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높은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서점의 쇼윈도우, 그리고 독서를 하는 사람들. 출판인 김언호 사진전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2025.11.1-2.28, 강동중앙도서관 열린미술관)에는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한 출판인이 렌즈를 통해 쓴, 책을 향한 러브레터 같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속 피사체는 책과 서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을 둘러싼 공기와 책을 만지는 사람들의 온기이기도 하다. 히말라야 여행 도중 만난 책 읽는 아이들의 맑은 눈부터 세계 도서관과 서점의 서가에 이르기까지, 김언호의 시선은 언제나 읽는 행위의 숭고함을 향해 있었다. 셔터를 누르는 그의 손에는 책과 독서에 대한 경의와 애정이 가득하다.

전시 전경


김언호(1944- ) 한길사 대표는 1968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으나,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동참했다는 사유로 1975년에 해직되었다. 붓을 꺾인 그가 1976년 한길사를 창립하며 선택한 새로운 발언의 도구는 책이었다. 출간한 책이 줄줄이 “불온서적”이 되어 판매가 금지되고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했으나, 역설적으로 출판사의 수난은 책의 존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한길사는 인문사회 분야의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을 펴낸 한국 출판계를 이끄는 명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근현대 한국 미술 분야에서는 윤난지 저,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2018), 김현화 저, 『민중미술』(2019) 등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암울했던 시대에 한길사를 세우고 책을 통해 지성을 일깨우고자 했던 30대 청년은 이제 여든을 넘긴 출판계의 원로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길사 창립 50주년인 2026년까지 진행되어 더 뜻깊게 느껴진다.

그 전시의 제목인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는 그가 책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한 권의 책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수많은 책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세계에 주목한다. 책들의 합창 소리를 듣는다는 그의 말처럼, 전시장에 걸린 사진 속의 책들은 마치 장엄한 합창처럼 다가온다. 그가 포착한 책의 숲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인류의 지혜가 서로 속삭이고 공명하는 음향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사진 사이사이에 놓인 그의 글귀들은 이 전시를 더욱 감성적으로 물들인다. “민주주의란 책을 읽고 지적으로 교류하고 대화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묵직한 신념부터, “책이라는 불멸의 세계는 여행의 세계”라는 낭만적인 정의까지. 해직 기자 출신으로 출판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 예술마을을 일구어낸 그의 이력은 이 짤막한 문장들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뜻한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한 도시의 문화와 정신을 상징한다는 그의 믿음은,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등대와 같은 위로를 건넨다. 



좌) 윤난지 저,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2018)  우) 김현화 저, 『민중미술』(2019) 


한 출판인이 반세기 동안 책을 통해 심어온 나무들도 이제는 울창한 숲이 되었다.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혹은 책을 잊고 살았던 이라면 강동중앙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길 권한다. 그곳에는 50년 외길을 걸어온 한 출판인이 빚어낸 아름다운 합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