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 킴의 초상 연구; 자연사에 속한 계보학적 초상
이선영(미술평론가)
1. 거울과 초상
다발 킴의 작품은 자전적 특성이 강하지만, 굳이 초상이나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자주 붙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19c 자화상 19c Self-Portrait](2010)은 주목할 만하다. 이 제목은 19세기 동양의 고풍스러운 옷차림을 한 사람임을 말하지만, 동시에 노랑 바탕에 붉은 머리 장식, 푸른 안경알 등이 팝아트같은 활기를 부여한다. 여기에는 이전 시대의 대중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속예술의 속성이 내재한다. 안경에 비치는 두 다리나 옷의 무늬처럼 그려진 산수에 불쑥불쑥 솟아나 있는 다리들이 보인다. 이 산 저 산의 다리들은 예전 그림으로는 시간적 추이를 공간화한 것으로, 서사를 담고 있다. 작가와 전혀 닮지 않은 초상에 붙여진 ‘자화상’은 작가의 상징인 다리들을 보고 있으며, 그림과 안경은 그것을 반영한다. 거울/그림에 내재 된 분열의 조건이다. 10여 년 후의 자화상 [Red stockings with 19th century self-portraits](2019)는 사막 한가운데서 초상화로 상반신을 가린 인물을 보여준다.

19c자화상(2010)
레드 스타킹을 착용한 것으로 초상은 나무처럼 지상과 천상을 잇는 기념비적 위치에 자리한다. 얼굴 대신 초상화를 앞세운 것은 가변적인 정체성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얼굴은 본질이 아니라, 언제든 다르게 그려지고 내 걸 수 있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사비나 미술관에서 발표한 작품 [Andalusian secret garden-I](2019)에서 안달루시아 지방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작가는 뒤통수를 지우고 개미들이 가득한 이미지의 의상을 걸쳤다. 뒤통수도 얼굴만큼의 개인적 특징을 나타낸다면, 지우기는 익명화를 말한다. 바글거리는 곤충 떼 이미지는 삶 및 건강의 기표인 경계,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항상성을 위협하는 타자적 존재로, 다발 킴의 작품에 자주 출몰한다. 그녀의 작품은 은유적이어서 거의 모든 작품이 일종의 초상이지만, 본인의 얼굴이 소재가 된 작품은 극소수다. 한편 작가가 착용하고 행위하고 찍고 그린 레드 스타킹이라는 도상은 작가의 분신에 해당되면서 여러 작품에 편재한다.
분신처럼 여럿으로 분열된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주목할 부분은 그것이 신체의 일부라는 점이다. 현대 심리학은 거울의 통합 상이 환상적이며, 실재는 분열되어 있다고 본다. 다발 킴의 초상은 분열의 조건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작가는 단지 꿈꾸고 상상하는 존재가 아니라, 현실의 균열과 주체의 분열적 조건을 직시하는 자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는 [거울의 역사]에서 한 자화상에 나왔던 강박적인 큰 손의 예를 들면서, 그 손은 욕망 혹은 결핍에 형체를 부여하고 얼굴을 가리면서 육체의 분리를 예고한다고 해석한다. 요컨대 정신 분열의 경우처럼 신체의 모든 부분이 몸 전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거울상을 통해서 ‘불안한 이질감’을 분석한 것과 동일하다. 프로이트는 하우프의 동화의 예를 들면서 ‘사지가 흩어지고 머리가 잘리며 손이 팔에서 떨어져 나오고 다리는 혼자서 춤을 춘다’고 인용한다.
[거울의 역사]에서 강조되는 거울이 가지는 분열적 조건은 라깡의 거울단계의 이론에 기대고 있다. 보네는 라깡의 논문 [나의 기능을 형성하는 거울의 단계]를 참조하면서, ‘거울단계는 상징적 활동의 한 부분’으로, ‘거울 앞에 선 아이는 단편적으로 조각난 육체의 상을 벗어나 단일한 상을 갖게 된다’고 인용한다. 하지만 그러한 단일상을 형성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어느 순간에도 완전한 단일성을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거울은 자기 확인과 자기 표상의 보조자이며 깊은 내면의 심리적 불안을 드러낸다’고 본다. 하지만 거울이 ‘절단과 와해의 위협으로부터 주체의 단일성을 확인한다’는 점은 언제라도 그 반대의 방향으로도 갈 수 있음을 말한다. [거울의 역사]에 의하면, 인간은 조각난 채로 파악되며 자기 자신의 특별한 체험의 단편들을 알 뿐이다. 그리고 흩어진 모자이크를 이루던 한 조각 혹은 축소 상이 되어 버리면서 인간은 특별한 중심의 위치를 상실하게 된다.

