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탄생100주년 기념 이동훈 회고전》 2003.10.22-11.30, 대전시립미술관
우) 송미경 학예사 《대전 현대미술의 태동 – 시대정신》 2018.1.19-3.11,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에 1996년 9월 12일 입사해 2025년 12월 31일까지 근무했다. 29년 3개월의 그 기간은 ‘미술관 사람’으로 희로애락을 거쳐온 시간이었으며 사고하고 인식하는 많은 부분 또한, 그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날들이었다. 30여 년 전 어느 책에서 접했던 “10년을 공부하고, 10년을 현장 답사하고 10년을 연구하니 비로소 유물이 바로 보인다”는 역사학자의 회고가 소환되며,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즈음 정년 퇴임하게 되었다.
미술관 개관을 위해 대전광역시 내무국(현, 문화체육관광국) 내에 구성된 팀의 일원인 학예연구사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공립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의 운영방식을 벤치마킹하고, 관련인들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자문받으며 미술관 기틀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 끝에 1998년 4월 15일 대전시립미술관이 개관했다. 같은 해 4월 부산시립미술관도 개관하며 공립미술관의 서막을 연 선두 주자가 되었다. 미술관 구성의 핵심인 건물과 사람은 성립되었지만 자료(소장품)가 충족되지 못했기에 이듬해인 1999년에 미술관 등록이 완료되었다. 이 시기는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며 공립미술관 설립이 추진되어 건물(미술관)이 지어진 후 미술관 운영체계가 마련되곤 하였다. 학예연구실은 학예연구사 3명·전시담당 1명 총 4인으로 구성되었고, 필자는 전시기획·작품 수집·기록·자료실운영·미술관공연까지 담당했는데, 그 업무량이 너무 과중하여 하루 18시간 이상을 일하곤 했다. 더욱이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미술관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파행되는 여러 사항은 정신적 고통도 수반했다. 이런 현실은 다른 공립미술관의 학예연구사들도 같은 처지였다.
과중한 업무에도 익숙해지던 중 2003년, 평생의 과업이 될 전시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동훈(서양화가, 1903-84)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작가에 대한 많은 자료 수집과 관련인들의 자문은 이동훈 작가의 개인사 뿐 아니라 대전‧충남미술사의 기초를 정립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이후, 대전‧충남 지역의 작고‧원로 작가의 전시를 계속 담당하며 수집된 방대한 자료는 다시 전시로 이어지며, 대전미술의 형성과 발전 과정의 자료가 갖추어지는 선순환 고리로 연결되었다.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전미술과 관련된 2만여 건의 원자료가 수집되었고, 자료실 내 보관 장소(아카이브실)를 마련하여 참조코드를 형성하고, 기록한 자료 8천여 건을 위치 지정하여 배치하고, 향후 기록할 자료는 분류하고 정리하여 보관하고 있다. 자료를 보관할 장소가 마련되기 전까지 내 책상 주변과 미술관 내의 빈 장소에 보관하며 자리배치가 바뀌어야 할 때마다 공간을 이동하곤 했는데 덕분에 나의 사무공간 주변은 쓰레기 더미처럼 필자조차도 앉아 있기 힘들 정도였다는 여담을 이곳에 풀어 본다.
대전시립미술관 근무 30여 년, 그 긴 시간을 한 곳에서 일한 덕분에 대전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연결할 수 있었다. 작가와 유족들을 일일이 만나 자료에 대한 고증을 받고 기록한 이런 일련의 아카이브 업무는 필자에게 큰 보람이었다. 그러나 여타 이유로 발간되지 못한 대전미술 사료집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는 문구를 상기할 때 아직 발굴하지 못한 작가와 자료의 기록은 인생 2막에서 해야 할 소명 같은 일이라 생각된다. 이미 고인이 되신 대전지역 작가들, 많은 자문과 자료를 제공해 주셨던 선생님들, 미술자료 아카이브 길을 열어 주셨던 선배님들 그리고 함께 일했던 미술관 동료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전한다.
- 송미경(1965- ) 배재대 미술학과 졸업, 목원대 대학원 미술학과 수료. 1996 대전광역시 내무국 학예연구사 공채 입사, 2025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