화가다. 191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그는 1933년 통영수산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5년간 금융조합에서 근무했다. 그림 공부를 위한 파리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재능은 1938년 부산미술전에서 입선으로 입증됐다. 프랑스에서는 빵을 먹어야 한다며 5년 동안 매일 한 끼 이상은 빵으로 상을 차리며 섬세하게 준비한 덕분이었을까? 비록 유학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전혁림은 이후에도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부에 「정물」을 출품해 대통령상 후보에 오르며 입선했고,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마침내 문교부수석장관상을 수상하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동양화 총론」은 전혁림의 동양화론에 대한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논고다. 1950년대 창작활동의 주무대였던 부산에서 1956년 발간한 『경남공론(慶南公論)』 33호, 34호, 36호에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 글이다. 3) 표지는 OOO(33호), 전혁림(34호), 한묵(36호)이 그렸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수화의 기원과 본질, 화조화(花鳥畵)의 발생과 성립, 남화(南畫)의 기원과 양식의 특성, 수묵의 발생과 성립을 다루었다. 서양화가인 전혁림이 동양화에 대한 본격적인 글을 기고한 것은 아마도 생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는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부산 중앙동 인근의 영도에 있던 도자기회사에 근무했다. 도화의 주종은 동양화라 아무래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평소 『대학』, 『주역』 등 한적을 꾸준히 읽고 당시(唐詩)를 애송할 정도로 해박한 한문 지식도 그의 동양화 공부를 도왔을 것이다.
「동양화 총론」에는 중국의 현존하는 화론(畫論) 중 가장 오래되고 많이 인용되는 사혁(謝赫)의 『고화품록(古畫品錄)』부터 왕개(王槪)가 1679년 편찬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에 이르기까지 10여 권의 중국미술 관련 주요 서적을 언급한다. 동양화의 교과서 같은 책들을 참고해 쓴 이 글에서 산수화와 화조화, 남화와 수묵화의 발전 과정을 살핀다. 동진의 고개지(顧愷之), 송의 육탐미(陸探微), 양의 장승요(張僧繇) 등 이른바 ‘6조(六朝)의 3대가(三大家)’들이 활동할 때만 해도 인물화 위주였던 중국화가 당대(唐代) 왕유(王維) 이후 산수화와 화조화를 거치며 동양화의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는지를 정교하게 일별한다.
전혁림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관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우선 산수화의 발전이 이뤄진 것은 큰 산과 긴 강 등 경외의 대상이던 자연을 섬기는 제사의식(祭祀儀式), 특히 하늘에 올리는 이 제사를 주관하는 천자의 즉위 대례(大禮)를 위한 깃발 장식을 산수화 원형의 하나로 파악한다. 아울러 이 산수화는 은일처를 찾아 심산유곡을 탐승하던 도교도(道敎徒)들에 의해 강화된 뒤 결정적으로 군사와 정치의 실용적 쓰임을 위한 지도로서의 가치 때문에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이어 화조화의 발생과 성립을 고구려 강서(江西) 고분벽화의 사신도 등 사신도에 그려진 동물들에서 상징성을 배제하고 사실성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전혁림은 특히 벽화의 사신도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견해는 고구려 벽화를 우리나라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전혁림의 동양화 공부는 학습에만 그치지 않고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도 반영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청와대가 소장하고 있는 전혁림 대표작의 하나인 「통영항」은 다시점(多視點)으로 제작한 그림이다. 서양의 단일시점 투시도법이나 원근법과는 달리 여러 시점을 동시에 담는 것으로 기법상 동양화와 서양화의 가장 큰 차이점의 하나다. 「동양화 총론」을 연재할 당시 40줄에 접어들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모색했을 전혁림에게 동양화를 통해 접한 다시점 기법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동양화 총론」에서 펼친 이러한 관점은 이후 “회화의 원점을 고구려 벽화에 두면서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정신성과 표현 형식을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던 그의 작품세계 곳곳에 스며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혁림은 이중의 소외를 겪은 화가로 볼 수 있다. 중앙이 아닌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점과 정규 미술교육을 거치지 않은 독학 화가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 그림이 걸리고 2002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상의 흐름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 이를 신념으로 굳건하게 지켜냄으로써 끝내 세상이 알아보도록 한 것이다. 그런 면모를 진작에 알아챈 이가 청마 유치환이다. 그는 1951년 2월 부산에서 열린 전혁림의 첫 전시회 팸플릿에 발문 「혁림의 예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숱한 군중 속에 섞여 있어도 차라리 무한히 외롭듯이 혼자 아무리 고독하여도 쬐끔도 슬프잖듯이 혁림은 그렇게 자기의 예술에 정진하고 있음을 나는 압니다. (중략) 해바라기가 아무리 강장하기로 아기자기한 봄날 무법하게 무엇이나 성장하는 계절에는 피지 않고 따로이 필 날을 가지듯이 그렇게 그의 예술이 빛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을 (중략) 우리는 능히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혁림의 발굴자료 「동양화 총론」과 그의 동양화 공부를 접하며 문득 데이비드 호크니가 떠올랐다. 그는 1981년 5월 3주 동안의 중국 방문 때 중국에 흥미를 느끼고 동반자와 이듬해 『중국 일기』를 출간한 것을 비롯해 중국의 붓그림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윽고 198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20미터가 넘는 서양(徐楊)의 중국 두루마리 그림을 보고 그날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하루였으며 멋진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곧바로 이동 시점과 다시점으로 대형 작품을 제작했다. 또 일종의 두루마리인 필름 영상 작업으로 이동 시점 실험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호크니는 프랑스의 중심도시에서 떨어진 외딴 지방 소도시 아를에서 활동했던 고흐를 존경하며 그 자신도 영국의 외딴 지역 요크셔로 돌아와 활동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비단 전혁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지역 곳곳에도 세계적 작가들과 견줄 만한 작가들이 많다.
전혁림의 글이 실린 잡지 『경남공론』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조차 5권 정도밖에 보유하지 못할 정도로 희귀한 자료다. 그럼에도 전혁림의 옛글을 어렵게 찾아내 다시 세상에 알리고 애써 호크니와 접점을 찾아보는 것은 한 가지 소망 때문이다. 이러한 몸부림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간 이들을 제대로 조명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지난날 『계간미술』의 기획 기사처럼 김달진미술연구소의 『서울아트가이드』를 통해 지역미술과 미술인들을 소환하는 기회의 장이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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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 전문가 설문) 「作家들을 再評價한다」, 『계간미술』 제10호, 1979.07., 중앙일보사, 100쪽.
2) 아들 전영근 화백과의 인터뷰, 통영 전혁림미술관, 2025.8.30. 14-16시.
3) 『경남공론』은 경상남도의 기관지로, 특이하게 소설 등을 통해 교양 함양에 많은 할애를 한 종합월간지였다. 김정한, 이주홍 등 부산의 문인과 예술인들이 집필진으로 적극 참여함에 따라 전혁림도 함께한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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