자화상, 2009
인간은 전통사회처럼 성스러운 ‘존재의 대연쇄’ 속에서 조화로운 전체 속의 일부가 아니라, 뒤틀린 모순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괴물이 된다. 예술가에게 근대는 상징적 우주를 상실한 채 단편화 속에서 투쟁해야 했던 혹독한 시기였고 그 이후 이러한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울의 역사]는 ‘원래의 모습과 같으면서 동시에 다른 모습이 갖는 모호성, 동시에 그 풍요로움’ 또한 주목한다. [거울의 역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를 든다. 그에 의하면 거울이 닮음을 확인하고 인간의 눈을 가르치는 스승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에 따르면 환상이란 닮음의 조작일 뿐이다. 환상이 만들어지면 그곳은 원래의 것보다 더 매력적이며, 마찬가지로 단일성보다는 다양성이 매력적이다. 이렇게 해서 단 하나의 근원, 즉 모든 닮음의 근원에 대한 참조는 사라지고, 인간 정신을 흥분시키는 끝없이 많은 반사상의 다양한 변화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거울 상의 심리학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다발 킴의 작품에서 몸으로부터 분리된 다리는 완전한 몸보다 더 변화무쌍한 자아를 실험하게 한다. 그녀의 작품들에 첫인상을 부여하는 기이하고도 환상적인 요소는 거울상에 의지하여 파악되는 자아의 조건과 밀접하다. 보네는 ‘반사상에 대한 의식이며 의식의 반사상인 거울의 상은 여전히 환상이다. 하지만 환상이라고 해서 언제나 거짓은 아니다’고 말한다. 실제로 환상은 허위의식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형태를 통해 현실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보네에 의하면 거울은 ‘주체가 원래의 모습을 감추고 자신의 환영(fantasme)과 관계를 맺는 전이의 장소이며, 잠재적인 공간’으로, ‘거울의 허구는 현실과 상상의 엄격한 구분을 거부한다.’ 가면이나 변장, 동물변신, 이접 등의 유희를 자주 보여주는 다발 킴의 작품은 거울의 심리학처럼 변화무쌍한 상상적 자아와 상징적 주체의 무대이기도 하다. [Fearless Speech](2019)에서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난 붉은 하이힐의 여성은 유혹과 파괴를 결합시키는 팜므 파탈(요부)의 분위기가 있다.
양다리를 한껏 벌린 선정적인 포즈는 세상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세상에 쏟아내는 기이한 것들로 가득하다. 몸에 밀착된 의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연물이라는 특징이 있다. 올린 지퍼 안쪽은 피부가 아니라 바로 내장이다. 가면 뒤에 (진짜)얼굴이 없듯 의상 뒤에 몸은 없다. 의상이 몸이다. 변신은 전면적이다. 작가에게 드로잉의 과정 자체가 변신이다. 밝은 표면 위의 검은 선은 자유연상을 따라서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꽃이 되었다가 벌레가 되었다가 깃털이 되곤 한다. 포스코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 [self portrait](2010)는 가죽 위에 끼워진 초상으로, 아마존의 여전사와 사이버 펑크의 여전사를 합쳐 놓은 듯한 모습이다. 로봇의 부품같은 기계와 유물처럼 보이는 칼같이 서로 다른 시대의 물건을 동시에 장착한다. 작품 [자화상 2019 Self-Portrait 2019]에서는 생선, 육류, 조류 등 다양한 고기류를 들고 다니며 파는 옛 상인의 모습으로 작가를 비유한다. 냉장고나 냉동 트럭도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상하기 쉬운 육류를 유통시켰을까.
