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소개 

 

다발 킴은 뉴욕 프랫 인스티튜드(Pratt Institute)에서 이학석사를 졸업한 후, 미국, 중국, 인도, 몽골, 코스타리카, 독일, 오스트리아, 호주, 스페인, 모로코 등 국내외 다양한 아트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전시에 참여해왔다. 회화, 사진, 모션그래픽, 퍼포먼스, 패션, 입체설치, 필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워크숍과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06년 국제사막예술프로젝트 참여를 계기로 시각예술가, 영화감독, 기획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으며, ‘사막’은 이후 작가의 상징적 예술적 고향이자 모국어로 자리 잡아 작업 세계의 기반이 되어 주었다.


2026년 미국에서 개최된 MIAMI ART TECH SUMMIT에 참여하여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동시대 미디어 아트 흐름 속에서 드리밍클럽의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인도에서 열리는 제9회International Folklore Film Festival에 공식 선정되어 《천 개의 몽유고원》을 중심으로 신화·전통·신체적 서사를 현대적 영상 언어로 해석한 시네포엠 작업을 국제 관객에게 선보였다. 2025년에는 이탈리아 토리노 MAO Museum of Oriental Art에서 《침묵의 꿈(The Dream of Silence)》 시네포엠 전시 및 아트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주밀라노대한민국총영사관 국경일 공식 리셉션에서 전시·퍼포먼스 공연을 연출하며 한국·유럽 간 예술 교류의 영역을 넓혔다. 또한 스페인 알리칸테 현대미술관(MACA)에서 열리는 ALC 비디오아트 페스티벌 2025에 선정되는 등 국제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천 개의 몽유고원》 시네포엠 필름 제작 및 남한산성아트홀 미디어 퍼포먼스, 2023년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서울특별시 광화문 해치마당 미디어파사드 선정 프로젝트, dança em foco – 국제 비디오 & 댄스 페스티벌(멕시코) 초청작, Lift-Off Filmmaker Sessions(영국 런던·미국 뉴욕), Queer Mvmnt Fest’s Film Screening(미국 캘리포니아, 오디언스 초이스 어워드) 등의 영화제와 국제 영상·미디어 플랫폼 참여가 있다.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NeMaf), 제20회 청주국제단편영화제, 서울로미디어캔버스 기획공모 개인전 등 다양한 국내외 페스티벌에서도 작품을 선보였으며, 지금까지 22회의 개인전과 80여 회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2024), 작가조사·연구·비평(2023), 시각창작산실 우수전시(2022) 등 12여 회의 수상 및 프로젝트 후원을 받았고, 2021년 영국 PCA와 사치갤러리가 주관한 START.art 글로벌 플랫폼 선정, 2005년 미국 Siggraph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선정 등 다양한 국제적 성과를 이루었다. 저서로는 《드림타임 스토리; 트레이싱》(2015), 비평집 《다발 킴 그리고 천 개의 횡단》(2023)이 있다. 


주요 작품 해제

 

값비싼 여인(Expensive Woman), 105×77, Red Ink, 2012




2012년 중국 798 베이징의 캔파운데이션 아트레지던스에 참여해서 그린 [값비싼 여인]은 중국하면 떠오르는 붉은색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도 붉은색은 벽사(辟邪)의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지름신’을 막으려면 부적이라도 붙여 놓아야 할 정도로 소비사회의 마케팅은 집요하다.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필요 이상의 소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폭주 기관차처럼 한 방향으로만 속도를 붙여 나아간다. 꽃과 하나가 된 얼굴은 여성과 꽃을 동일시할 때의 기대치를 전복한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건강함을 넘어서 비만인 몸은 결국 질병과 죽음으로 이어질 무절제의 상징이다. 얼굴 자리에 포개진 꽃은 여성 성기를 닮았으며, 모든 것을 삼킬 듯 왕성한 식욕을 표현한다. 포만감 가득한 인물은 상당 부분 자신도 동조한 결과인 과도함으로 인해 지친다. 같은 시기에 수탉 가면을 쓴 여자도 그린 것으로 봐서, 꽃은 가면같은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꽃이 여성의 본질은 아니다. 실제로 꽃은 양성이다. 


가면 속 여성은 무엇으로도 변신가능하며, 이 작품에서는 풍선같이 부풀어오른 몸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가 추동하는 욕망을 표현한다. 유명상표들이 신체 여기저기에 바느질되어 있고 가슴은 무엇인가를 보관하는 서랍으로 변신한다. 물신숭배의 정점에 오른 명품들은 비정상 상태의 몸체와 인과관계를 가진다. 보통 상품과 명품은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작가 또한 명품 생산자처럼 붉은 잉크에 펜촉으로 찍어 세밀하게 작업했다. 대상이 몸이다 보니 붉은색의 필촉들은 미세 혈관 망과도 겹쳐진다. 또한 자본주의의 유통망 또한 모세혈관처럼 소비자의 안팎을 에워쌀 것이다. 다발 킴의 작품은 몸과 환경의 상호적 밀착 관계를 표현한다. 이러한 세밀함 덕분에 단순한 풍자를 넘어선다. 현대의 기표로 가득함과 동시에 원시시대의 여성상을 닮았다. 하루하루의 생존이 불확실했던 원시시대는 지방의 형태로 에너지를 비축해야 했고, 이는 부러움과 아름다움의 기표가 되었다. 몸은 지금도 여전히 부의 지표가 된다.   

