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변신; 동식물, 그리고 사물과 결합 된 과정 중의 주체

현대사회에서 타자화 된 대표적 대상은 자연이다. 자연은 인간의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식민화되었다. 하지만 지구생태계는 다시 균형을 이루려 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은 타자의 무시무시한 측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타자와의 만남을 중시하는 다발 킴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의 경계는 모호하다. 종적 순수함은 없다. 종(種)이란 인간의 분류체계일 따름이다. 다발 킴은 인간을 중심에 놓는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림 속의 그림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자연에는 경계가 불확실하다. 경계는 수시로 침해되고 융합된다. 작품 [땅과 산 사이에 Between the ground and the mountain](2017)에서 당나귀의 몸체를 가득 채운 또 다른 이미지들은 그림 속의 그림, 작품 속의 작품이라는 다발 킴의 조형적 어법을 보여준다. 내부에 다른 것을 품는다. 안과 밖의 자리바꿈은 언제라도 어떤 형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19세기 자화상을 들고 있는 레드스타킹(2019)


작품 [코끼리의 꿈꾸는 시간 Dreaming Time of the Elephant](2015)에는 코끼리 몸체 내에 미지의 대지가 펼쳐져 있으며, 유물의 단편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이미지 안에 또 다른 이미지를 넣는 방식을 보여주는 [드림타임스, 트레이싱 Dream Times, Tracing](2015)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유기체는 자신이 속해 있었을 법한 환경을 품고 있다. [근원의 지도 제작 Mapping of the source](2015)에서 작가는 한 마리의 물고기나 개에게서 그것들을 이루고 있을 해부학적 형태나 생태적 환경을 투사한다, 기계 부속품부터 풍경까지 오만 잡동사니를 다 품고 있는 얼룩말이 있는 작품 [버닝 패세지 Burning Passage](2015) 동질성을 이루는 이질성을 보여준다. 작품 [21c 말 21c Horse](2010)은 머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몸통은 복잡한 도상으로 가득하다. 순종이 아니라, 잡종, 혼종이 그 특징인 21세기의 말이다.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도상들도 복잡하다. 


가령 수많은 손과 유방을 가진 존재가 그렇다. 그것이 무엇이든 연결은 필수다. 워낙 빼곡하게 형태들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 몸통을 한 순록을 그린 [21c 대동여지전도 21c Taedong-yoji-chondo](2010)에서는 풍경을 품고 있는 유기체 형상이 있었듯이 지도를 품는다. 도상의 공간적 양립에 보태진 시간적 감각은 변신에 대한 상상력을 낳는다. 작품 [외로운 헌터 Lonely Hunter](2015)에서 다리 4개의 물고기를 타고 가는 여성의 머리는 늑대다. 변신하는 주체는 변신하는 대상과 함께한다. 복합적 정체성을 다루는 다발 킴의 작품에서 변신은 중요한 테마이다. 질 들뢰즈는 [소수집단의 문학을 향하여]에서 카프카의 변신과 탈주의 주제를 다루면서,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의 개념을 전개한다. 감각과 이미지의 원천인 육체는 고전적 혹은 실증적 의미의 실체가 아니다. 육체는 하나가 아니라 다형적 중심을 가지며 명확한 형태가 없다. 


들뢰즈는 그러한 육체를 기관 없는 신체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거미의 비유를 든다. 거미줄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강도 높은 파장을 타고 그의 몸에 전해지는 미소한 진동을 감지할 뿐인 거미는 오직 기호에 대해서만 응답한다. 이 기호들은 파장처럼 거미의 신체를 관통하고 그로 하여금 행동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발 킴의 작품에서는 개체가 아니라 군체로 작동하는 개미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들뢰즈의 거미에 해당되는 것은 거미 줄같은 선이다. 어디선가 뽑혀 나온 선들이 동렬에 놓일 수 없는 것들은 줄줄이 연결시키는 장면은 자주 나타난다. 머리카락이 때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거미줄과도 비교하게 한다. 변신해야 하는 이유도 공유한다. 들뢰즈의 카프카론은 정신적인 영토화의 방법인 원형을 극복하기 위해 변신을 필요로 했다. 원형이 질서에 안착하는 방식이라면, 동물변신은 탈영토화이다. 작가는 인간이기를 멈추고 원숭이 또는 곤충, 개, 생쥐로 변신한다. 