하지만 필자는 1970-80년대에 머리에 생선을 이고 팔러 다니는 여자들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것은 짧은 시간 동안의 변화의 결과이며, 인간사회에는 격세유전(隔世遺傳)적 현실이 내재해 있다. 작가는 특정 역사의 재현보다는 보편적 상황에 관심을 둔다. 고기 장수는 팔 물건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가운데 책을 펼쳐 놓고 있다. 예술가적 자의식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상인은 무엇이든 판다. 시장은 다양한 것들을 모아놓는다. 우리는 수퍼마켓 뿐 아니라, 과자 한 봉지에서도 세계화를 본다. 작가 또한 무엇이든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 익명의 또는 유명한 옛 그림들도 패로디의 소재가 된다. 작품 [Self-Delusion-2](2005)는 끈, 나뭇가지, 천 등으로 엮어 만든 여성의 이미지로, 흉상인지 머리가 없는 몸체인지 모호하다. 결기 있는 자세를 하고 있지만 허수아비처럼 보인다. 몸은 자기 동일성과 항상성의 조건인 명확한 경계가 없이 잡다한 것들의 모임으로 나타난다.

비밀의 컬렉션, 2012

가면극의 방, 2019
작품 [Self-delusion-3](2005)는 의자와 몸이 결합 된 이미지로, 푹신한 것을 매끄러운 것이 덮고 있으며, 바닥에 ‘다리’를 대고 있는 모습은 인간과 비교될 수 있다. 빈 의자는 존재의 자리를 부재로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병으로 표현된 자궁은 유사(類似)의 방식으로 존재들을 엮어내는 상상력 보여준다.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에서 발표된 작품 [유혹 Temptation](2012)에는 거울 형태의 틀에 유방이 수없이 불어나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방은 거울의 틀 바깥에서는 엉덩이로, 성적 매력의 담지체들이 일체형으로 모여 있다. 여성이 거울을 보며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때, ‘실제’에서 가감되는 되는 것은 무엇인가. 다발 킴의 작품에서 알이 요기된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풍자적이다. 요리된 달걀은 그렇지 않은 상태의 다양한 잠재력을 하나의 쓸모로 환원시킨 것이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날 것/요리된 것으로 자연과 문명을 대조한 바 있다.
자신의 드로잉 작품들이 무늬로 들어간 의상이 있는 작품 [Dream Time Story-Tracing ](2016)에는 목 부분에 사슴뿔 같은 장식이 있다. 양복은 물론 한복도 새로이 디자인한 의상 조형 작품들은 그 자체로 전시되기도 하고 이를 착용하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활용된다. 옷은 그자체가 변신의 도구다. 제의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의상 전문가와 협업을 거치기도 하는 다발 킴의 의상 조형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접(離接)을 늘릴 수 있는 가능성으로 주목된다. 특히 의상의 솔기 부분은 다른 것을 덧댈 수 있는 접면이 다. 양복에 비해 평면적인 한복은 그러한 실험이 용이하다. 작품 [wedding](2008)은 고풍스러운 여성 제례복을 소재로 했으며, 처음에 드로잉이었지만 후에 실제로 제작되어 큰 규모의 설치작품으로 확장된다. 초상은 생물학적 욕구와 사회적 요구에 대한 답이 마련되는 장이자 주체의 욕망과도 관련된다.
욕망에 관련된 단도직입적인 제목을 가진 작품 [Desire](2008)에서는 사회적 동물로 알려진 개미들이 등장한다, 개미나 개미 떼는 다발 김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개미들은 협력을 통해서 마치 거대한 알처럼 보이는 요람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욕망에 대한 이미지는 자연적이면서도 인공적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정신분석학은 자연적인 것을 욕구로 구별된다. 자연적 욕구는 한계가 있지만 주체의 욕망은 한계가 없다. 그것은 욕망이 체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하얀 석유로 비유되는 리튬 한 덩어리로 많은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다는 맥락에서 체계는 실재에 비해 무한하다. 과학기술이 발전되지 않았다면 그 자원도 그냥 돌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실재와 체계를 서로를 전제하지만, 체계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정보혁명의 시대는 체계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하게 늘려나가며 그 그물망에 포착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작가가 자연의 편에 서서 발언하기를 즐기는 것은 그것이 체계화와 길항작용을 할 수 있는 실재에 대한 감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 유목적 주체, 그리고 여성
다발 킴의 초상은 디아스포라와 접속이라는 특징을 가지는 유목적 주체다. 작품 [유카의 꿈 Yucca_s Dream](2019)은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 맞게 진화한 식물들에 거꾸로 내리꽂힌 레드 스타킹이다. 레드 스타킹은 평소의 다발 킴을 예술가로 변신시키는 의상 코드다.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같은 대중문화의 영웅이 몸에 달라붙는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착용하고 초인으로 변신하는 경우와 달리, 이 ‘드레스 코드’는 상황을 지배하지 않고 상황에 깊이 접속하는 모양새다. 레드라는 상징색과 더불어 각선미가 있는 여성임을 추측하게 할 뿐 철저히 익명적이다. 작가는 변신을 통해 타자화되고 그 상태에서 타자들을 만난다. 타자(여기서는 낯선 대지)와 만나는 방식은 쐐기같이 속도감 있고 따라서 결합력은 크다. 그것은 지나가며 구경하는 듯한 만남이 아니다. 유목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키워드가 된 디아스포라처럼 흩뿌려지고 뿌리 내린다.
