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에 미술관이 생기기까지
벌써 5년 전인 2021년, 필자가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미술관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참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신선한 시도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좀 생뚱맞다는 반응이었다. 어떤 분은 “KAIST에는 미술대학이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심지어 교내 일부에서는 교육 연구 시설 마련에도 부족한데, 미술관에 투자할 예산이 있느냐고 말했다. 어떤 학생은 그럴 돈이 있다면, 식당 밥값이나 내려달라고 했다.
필자는 차근히 설명해 나갔다. 첫째로 예술과 과학기술 연구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예술은 다른 사람이 한 것을 따라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래서 남과 다른 무언가를 보이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짜낸다. 과학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시도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과학은 “일심동체”다. 둘째로는 세계 일류대학이 되려면, 문화예술의 융합이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에 예술의 미덕은 “일상의 탈출”이라 본다. 세계 일등은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하던 것, 평상시에 많이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상 연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술의 힘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강조한 포인트는 건물 신축과 작품 수집에 학교 돈은 하나도 쓰지 않을 예정이라는 점이었다. 미술관 건축을 위한 기부금을 모아서 진행할 예정이니, 너무 예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전시할 작품도 없지 않으냐고 말이 나왔다.

박광진, 〈노랑유채〉, 2008, 캔버스에 유채,120(h)×110(w)cm ⓒ 박광진 기증 KAIST소장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
성장기부터 예술과 잔잔한 인연이 있었다. 초등 및 중학교시절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이 가끔 교실 뒤에 게시 되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중학교 때 매화꽃을 잘 그려서 칭찬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특별활동으로 방송반 활동을 했는데, 등교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음악을 틀어주는 일이 많았다. 그 당시 익힌 행진곡이나 클래식 음악의 제목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가끔 아내를 놀라게 해준다.
본격적으로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가끔 인사동 전시회에 가게 되면서였다. 처음에는 어떤 그림이 좋은지,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몰랐다. 그런데 자주 보다 보니까, 며칠 후에 다시 생각나는 작품이 있었다. 어느 책에서 여운이 남는 작품이 있으면, 그때 비로소 작품 감상이 시작된 것이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요즘에도 시간이 나면 미술 전시장을 찾곤 한다. 나는 미술 감상에 특별히 선호하는 매체가 있는 것 같진 않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별 없이 좋아하고, 또한 회화와 조각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감상 중에 발걸음이 멈추는 경우는 주로 추상 계열 작품이었다. 추상 작품은 내 마음 속 상상의 날개를 펼쳐준다. 다만, 추상 중에서도 작업에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듯한 작품은 선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가 관심을 끈다고 하여 성의 없는 반복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 또한, 작품에 실험 정신이 부족한 작가도 좋아하지 않는다. 한 가지 방식으로 인기를 끄니까, 변화 없이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작가도 흥미롭지 않다.
기증 작품이 450점이나 모여
논란이 많았던 KAIST미술관은 3층 규모에 약 2,500㎡(800평)의 전시 면적으로 완성되었다. 미술관 본관 외에도 캠퍼스에 6개 갤러리를 설치했다. 갤러리는 작품을 기증하신 분의 이름을 붙인 전용 전시 공간이다. KAIST가 미술관을 만든다고 하니, 미술계에서 많이 호응해 주셨다. 현재 기증 작품이 450점을 넘었고, 개관 첫해인 작년 2025년 한 해 관람객이 3만 명을 넘어섰다. KAIST는 과학기술 연구를 통하여 미래 문명을 개척해 나가는 곳이다. 미술관 건물과 작품을 기증해 주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KAIST 구성원들은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게 될 것이다. KAIST 인들의 어깨가 무겁다.
- 이광형(1954- ) 한국과학기술원 KAIST 17대 총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워원장. 국민훈장 동백장(2016), 녹조근정훈장(2020)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