동물변신은 모든 형태, 의미화, 기표, 기의를 와해시킨다. 들뢰즈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비인간으로의 변신, 범 우주적인 동물 변신이다. 들뢰즈가 권하는 것은 다만 인간적인 껍질을 벗고 육체의 어떤 강밀한 영역을 통과함으로서 원래 우리에게 속한 영역을 회복하는 것이다. 작품 [사냥 Hunting](2015)은 카프카의 [변신]처럼 탈주를 위해 작게 변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변한 여성은 파리나 개미 만해지면서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곳도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지배적 질서에서 주변화된 존재들은 이미 유령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타자들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노출을 최소화하는 투명화 전략을 선택한다. 한편 작은 곤충들을 확대하면 그자체가 괴물적 양상을 보인다. 얼굴을 붕대로 가린 여자 머리 위에 수탉이 앉아있는 작품 [수탉과 여자 The Cock and The Woman](2009)에서 ‘여자’라는 표현은 작가의 성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작품에서는 머리가 수탉으로 합체되기도 한다. 알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액체는 새로운 탄생이 있기 위해 깨져야 하는 어떤 세계를 상징한다. 다발 킴의 전시장은 흡사 박물관같은 분위기로 연출되곤 한다. 박물관 또한 화석처럼 빈칸들이 많다. 가령 박제된 듯한 머리와 로봇 몸통이 접합된 이미지의 작품 [고대 유물-돌연변이 동물 Ancient Ruins-a Mutation animal](2010)은 양자 간의 중첩을 보여준다. 역사주의로 대변되는 연속성의 논리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지만, 바로 이곳이 예술가나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자리다. 막연한 허구가 아니라 언젠가 한번 분명히 있었음직한 유물같이 연출된 작품들은 예술과 사물을 견준다. 사물의 어법을 잘 활용한 현대미술 사조가 초현실주의였음도 확인하게 된다. 오래된 액자나 사물과 결합 된 이미지는 유물같은 분위기다. 고지도의 형식을 빈 기호적 풍경 안에 다리들 배치한 작품 [고대 유물-통계지도 Ancient Ruins-Cartogram Statistical Map2](2010)에서 누렇게 바랜 지도는 고풍스러운 액자 안에 안치된다. 



ALVIK, NOR-WAY_Amazon goddess of Fikadal(2019)


[숲속의 야경 Night view of the forest](2017)은 그림을 고풍스러운 목가구에 조합한다. 유목하다가 만난 사물들을 수집하는 것은 파리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욕망에 조응하는 사물들을 만나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자의 궤적을 따르는 것이다. [노마딕 컬렉션 Nomadic Collection](2015)은 수수께끼같은 사물들이 있는 유사 고고학적 대상이다. 초상에서 대상이 중요한 것은 대상이 그에 상응하는 주체를 전제하거나 호명하기 때문이다. 작품 [노마딕 상자 Nomadic Box](2015)는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자다. 하지만 상자는 상자 주인과 밀접한 것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작가의 여러 작품이 나타난 대상, 풍경 등으로 뒤덮인 상자로 유목하면서 수집된 것들이 작품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작품 [DreamTime Story-Tracing_installation_Australia](2015)에서 상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지 한가운데 만쯤 열려 있다. 그것은 나중에 노마딕 상자로 재탄생할 것이다. 


무엇인가를 담는 상자는 유목민의 필수품이다. 현대의 유목민이 주로 스마트폰에 경험을 담아온다면, 작가는 코드보다는 사물 그자체를 중시한다. 그렇게 수집되었을 것들은 [노마딕 컬렉션 Nomadic Collection](2015)이 된다. 유목의 산물들이 전시장에 걸릴 때는 고고학적 분위기로 연출된다. 오래된 물건 안에 집어넣은 여러 이미지들은 산수화처럼 고풍스럽다. 작품 [무릉도원에서 남녀 A man and woman in Paradise](2015)에서 현대적 차림새의 남녀는 가방을 함께 싸고 무릉도원으로 갔을지 모른다. 작가에게 작품이란 다른 차원으로의 여행이며, 그 여행을 관객에게도 권유한다. 작가는 중성적인 표면인 캔버스보다는 사물을 선호한다. 사물 위에 작업하는 것은 또 다른 층위의 시공간을 덧입히며, 불연속적인 단층 사이의 연결망을 만드는 것이다. 작품 [무인도의 꿈 The Dream of the Uninhabited Island](2009)에서 작가는 사물의 표면 위에 정글 숲을 그리고, 그 안에 여러 포즈의 양다리를 배치했다. 