작품 [화려한 행렬 Colorful procession](2019)에서 레드 스타킹은 모래밭과 식물처럼 부드러운 곳 뿐 아니라, 암석과 물로 이루어진 무인지경의 대지에 거꾸로 꽂힌다. 거대한 자연과 작은 주체는 낭만적 풍경의 주제로, 여기에서는 숭고함의 테마가 흐른다. 아름다움이 한계 안에서 최대한 충실하며 결과를 내놓는다면, 경계지어질 수 없는 숭고는 무한을 암시한다. 작품 [ALVIK, NOR-WAY_Amazon goddess of Fikadal](2019)에서 레드 스타킹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 낭떠러지에 도착한다. 머리부터 변신 중인 레드 스타킹은 이 경계 지대에서 도약과 비약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작품 [유동 Flowage](2010)에서 양변기와 연결된 둥근 산수와 양변기로 이동하는 사슴들이 보인다. 블랙홀같이 이어지는 세계들은 가느다란 실처럼 연결된다. 작품 [21c 수선전도 21c Suson-Chondo](2010)에서 다리가 박혀 있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지도의 산들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드림 타임스, 삼륜 마차 여행 Dream Times, Three-wheeled wagon trip](2015)에서 삼륜차에 가득 실린 것은 여행지의 풍광들이다. 자동차는 현대 유목민의 필수품이기도 하다. 유목은 이국적 타자들과의 우연적 필연적 만남의 장을 제공한다. 작품 [모로코 남성과 레드스타킹 Morocco men and red stockings](2019)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코코의 좁은 골목길에서 레드 스타킹이 수레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낯선 이와 만나는 길은 신비로운 푸른 색조로 가득하며, 붉은 스타킹을 강조한다. 지역색이 물씬 풍기는 실내가 있는 [모로코 여성과 레드 스타킹 Moroccan woman with red stockings](2019)에서 이국의 여성과 작가는 레드 스타킹을 같이 신었다. 몸을 가려야 할 모로코 여성은 눈을 가렸고, 작가는 상대 여성이 입었을 법한 의상으로 눈만 내놓는다. 여성들끼리의 자매애는 아름다움과 억압이 공존하는 전통적 환경 속에서 피어난다.
관광지화된 유적지에서 찍는 대표적인 방식을 생각해보자. 관광 사진은 ‘여기에 온 나’의 얼굴이 중심에 있지만, 다발 킴의 [멸망한 도시에서 기념 촬영 a commemorative photograph in the ruined city](2019) 같은 작품은 쐐기같은 접속의 지점만 강조된다. 접속에 대한 이미지는 작품 [멸망한 도시에서 In the ruined city](2019)에서 선정적이다. 사막의 큰 나무에서 했던 동작과 유사한 이 포즈는 지상에 우뚝 선 모든 기념비들이 남근의 상징을 각인하고 있기에 풍요에 관한 원초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작품 [부부의 꿈 The Dream of The Married Couple](2009)은 작가와 남편의 초상이 거의 정확하게 드러나는 드문 작품이다. 그들의 이마와 머리칼 속에는 그들이 상상하고 경험한 것들이 자리한다. 두 독립된 개체는 머리카락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부부에 대한 널리 알려진 기대치와 달리,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연결은 역으로 차이를 전제한다.
작품 [창세기 숲속으로-Chapter 1 Genesis, Into the Forest-Chapter 1](2019)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 여성은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며, 이동하기보다는 뿌리 내린다. 작품 속 여성적 도상인 붉은 스타킹은 나무들을 끼고 있지만, 그 사이의 빈 공간 한가운데 남성이 서 있다. 작품 [숲속의 야경 Night view of the forest](2017)에서 나무와 결합 된 여성의 다리는 자극적이다. 봉춤(pole dance)의 도구처럼 우뚝 선 기둥은 남근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가운데의 남성은 난자를 닮은 둥근 형태의 식물과 결합한다. 작품 [무한한 Bottomless](2019)에서 거대한 나무를 가랑이 사이에 낀 모습은 선정적이면서도 여성의 생식력을 은유한다. 사막같은 극한의 생태계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나무는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러한 생명력과 상징적으로 접속하는 방식일 수 있다. 다발 킴은 신체, 특히 자신의 신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이미지와 메시지가 직접적이고 강하다.

