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홍콩의 32층 아파트 단지 화재는 고밀도 개발이 이루어진 어디든 강 건너의 불이 아님을 경고한다. 간격이 좁은 7개동 초고층 아파트 뒤로 비슷한 아파트단지가 늘어선 모습은 충격적이다. 한 구역에 수천명이 거주하는 홍콩의 주거 밀집도는 공포와 환상을 넘나든다. 1994년 철거된 구룡성채(九龍城砦)같은 건물은 〈블레이드 러너〉나 〈배트맨〉 같은 SF 영화에 영향을 주었는데, 수많은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밀림같은 모습이 문명 속의 야생을 대변하는 디스토피아의 모델이 된 것이다. 이윤을 위해 치솟은 용적률은 작은 실수도 커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다. 부의 편중현상이 공간에도 적용되어 몰리는 곳만 몰리고 나머지는 유령화된다. 공간은 시간과 연동된다. 시간도 돈이다. 거의 서서 이동하는 새로운 이코노미석 디자인을 보니, 악명높던 18세기 영국의 흑인 노예선이나 다를 바 없다.
소위, 합리화란 여러 선택지를 줄여나가며, 다수에게 어쩔 수 없는 해법을 강제한다. 애초에 근대 도시화 과정이 그러했다. 합리화가 누구에게나 합리적이지는 않다. 우리 동네는 서울에서 그리 변두리가 아님에도 70년대엔 가발공장, 떡공장, 콩나물 공장이 있었고, 원목을 가공하는 목재소도 여럿 있었다. 처음엔 시장이던 60년 넘는 오래된 쇼핑센터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그 어귀에는 보신탕집이 늘어 서있었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개장하는 밭도 꽤 있어 아이들이 놀다 거름통에 빠지는 사고도 종종 일어났다. 동네에 공터가 많아 놀이터보다 그곳에서 더 많이 놀았다. 공터는 서서히 사라졌는데 얼마 전에 하나가 생겨 나 오랜 기억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지금은 공터보다 공실(空室)이더 심각할 것이다. 19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인근 대학가의 을씨년스러움은 코로나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공터는 1950년대 프랑스의 상황주의자들이 주목했던 곳이다.

김영경, 〈보이지않는 도시들 K#01〉, 2013, Archival pigment print, 100×100cm
; 지역의 레지던시 활동을 통해 지역의 도시 생태계를 예술적으로 탐사한다.
『스펙터클의 사회』로 유명한 기 드보르는 도시를 표류하면서 도시를 읽고 그곳에서 대안적 활동을 했다. 그것은 의도된 철학적 행위였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은 반강제로 표류한다. 추상적 공간개념과 구별되는 상황주의자들의 심리지리학(Psycogeography) 개념은 한국에서 2000년대 이후 대안의 공공미술에서도 중요했다. 어차피 재개발하는데 왜 이런 곳에서 공공미술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지만, 재개발까지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흉물스럽게 방치되는 경우가 더 많다. 건물 앞에 장식 조형물 하나를 세우는 개념이 아닌, 대안적 문화 실천은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전망이었으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부작용도 있었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천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 부동산 가격을 포함한 도시생태계에 관련된 정책은 보수/진보의 정파를 떠나 정치가들도 다루기 힘든 영역이다.
지상적 존재 누구에게도 필수적이며, 그만큼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모순이 집적된 곳이라 해법이 만만치 않다. 공간은 값비싼 재화로, 현대사회에서 큰 문젯거리인 빈부격차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진보 진영에서는 ‘자본주의 소득 격차 문제 해결을 위해 토지공개념’(한국일보, 2025.11.30)을 거론한다. 쉽게 생각될 수 있는 방향성은 흩어져 사는 것이다. 가령 소멸위기에 놓인 지역에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등으로 인구 유입을 유도하는 실험(뉴시스, 2025.12.9)이 그것이다. 몰려 사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면 빈 곳의 밀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비어 있는 상가에서 한시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작가도 본다. 빈 학교, 빈 동사무소 건물이 레지던시로 활용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모순이 집약되는 공간을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아 문화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이를 통해 사회적 해법에 조금 더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작업 및 전시공간이 필요한 미술가들에게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