 


화려한 행렬(A Splendid Pageant), Ink on Paper,125×180, 2010 




행렬의 화려함을 더하는 것은 우두머리가 든 긴 깃발이다. 사막의 유목민들은 현대의 여행과는 개념이 다른, 생존을 위한 이동이다. 유목민은 그들이 키우는 짐승을 타고 간다. 다른 짐승들도 유목에 필요한 것들을 장착한다. 정주할 수 없는 그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이동한다. 짐승들은 어느 시점에는 유목민의 식량도 된다. 즉 희생된다. ‘고기를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자’라는 의미의 우두머리는 닭의 얼굴이다. 다발 킴의 많은 작품이 축제적 행렬을 포함하고, 축제에 흔히 일어나는 되기, 즉 변신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가면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면 뒤에 유일한 진리가 있는 것일까. 모든 존재들이 변신하고 접속하는 다발 킴의 세계에서 가면 뒤에는 또 다른 가면이 있을 뿐이며, 이는 비극도 희극도 아니다. 작가는 유목민의 땅인 사막을 이동하는 중의 무리들에 비해 단순하게 표현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발길이 닫는 부분만 묘사했다. 


나머지는 허공, 동양화로 치면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것을 디딤돌 삼아 나아간다. 디딤돌 사이는 하얀 심연이다. 심연은 갑작스럽게 불어닥치는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존재를 삼키거나 미로를 헤매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다른 시공간에서 뱉어낼 것이다.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동하는 행렬에는 잠재적인 움직임이 있으며, 작가는 이를 애니메이션 영상(2019)으로도 만들었다. 영상은 드로잉을 재료로 스톱 모션 기법으로 제작된다. 작가는 하나의 소재 또는 주제를 다른 형식으로도 만들어 대중들과 접속지점을 확대한다. 그림들이 영상이 될 때 잠재적 움직임은 현실화 된다. 동양화에서는 공간적 위치의 차이로 시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간은 서사다. 이 맥락에서 원경에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다리들을 보자면 그것은 과거를 말한다. 작가는 불현듯 사막에 처박혔다. 하지만 곧 행렬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된다. 여성의 가슴을 가진 우두머리는 같은 구두를 신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wedding), Mixed Medium with Acrylic on Smooth Paper,150×110, 2005




다발 킴은 대학원 졸업 후 뉴욕에서 첫 개인전 ‘미혹(Self-Delusion)’을 마쳤지만, 작업을 계속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디자인 회사에 입사한다. 디자이너로 순조로운 경력을 쌓아갈 즈음 ‘2005년 사막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디자인과 시각예술은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종합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감각이 필요하다. 다발 킴의 작품에는 그러한 종합이 있기에 자전적 내용이 담긴 이 작품의 의미는 크다. 결국 생계에 도움이 되는 디자인이 아닌 순수미술 쪽으로 선회했다. 여러 기득권이 포함될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서 현대 미술가로서의 이력을 쌓아갔다. 운명같은 선회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이 작품에서 사방위를 가리키는 구성은 새 출발의 가늠자가 되어준다. 다발 킴의 많은 작품처럼 여기에도 겹겹이 은유가 자리한다. 순수미술의 길이 가시밭 길임은 전통 혼례복 안에 몸 대신 자리한 나뭇가지들을 통해 암시된다. 결혼식의 상차림은 소박하다. 


동양풍 의상이지만 십자가형도 떠올린다. 비록 사지에 못이 박히지는 않았지만, 지상의 한 지점에 못박혀 있다. 거기에는 실제의, 또는 가상적 결혼이 야기할 부자유가 암시되어 있다. 하늘로 날아 올라갈 듯 한 제례복은 지상에 굳건히 닻을 내린다. 기독교에서 십자가형은 순교를 말하며, 근대 이후 종교의 전통을 내밀하게 계승해온 예술은 희생의 메시지를 담아왔다. 예술가는 인류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에 속한다. 이 의상의 변주는 후에 대작의 설치작품으로 다시 등장할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의상’은 단순한 에피소드나 비유를 넘어서, 다발 킴의 작품에 내재된 의례적 요소를 알려준다. 의례는 예술보다 더 오래되고 더 보편적이다. 디자인이냐 순수예술이냐의 선택을 넘어선, 더 시원적인 형태의 융합적 단계다. 첫 개인전은 검은색 드로잉만 발표됐지만, 삶이자 예술적 선회의 순간에 색이 돌아왔다. 삶은 무채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돋아난 돌기신화-생성 2022