수탉머리의 여자(2012)
미술뿐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오히려 시각예술이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더 민감하다. 작품 [Andalusian secret garden-II](2019)에서 나무둥치 가장자리로 보이는 레드 스타킹은 마치 나무처럼 자라나는 듯이 보인다. 오비드의 [변신 Metamorphoses]에 나타나듯이, 나무는 변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발 킴의 작품에 자주 출몰하는 곤충인 개미는 두 성 간의 극적인 차이가 흥미롭다.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기계로 생물을 간주하는 학파가 있을 만큼, 생식 활동은 유기체의 중대한 기획인데, 이때 가부장적 상징계가 지배적인 인간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극적인 비대칭 관계가 자연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 작품 [여왕 개미 왕국 Kingdom of Queen Ant](2018)에서 가운데에 자리한 큰 여왕개미와 가장자리에 몰려있는 일반개미들이 대조된다. 여성상에 대한 반전도 꾀해진다. 감시를 넘어 조절 사회가 된 현대에서 나태와 빈곤, 나이먹음의 상징으로도 읽히는 뚱뚱한 여성의 토르소는 마치 원시의 비너스 상처럼 풍요롭다.
다발 킴의 작품에서 몸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자루처럼 나타난다. 작품 [수개미와 여자 Male ant and Woman](2017)에서 뚱뚱한 여자의 넓은 등판과 엉덩이에 또 다른 이미지가 가득하다. 2022년 전시 때는 출력해서 거대한 의상에 장착하기도 했다. 똥 싸는 소, 오줌싸는 개. 날개 달린 돼지 등과 함께 척추에 해당되는 중심에는 요가 명상 중인 듯한 작가의 모습이 있다. 머리 위에는 새가 앉아있다. 명상이 그러하듯 새는 분리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할 수 있는 존재다. 먹고 싸는 지상의 가장 비루한 현실로부터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도약을 가능하게 한다. 거대한 몸체 주변에는 개미 떼들이 바글거린다. 벌레들에 대처하는 몸의 반사적 행동을 생각하면, 그것은 무너지는 또는 내외가 통하는 경계에 관한 이미지다. 뚱뚱한 여자의 이미지는 때로 풍자적으로 활용된다.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에서 전시된 작품 [값비싼 여인 Expensive Woman](2012)에서 비만인 여자의 몸에는 샤넬이나 루이비통같은 명품 로고가 꿰매져 있다. 여기에서 몸은 브랜드의 전쟁터로 나타난다.
1인당 명품 소비액이 세계 최고라는 통계가 있는 한국에서 풍자적 메시지를 가진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서랍 달린 누드 이미지를 변조한 서랍에는 값비싼 것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꽃이자 여성의 성기를 닮은 얼굴은 씹지도 않고 삼킬듯한 폭주 이미지다. 작품 [A plump and voluptuous beauty](2008)에서 몸집 큰 여성의 주름 잡힌 살집의 굴곡 면에 그려진 풍경에는 건축적, 자연적 풍경 모두 포함된다. 그림 속의 그림이라는 틀이 있지만, 몸의 경우 신축성 있는 자루처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다른 작품에서 몸(사람, 동물)속 풍경은 지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뚱뚱한 여자에 관련된 다양한 의미가 새겨져 있는 몸체에는 여성에 대한 또는 여성이 처한 현실과 이상이 비춰진다. [여자의 꿈 The Dream of the Woman](2009)은 사물의 표면 위에 그려진 작품으로, 속옷에 가면을 쓰고 잠자리를 잡고 따라가는 여성의 취약한 상태를 표현한다.