고풍스러운 기물 위에 다른 종의 동물이 얹혀있고, 기물 무늬 속으로 길이 나 있다. 기능을 알 수 없는 오래된 물건, 궁극적으로 비밀에 붙여진 자연은 비슷한 계열에 속한다. 모든 것이 뻔한 코드화로 치닫는 정보화 사회에서 예술은 그 비밀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고고학적 대상과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 고생물학은 고고학과 같은 반열에 놓인다. 작품 [붉은 사막 Red Desert](2015)에서 남은 뼛조각에 당시의 생태계라 할만한 세상이 소우주처럼 펼쳐져 있다. 작품 [닭의 변이 Variation of Chicken](2015)에서 나무껍질 같은 표면에 그린 닭의 모습은 마치 유물같이 연출되어 있다. 누런 종이 색이 오래된 유물같은 작품 [고대 유물-양배추의 변이 Ancient Ruins-Variation of Cabbage](2010)는 인간이 태어나는 자연의 이치는 양배추에도 해당될 것이다. 액자는 고고학적 분위기의 작품에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작품 [고대 유물-닭의 변이 Ancient Ruins-Variation of Chicken](2010)에서 치킨으로만 인식되는 닭은 공룡의 후예같은 위풍당당한 기념비적 존재로 표현된다. 


겉모습과 내부가 동시에 투사되는 몸통에는 바다같이 출렁이는 산맥이 자리한다. 작품 [Private Collection_Passage](2009)는 동물 뼈 위에다가 지도 같은 것을 그린다. 존재는 그가 걸어왔던 궤적이다. 뼈의 하얀 표면은 그리기의 본능을 자극했을 것이다. 뼈의 복잡한 굴곡이나 구멍 등도 표면에 추가된 조형 언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기계와 유기체의 결합은 예술 기계의 면모를 보인다. 작품 [환상 동물 이야기-III The Fanciful Animal Tale-III](2015)에서 동서고금에 등장하는 기이한 괴물에 대한 상상이 기계를 끄는 동물로 나타난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생물의 뼈, 바퀴, 그리고 붉은 구두의 접합체인 작품 [이것을 타고 싶다 I want to take this](2015)은 제대로 굴러갈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들뢰즈가 장 팅글리의 작품의 예를 들면서 설명한 예술-기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오늘날 기계는 유기체만큼이나 편재한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자들은 ‘기계적 무의식’도 가정한다. 


질 들뢰즈와 동료이기도 했던 펠릭스 가타리는 [기계적 무의식]에서 기계는 현실의 다양한 수준을 횡단하고 지층들을 조립하거나 해체한다고 말한다. 가타리는 정신분석적 무의식과 비교한다. 그에 의하면 기계적 무의식은 유전자 축 위에 코드화되고 할당된 콤플렉스로 결정화된 표상적 무의식이 아니다. 기계적 무의식은 지도 제작 방식으로 구축될 수 있다. 기계도 욕망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앙티 외디푸스]에서 욕망하는 기계의 예를 든다. ‘아르망의 불탄 바이올린들, 세자르의 압축된 차체들, 더 일반적으로 달리의 비판적 편집병의 방법은 사회적 생산의 대상들 속에서의 욕망하는 기계의 폭발을 확실하게 한다.’ ‘예술가는 오브제(objet)들을 통솔하는 주인이다. 그는 부서진 오브제들, 불탄 오브제들, 고장 난 오브제들을 기계들의 체제 속에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이 오브제들을 자기의 예술 속에 통합시키는데, 이때 욕망하는 기계들의 고장은 작동 자체의 부분을 이룬다.’(들뢰즈와 가타리) 



모로코여성과 레드스타킹(2019)


예술작품은 욕망하는 기계인 것이다. 한 작품에도 다양한 범주들이 혼재하며, 그것들 간의 자유 연상적인 연결망이 중시되는 다발 킴의 작품은 원형적 표상과는 무관하며, 자연은 물론 기계까지 포괄한다. [나의 환상적 실내장식 My Fantastic Interior Design](2015)은 유기체의 뼈와 여러 기물들이 횡단적으로 접속하여 일종의 환경이 되는 예술-기계의 면모를 보인다. 그것은 주입된 하나의 기능적 코드로 일사불란하게 작동되는 대상과 다르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기계(전구)가 한데 결합 된 작품 [수탉 머리의 여자 Women of Cock Head](2012)이나 목과 몸이 끈이나 관으로 연결되어 있고 몸통에 이질적인 것들이 가득한 동물 이미지인 작품 [블랙 패세지 The Black Passage](2010)에서 유기체는 종적 순수함보다는 이접(離接)의 결과물이다. 그것들은 부조리한 결합에도 불구하고 작동하는 듯하다. 이러한 부조리는 인간의 욕망이 치닫는 곳이 어디인지 불확실한 것과 연결된다. 

