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조의 드로잉 〈석굴암 가는 길〉

2025년 10월 하순 어느 날, 알고 지내던 부산 M화랑 대표로부터 한 장의 그림 이미지를 받았다. 먹과 물감으로 풍경을 그린 소품 수채화였는데, 좌하단에는 작가의 한자 서명과 제작일자(15.6.15)[=소화(昭和) 15년(1940) 6월 15일]가 기재되어 있었다. 잠시 후엔 진위에 대한 검토를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도 들어왔다. 필치가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김용조(金龍祚, 1916-44)처럼 유존작이 드물고 요절한 근대 작가들은 기준작 설정이 어려워 진위 식별이 대단히 어렵고 감정 불능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탓으로 프로비넌스가 진위의 관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출처를 물으니, 대구 쪽 연고의 대수장가 집안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보내온 작품 이미지들을 확인해 보니, 대구 경북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주류로 기타 지역 작가들과 중앙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들까지를 포괄하는 규모 있는 근대미술 컬렉션이었다.


김용조, 〈석굴암 가는 길〉
1940.6.15, 종이에 먹, 수채, 24×27cm

김용조, 〈석굴암 가는 길〉
1940년대, 캔버스에 유채, 76×117cm


나는 이 풍경화와 비교할 수 있는 기존 김용조의 작품 가운데, 우선 먹으로 그린 드로잉들을 살폈다. 2000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선과 여백》전에 출품된 〈흠(吽)금강역사〉[소화 19년(1944) 5월 7일]와 2019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소화(素畵)》전에 출품된 〈아(阿)금강역사〉[소화 15년(1940) 6월 15일]가 떠올랐다.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일본인들의 석굴암 관광이 성황을 이루었으며 그중엔 다수의 명사들과 화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석굴암을 관리하던 석불사에서는 문인이나 화가 등의 저명인사들이 방문하면 시구나 그림과 함께 방명을 받는 『기념화첩』이나 『기념휘호』첩 등을 비치하고 있었다. 전해지는 총 6권의 첩에는 이여성(李如星), 이건영(李建英), 이경성(李慶成) 등의 글씨와 이시이 하쿠데이(石井柏亭)의 〈아이 업은 노인〉, 정종여(鄭鍾汝), 최근배(崔根培)의 석굴암에서 토함산을 내려다본 모습을 그린 그림 등 다수의 작품들이 남아 있는데, 바로 이 첩들 중 한 권에 김용조의 〈아(阿)금강역사〉가 실려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아(阿)금강역사〉와 발굴된 풍경화의 제작일자(1940.6.15)가 같았다. 이는 이 풍경화가 석굴암을 방문해 〈아(阿)금강역사〉를 그린 바로 그날 동시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뜻이다. 즉 이 화면의 내용은 정종여와 최근배의 휘호첩 속 그림과 마찬가지로 석굴암에서 토함산과 동해를 굽어보는 광경이었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김용조의 유화 〈석굴암 가는 길〉과 발굴된 풍경화의 구도 및 내용이 일치했다. 윤범모의 『한국현대미술 100년』(1984)에는 이 유화의 제작연대가 1930년대로 기재되어 있지만, 김용조는 1940년 6월 15일 석굴암에서 먼저 이 수채화를 그린 다음, 이후 어느 시점엔가 동일한 모티브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유화를 제작하였을 것이다.



1. 김용조, 〈아(阿)금강역사〉
(석굴암 입구 왼쪽에 위치한 금강역사), 1940.6.15, 종이에 먹, 24×18.3cm
2. 김용조, 〈와당〉, 1944.5.7, 종이에 먹, 38×28cm
3. 김용조, 〈흠(吽)금강역사〉
(석굴암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금강역사), 1944.5.7, 종이에 먹, 28.2×22.2cm


얼마 후, 같은 출처에서 또 다른 김용조의 먹 드로잉 〈와당〉의 이미지를 받았다. 제작일자가 〈흠(吽)금강역사〉와 같은, 작가가 대구 동산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유명을 달리하기 약 한 달 전인 소화 19년(1944) 5월 7일이었다. 흥미롭게도 기존의 드로잉 두 점과 새로 발굴된 드로잉 두 점의 제작일자가 서로 포개어졌다. 기이한 일이었다. 게다가 같은 날 그린 〈와당〉과 〈흠(吽)금강역사〉는 서명의 필치까지 일치했다. 이로써 나는 〈석굴암 가는 길〉과 〈와당〉, 이 드로잉 두 점이 김용조의 진작임을 증빙할 수 있었다.


- 김동화(1969-) 의학박사(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전공의 수료). 미술비평 및 미술사 연구. 『화골(畵骨)』(경당,2007), 『줄탁(啐啄)』(비온후,2014), 『쓰리스타쑈』(인디프레스,2015), 『FROM POINT TO PENTAGON』(인디프레스,2016), 『그림, 그 사람』(아트북스,2022), 시집 『흰 소가 켜는 영각』(레오컴,2024) 등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