[빨간 팬티의 기념 촬영 Commemorative Shoot of Red Panties](2017)에서 고풍스러운 나무 가구 안쪽에 그려진 여성은 한 손에 풀린 족쇄를 들고 열린 문으로 나선다. 작품 [천상의 케이크 Heaven Cake](2017)는 근현대 이전의 많은 시공간대를 섭렵하는 다발 킴의 작품에서 희생제의적 주제가 등장한다. 사회는 지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적 존재를 반드시 필요로 했는데, 그들이 바로 타자이고 여성 또한 그렇다는 것을 보여준다. 케잌 모양의 구조 위에 머리 잘린 동물이 희생제물로 바쳐진다. 젖이 퉁퉁 불어있는 암컷과 케잌 하단에 상반신을 쑤셔 넣고 있는 여성들은 타자화된 존재, 즉 희생물을 희극적으로 표현한다. 물론 전적인 희생은 없다. 현대사회는 잔인한 희생의식 대신에 스스로 조절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제가 작동한다. 작품 [고기 먹는 여자 Woman to eat meat](2015)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금식을 요청받아온 여성의 억압 또는 자기조절의 기제를 표현한다.
식욕으로도 상징될 수 있는 여성의 욕망은 제어되고 조절되어야 했다. 다발 킴의 작품에는 그 안에 그림을 넣기 위한 오래된 물건은 액자 형식이 많다. 머리는 산양인 벌거벗은 여자가 목에 줄을 맨 채 고기를 먹고 있는 이 작품도 고풍스러운 액자 안에 있다. 고기를 먹는 존재도 고기일 수 있다. 희생물을 먹는 것을 동화(同化)의 의식으로 삼은 인류학적 예가 있다. 완벽한 주체가 되기 위해 대상을 설정하는 주/객 이원론 이전, 또는 이후의 습속이다. 다발 킴의 작품에서 몸은 권력의 요청에 의해 가변적인 양상을 보인다. 몸은 명확히 경계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으로 펼쳐지며, 풍경화 된다. 포스코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 [고대 유물-뉴바디랜드 Ancient Ruins-New Bodyland[(2010)은 몸과 지도가 하나가 된 형태이다. ‘바디스케이프’라는 말도 있듯이 몸은 광활한 풍경이다. 작가는 그 안에 무엇이 등장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풍경의 융통성을 이용한다.

꿈의 연작, 2009

수개미와 여자, 2017
다발 킴의 작품 속 인간이나 유기체들이 그렇다. 새의 부리를 가진 소는 관으로 연결된 몸통 안에 고지도가 자리하는 작품 [고대 유물-소의 변이 Ancient Ruins-Variation of Bull](2010)에서 지퍼처럼 열리는 몸통은 작가의 초상화에서도 등장한다. 동일자가 자기화할 수 없는 타자는 저 높은 곳에 있거나 저 낮은 곳에 있을 뿐, 결코 동렬에 있지 않다. 타자를 동렬에 놓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나 다원주의의 목표지만, 그러한 이상이 현실이 된 적은 없다. 신성은 절대적 타자다. 작가가 누비고 다녔던 여러 대륙들에는 현대 문명이 장악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알고 지배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말린 식물들로 인간의 실루엣을 만든 작품 [박제된 여신 Stuffed Goddess](2019)은 박제이긴 해도 신이 호명된다. 살아있는 식물은 변신하지만, 지푸라기들은 만들어진 형태 그대로 고정되기에 ‘박제’와 비유된다.
믿음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불안정한 현대적 삶의 조건은 여신 또한 (남)신과 더불어 사라지게 하지 않았을까. 신은 고정된 상징으로만 나타난다. 이때 타자는 코드화되어 소비될 것이다. 수많은 다리들로 뒤덮인 십자가가 있는 작품 [고해성사 Confession](2017)에서는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있다. 성(性)과 성(聖)이 교차하는 지금에 웜홀같은 구멍이 있다. 둥글게 연결된 산들이 있는 [사막의 풍경 The Landscape of Desert](2010)에서 여성의 다리는 산과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이라는 모태로부터 탄생함을, 그리고 여성은 자연과 더 가까운 존재임을 말한다. 작품 [ALVIK, NOR-WAY_Female warrior of DAMMAN](2019)은 명상 수행 중인 존재를 통해서 절대적 타자와의 접촉을 시도한다. 명상자가 앉은 위치는 하늘과 물, 분리된 두 대지를 잇는다. 제한된 현실을 살다가 가는 인생에게 이러한 잇기는 얼마나 멋진가. 삶의 지평은 삶 이전과 이후까지도 뻗어나갈 수 있다. 고지의 배경을 이루는 구름은 자연 현상임과 동시에 명상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