  

4. 형식; 놀이하며 유목하는 인간

다발 킴은 단일 인물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놀이를 즐겨하며, 초상 또한 그 맥락으로 읽힌다. 작가의 환상은 한 개체의 경계를 위반함으로서 작동하는데, 이는 ‘나눌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어온 개인을 전복한다. 사실 현대사회의 조건은 개인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근거한다. 극단적인 분업사회에서 통합된 개인이 가능한가. 개인의 위상은 분업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던 타자들이 가늠한다. 동물과 식물, 사물과 기계 등이 자아와 주체의 형상에 유희적으로 끼어드는 작품들은 ‘사유 경제와의 공모’(엘렌 식수)하는 ‘개인’을 교란한다. 물론 다른 범주의 연결이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 해체 그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단순한 파괴나 허무보다는 확장에 방점이 찍혀있다. 단지 마음을 확장한다는 유심론적인 태도라기 보다는 시각예술이 가지는 구체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작품은 존재가 아니라 되기의 장이다. 자아나 주체 또한 출발이 아니라 되기의 결과이다. 


마단 사럽은 [알기 쉬운 자끄라깡]에서 말하듯이 ‘폐쇄적이고 통합된 구조로서의 자아’는 변화한다. 마단 사럽이 라깡의 이론으로 본 주체는 ‘명확한 형상이나 의미가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파편적으로 나타난다. 주체가 무의식의 장소 속에서 형성된다는 말은 주체가 형성되기 위하여 분열을 대가로 치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라깡에 의하면 주체의 메시지는 나 아닌 타자의 장소로부터 흘러나오게 된다. 주체는 원인을 그 결과로부터 분리시키는 틈새로서, 원인과 결과 간의 관계가 설명될 수 없는 한 발생한다.’ 핵심적 주체는 무(無)를 숨기는 양파껍질과도 같다. 경계 위에서 더 활성화되는 불확실한 존재들은 환유나 은유같은 방식을 구사한다. 페터 비트머는 라깡 해설서인 [욕망의 전복]에서 환유나 은유의 표현방식이 욕망의 수사학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주체의 핵은 상징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은유나 환유적 차원은 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동일성에 도달할 수 없게 하는 결핍을 항상 반복적으로 도입하게 한다. 


다발 킴의 초상은 타자를 전면화한다. 페터 비트머는 ‘무의식을 내부에 있는 타국’이라고 말한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 주체와 유기체가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페터 비트머는 라깡이 프로이트의 이드라는 용어보다는 타자라는 용어를 선호한 이유에 대해, 프로이트는 이드를 충동과 정열의 소재지이며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했지만 타자는 특히 욕망과 관련되어 충족되지 않은 것, 그리고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것이라고 대조한다. 페터 비트머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차이는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과거시제에 종속시킨다면 라깡은 무의식의 시제를 부정했다는 점이다. 라깡은 이를 통해 무의식이 ‘빈 것, 부재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무(無)로서 경험되도록 하고 싶었다.’고 한다. 고풍스럽기는 하지만 시공간적 출처가 불분명하게 연출하는 다발 킴의 작품은 무의식이 상징화, 도상화, 코드화되는 것으로부터 탈주한다. 


여러 존재들이 복합적으로 제시될 뿐, 자연스럽게 융합되지는 않는 작품 속 존재들은 한 사회의 지배적 질서라고 할 수 있는 상징계나 자아의 상상계 사이의 틈은 메워질 수 없음을 강조한다. 세계 곳곳에서의 작업에 드러나는 이국적 타자와의 만남은 유목적이지만, 그것은 주체의 욕망 자체가 표류한다는 사실과 조응한다. 마단 사럽에 의하면 주체는 객관적으로 인식가능한 사물(기의)로 간주될 수 없다. 마단 사럽은 라깡의 이론에 기대어 주체가 자신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은 욕망과의 관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에 따르면 욕망의 표류하는 운동에서 주체는 그 조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정신분석학은 꿈과 무의식만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또한 마찬가지라고 본다. 마단 사럽은 ‘이성이 실증과학에 속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라는 라깡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것은 의식적인 논리적 또는 철학적 이성에 속하지도 않으며 무의식에 속한다고 본다. 