작품 [돋아난 돌기신화-생성]은 2022년 문화비축기지에서의 개인전 대표작으로 ‘헤르마프로디티즘을 통한 이분법적 성규범의 해체’라는 주제와 관련된다. 산업화 시대의 석유저장고가 문화시설로 탈바꿈했듯이, 작가는 오래된 의상을 무대의 중심에 다시 세웠다. 바닥에 실제 식물을 심어서 부활이라는 맥락을 제시했다. 가로 6미터, 세로 5미터의 건축학적 규모의 작품은 실제로 입을 수는 없는 기념비적 스케일이지만, 양팔이 날개같은 느낌이어서 전체가 투명한 원형 전시 공간에서 날아오를 것같은 위세를 가진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대지에 묶어 놓는다. 초월이 아닌, 아래와 위의 관련이 중요한 것이다. 전시장을 상징적 우주로 본다면 작가는 이 작품을 세계의 중심에 세움으로서, 여성의 상징은 반쪽의 성이 아니라 전체를 총괄하는 양성적 면모를 부여했다. ‘명성황후 십이등청적의 대례복’이라는 모델이 있는 이 작품은 복식 기술자와의 협업을 거처 명주 원단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전통의 특이성은 살리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지양한다. 다른 공간에 같이 전시된 기기묘묘한 조형 의상들도 이러한 원칙을 따른다. 그것은 자연을 모델로 한 다양한 드로잉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가에게는 재현이 아닌 생성이 중요한 것이다. 가죽과 금속, 돌과 식물 같이 여러 재료가 사용되었고 회화작품이 전사된 디지털 프린팅이 무늬로 삽입되어 새로운 서사를 생성한다. 뒤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의상의 중심부에 모래시계 형태로 배치된 여성상 안에는 ‘작품 안의 작품’이라는 다발 킴이 자주 활용하는 형식이 나타난다. 풍만한 여성의 뒷면에는 먹고 싸는 식의 비천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숭고함 내부에 자리한 비천함은 그 모두가 경계를 넘어섬과 관련된다. 순수와 오염을 나누는 경계가 침범이 가지는 의미는 인류학이나 심리학에서 규명된 바 있고, 금기 위반의 충동이 가득한 현대미술 역시 같은 노선을 따른다. 미심쩍은 성인 ‘양성구유의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경계의 해체에 대한 구체적 도상이 된다.



유카의 꿈(Yucca's Dream), Performance photograph in White Desert(USA) & Pigment Print, 168.5x80cm, 2018 




2005년 사막 프로젝트를 통해서 예술로 되돌아온 작가에게 사막은 풍부한 영감을 주는 곳이 되었다. 이 작품은 뉴멕시코 주 화이트 사막에서 있었던 [천 개의 횡단-레드스타킹]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막은 이국적 풍경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비유가 될 수 있다. 작품의 소재인 유카(Yucca)는 사막이라는 척박한 생태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식물로, 대부분의 사막식물이 그러하듯 거칠고 볼품없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식물을 여러 용도로 활용했다고 한다. 작가는 유카에서 예술가가 처한 상황을 중첩시킨다. 드넓은 하얀 모래 위에 말라 죽은 채 서 있는 유카의 형태에서 작가는 숭고한 조형물을 본다. 생명체가 살기에 척박한 곳에서 햇빛 한 줄기와 물 한 방울을 더 취하기 위해 식물은 하늘로, 땅으로 줄기를 뻗었고, 죽은 후에도 두 세계를 이어가며 살아왔던 운동의 궤적을 유지했다. 작가는 이 의미 있는 존재와의 만남을 위해 특별한 자세를 취한다. 


거꾸로 처박혀 허공에 다리만 드러나는 도상은 2009년 이후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이 자세에 대해 ‘하늘을 바라보듯 생명이 가득한 땅 속으로 박힌 레드스타킹’이라고 말한다. 극적인 순간에 고정된 이 자세는 명상적이다. 이 순간 유카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던 사막의 바람 소리만 들린다. 쩍 벌린 다리 이미지는 선정적으로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작품을 통해 여러 상황에서 반복되는 이 상징적 행위는 대상 혹은 상황과의 깊은 접속을 말한다. 말라죽은 생명체는 한 작가와의 접속으로 예술로 환생한 것이다. 만남은 그저 지나치는 구경꾼적인 시선이 아니라 서로를 내어주는 내밀한 차원이다. 세계를 유목 중인 작가에게 피상적인 소재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 여성의 다리와 결합 된 나무줄기는 인류학에서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행했던 다양한 성적 교섭을 떠올린다. 대지에 비가 내리는 현상, 밭은 가는 행위 등에서 인류는 음양 합일의 상징을 보았다.  

  

출전; 2022-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조사-비평>지원 사업에서 다발킴 작가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