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에서 오점균 전시(2025.12.9-1.6, 아트필드갤러리 2관)를 봤다. 영화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오 작가는 〈경축 우리사랑〉(장편, 2008), 〈생산적 활동〉(2006) 등이 유명하며, 백상예술대상영화부문 작품상(2009),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2008)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탔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오점균은 80년대 후반부터 작가로 활동했다. 내 기억에 선명히 각인된 그의 작품은 1989년 인사동 SK빌딩 지하에 있던 갤러리도올 개인전의 출품작이다. 살아있는 개 작업과 껌 작업인데 전자는 새까맣고 커다란 도베르만 한 마리를 300호 크기의 검정 캔버스 앞에 매 놓은 것이고, 후자는 입장 관객에게 나눠준 껌을 씹게 한 후 퇴장할 때 출입구에 있는 40호 크기 패널에 붙이게 한 참여형 작품이었다. 도베르만은 짖지는 않았지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만큼 당혹스러웠다. 관객들이 검정 보드에 제각각 붙여놓은 껌의 흔적은 정말 모양새가 다양해서 창의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오점균의 이번 전시도 실험성에는 그에 못지않다. 전시장 안팎을 지름 50cm가량의 비닐통으로 연결한 긴 설치작품은 전시실 안에선 공기가 채워져 온전히 부풀어 오르고 밖에선 안에 든 물이 얼어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하나의 덩어리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양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문래동에 살던 물 애벌레와 공기 애벌레에 대한 일종의 설화적 은유다. 구한말부터 살던 애벌레들이 이 지역에 철공소들이 들어서자 마을을 떠났다가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되돌아왔다는 설정의 이야기다. 기상천외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묻는다. “...두 공간 사이의 벽돌벽을 반쯤 허물어 완성과 파괴의 중간 단계로 꾸민 갤러리에서 ‘우리 시대의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자문해보려 한다”고.

관객참여형 100호 크기의 캔버스 작업엔 틀에 천 대신 검정 비닐을 붙인 뒤 캔버스 앞에 놓인 물감과 붓으로 관객들이 마음껏 그리고 낙서하게 했다. 표현 욕구 충족의 장이 펼쳐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비닐 캔버스는 험하게 찢기거나 물감이 난무하고 종래엔 너덜너덜해지고 행위는 캔버스 밖으로 번져 벽 위에 낙서와 물감이 튄 흔적이 어지럽게 번졌다.



좌) 오점균, 〈세탁소 비닐 자화상〉, 2025, 액자 틀에 비닐, 아크릴, 47×60cm
우) 오점균, 〈검정 비닐봉투 자화상〉, 2025, 액자 틀에 검정 비닐, 아크릴, 53×45.5cm


오점균의 자화상과 초상화도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다. 캔버스는 천으로 감싸야 한다는 관념을 전복시킨 오점균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비닐을 캔버스 틀에 건 뒤 그 위에 자화상을 그렸다. 세탁소 상호가 인쇄된, 팽팽하게 당겨진 투명비닐 위에서 오점균이 환하게 웃고 그 옆엔 세탁물을 맡긴 손님용 라벨이 부착돼 있다. ‘김*희 님 티셔츠 0217 7-403 2024 08 24’. 이는 분명 기존 회화에 대한 오점균 식의 문화적 테러임이 분명하다. 예술과 일상의 결합이 미술의 관례가 된 지 오래지만, 느닷없이 자화상에 침투한 투명비닐과 세탁물 라벨에 이르면 회화에 대한 그의 반란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의식을 무장해제시킨다.

오점균의 미학적 테러는 다리가 부러진 밥상 판면을 그라인더로 갈아 밥사발을 그린(이것을 과연 그렸다고 할 수 있을까?) 작품에 이르러 더 극렬해진다. 이 작품을 회화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 ‘오브제 풍경’이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상 주변에 부러진 상다리 3개를 배치한 작가의 의도에 주목하면‘풍경으로서의 오브제’라는 해석이 가장 알맞아 보인다.

오점균의 초상화는 서툰 듯하면서도 모델인 대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자화상은 간략하면서도 날렵한 붓질을 통해 내면의 깊이가 잘 나타난다. 캔버스 뒷면의 포장비닐에 그린 미국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초상은 대상이 지닌 광포한 느낌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아르 브뤼(art brut: 거친 원생미술)의 범주에 속할 이 작업은 오점균 예술이 지닌 과격한 실험과 용감성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전시제목도 《와장창ㅎㅎㅎ》. 도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