유카의 꿈(2018)



최근 이탈리아 MAO 미술관에서 발표한 몽화(夢花) 2025


라깡의 이론에서 이성은 ‘의미의 고집이며 표현되기를 또는 들리기를 고집하는 문자의 우월성 또는 권위’일 뿐이다. 섬세하기는 하지만 재현의 노동과 거리가 있는 다발 킴의 작품은 유희적이다. 강원도 폐광산의 구조물인 수직 갱도에서 실제로 포즈를 취한 레드 스타킹들을 보여주는 작품 [수직갱 The Mineshaft](2019)에서 수백 미터 아래의 지하를 다이빙하듯이 쑥 내려갔을 광부들이 노동을 했다면, 이제 산업화 시대의 기능을 마치고 폐허화, 유적지화 된 그곳에서 예술가는 유희한다. 예술은 노동 및 생산 활동과 길항 관계를 가진다. 본격적인 회화에 비한다면 드로잉은 훨씬 유희에 가깝다. 드로잉은 재현의 노동으로부터 탈주하게 한다. 손에 스며있는 드로잉의 감각은 꿈과 무의식, 그리고 우연한 만남과 충돌에 열려 있다는 점에서 자동기술적이다. 전구 안의 환상 동물, 그 아래 지도 모양으로 펼쳐진 계란 후라이, 환상 동물에 흡수되는 듯한 여성의 다리가 보이는 작품 [전구에 갇힌 혼돈의 신 The god of chaos](2015)은 질서와 무질서가 서로에게 의지한다. 


작품 [The Poetics of Black Passage](2005)에서 선의 자유로운 유희는 인체 기관과 연결된다. 기승전결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그리고’로 이어지는 느슨한 연결망은 종적, 횡적으로 뻗어간다. 작품 [레드 화분 Red Pot](2012)은 종적인 축적의 구조다. 붉은색 화분에 온갖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금속관과 뿌리 또는 혈맥 등, 이것과 저것이 유기체와 기계가 한데 뭉쳐져 있다. 다발 킴의 작품에서는 사람, 동물, 사물이 비슷한 존재태를 가진다. 작품 [정크 패세지 Junk Passage](2012)에는 층층이 쌓은 햄버거 패디에 책들이 포함된다. 작가에게는 먹는 것과 공부하는 것, 싸는 것과 쓰는 것의 연동된다. 수평적 행렬은 축제적으로 펼쳐지곤 한다. 행렬은 연극적이며 그 맥락에서 어떤 존재도 환영받는다. 작품 [가면극의 방  Room of Masque–2](2019)에서 레드 스타킹을 기본으로 해서 여러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걸치는 의상들이 타자적 변신 와중의 동일성을 암시한다. 


마술사나 연금술사의 방처럼 기이한 물건들로 가득한 방은 현장에 나가기 전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이다. 작품 [화려한 행렬 A Splendid Pageant-P](2015)에서 퍼레이드에 대한 이미지는 회화라는 공간적 형식에 시간적 추이를 포함하는데 적절하다. 각종 부속물로 장식한 나체의 여성들은 잠재적인 운동감을 보여준다. 또 다른 [화려한 행렬a splendid pageant](2010)은 수탉 머리의 사람이 사슴을 타고 행렬을 이끈다. 행렬 장면은 자신의 다양한 작품 소재들을 한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배열하는 좋은 방식이다. 현대사회에서 타자화된 자연과 함께 행진하는 모습에서 자연의 편에 선 작가의 입장이 나타난다. 소를 타고 가는 새 머리의 여성 이미지가 있는 작품 [천수경 속의 행렬도 Procession inside of the Thousand Hands Sutra](2017)에서 개미, 동물의 두개골 등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도상들이 엉켜있다. 미술사적 참조도 빈번히 일어난다.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말을 타고 산을 넘는 역사화 속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왕국 정복자 Kingdom Conqueror](2012)나 수탉을 안고 있는 모나리자의 한쪽 눈이 계란 후라이로 변한 [수탉을 품은 모나리자 Holding a rooster in Mona Lisa](2012)는 명화라는 확실한 코드를 활용하여 세상을 풍자한다. 패로디나 패스티시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법은 기성의 것을 인정하면서도 변형을 꾀한다. 변형은 놀이와 주장을 한데 결합한다. 가령 총과 아이스크림이 함께 디저트 그릇에 담겨 있는 [달콤한 세상 Sweet Society](2012)은 달콤한 유혹 뒤에 편재하는 폭력적 경쟁사회를 풍자한다. 사람, 사물, 동식물, 기계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다발 킴의 초상은 관객과의 소통에서 많은 접면을 유지하면서 모더니즘의 음울한 독백의 방을 벗어나 축제를 향한다. 축제는 고정된 일상과 달리 다양한 ‘되기’의 장이다. 질서화된 유기체와 달리, 특정한 입구와 출구가 없는 융통성 있는 초상들은 ‘대화적 상상력’(미하일 바흐친)을 촉발한다.  


출전; 2022-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조사-비평>지원 사업에서 다발킴 작가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