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손동현, 〈한림모설〉, 2024-2025, 종이에 먹, 잉크, 크레용, 인주, 194×130cm
우) 이상범, 〈한림모설〉, 1958, 한지에 먹, 색, 101.5×48.5cm
“동양화 육법 중 작가의 숙련된 필치 같은 기법의 영역을 다루는 다른 다섯 지점과 달리 전이모사(傳移模寫)는 정신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2017년에 아티스트 토크에서 손동현은 자신이 재해석하고 있는 동아시아 회화 전통에 대해 언급했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오래된 과제를 안고 고민하는 수많은 이들 중의 한명으로서 경전처럼 여겨지던 육법의 개념에도 동시대의 고민과 나아가 변화의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해석에 공감하며 위로를 얻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한국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1897-1972)의 가옥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손동현을 초대할 기회를 얻었다. 전시 일정 중 국가문화유산인 가옥의 복원 사업이 갑작스레 이루어져 전시 일정이 변경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손동현: 석양에 내려앉은 눈》(2025.5.9-2025.9.20/2025.12.16-3.31)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더 특별한 전시가 되었다. 전시의 대표작은 〈한림모설〉(2024-25)이다.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한림모설(寒林暮雪)은 잎을 떨구고 가지만을 남긴 겨울숲(寒林)의 정신과, 세상의 소음을 지워내는 황혼 녘 눈(暮雪)의 고요가 만나 이루어진 마음의 풍경이다. 이는 중국 북송 시기에는 ‘기개와 본질’로, 조선 초기부터는 한국에서 ‘고결한 은둔’의 의미로 이해되었다.
손동현의 〈한림모설〉(2024-25)은 전통 산수화의 원근법과 공간감이 해체되고, 수많은 시각적 정보가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기호의 대관산수’이다. 화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래피티 양식의 문자들과 날카로운 기하학적 파편들은 마치 자연의 골격이 디지털 데이터로 치환되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역동성을 자아낸다. 화면 하단과 상단에 배치된 복잡한 문자군은 전통 산수의 바위나 토산의 역할을 대신하며 조형적 무게감을 형성한다. 잉크와 먹, 크레용과 인주라는 동서양의 재료들은 화면 위에서 충돌하고 섞이며, 고전적인 수묵의 농담과는 전혀 다른 물질성을 획득한다. 청전의 화풍을 따라 그가 그린 화면 중앙부, 깎아지른 절벽 위에 홀로 서 있는 집들과 그 주변의 앙상한 나무들은 이 소란스러운 기호의 눈보라 속에서 유일하게 정적인 존재로 남겨져 있다. 황혼 녘 눈은 이 작품에서 물리적인 실체라기보다 기호와 기호 사이를 메우는 공백이자, 모든 시각적 정보를 평면으로 압축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아니지만, 기획자로서 찾아본 이상범의 〈한림모설〉(1958)은 우아한 미감을 담고 있었다. 화면에서 가장 드러나는 것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비스듬히 솟아오른 설산의 존재감이다. 청전 특유의 부드러운 미점(米點)과 짧은 필선들은 산의 질감을 촉각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희끗희끗하게 남겨진 종이의 여백은 그 자체로 두터운 눈의 층위가 되어, 산등성이마다 내려앉은 겨울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잿빛 하늘의 먹색은 대기의 습윤함을 머금고 관객으로 하여금 고요한 화면의 세계로 더 시선을 고정시킨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들의 지붕 뒤편으로 번지는 은은한 먹의 농담은 해가 저물어가는 모설의 정취를 더한다. 그 왼편으로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한림은 이 작품의 시각적 중심을 잡아주며,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힘쓰는 점경 인물과 함께 추위 속에서도 생명력을 웅변한다.
청전이 타계 한 해 전에 자신의 삶과 예술을 반추하며 남긴 글귀 또한 한림모설의 정신과 공명한다. “예술이란 문화의 영역이고 가치의 세계이다. 때문에 예술에 선진·후진이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어떤 양식, 어떤 진실이 있을 뿐이다.”
이제 나는 눈 덮인 두 숲에서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