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미상, 〈감모여재도〉, 19세기, 종이에 채색, 103×85cm, 일본민예관
‘감모여재’란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그분들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출처: encykorea.aks.ac.kr


『천자문』에 “선위사막 치예단청 宣威沙漠 馳譽丹靑”이란 구절이 있다. 위엄을 사막에 떨치고 명예를 채색으로 그렸다는 뜻이다. ‘치예단청’은 한나라 선제(宣帝)가 11명의 공신을 기린각(麒麟閣)에 그리게 하고, 후한의 명제(明帝)가 공신 32명을 남궁(南宮)의 운대(雲臺)에 그리게 하니, 그들의 명성이 마치 말이 달리는 것과 같이 전해졌다는 데서 유래한다.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 “감로 3년 선우가 처음 와서 조근(朝覲)하자 선제가 팔다리처럼 부리던 공신들을 생각하고 그 모습을 기린각에 그리게 하니 모두 11명이었다”는 말이 전한다. 조근이란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뵙는 것을 말한다. 한편 『후한서(後漢書)』 주우·경단 등의 전론에 “영평 연간에 현종이 전대의 공신들을 생각해서 28명의 장수 화상을 남궁의 운대에 그리게 했다. 또 이밖에도 왕상·이통·두융·탁무 네 명을 그리게 했으니 도합 32명이었다” 기록이 있다. (『천자문』, 주홍사, 이민수 옮김, 을유문화사, 2015) 선제는 전한의 10대 황제로 기원전 74년에 즉위했다. 서역으로 진출해 그곳을 복속하고 북으로 흉노를 분열시켜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중흥한 명군으로 알려졌다. 선제가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의 노고와 업적을 잊지 않고 길이 기억하기 위해 기린각이라는 곳에 그들의 초상을 그려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기린각이란 한나라 무제가 장안의 궁중에 세운 누각의 이름으로 황제가 기린이란 희귀한 동물을 얻은 데서 연유한다. 『천자문』에 등장하는 다수의 문장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근거한 것이 많다. 그래서 『천자문』은 『사기열전』과 『한비자』 등의 중국 역사서를 병행해서 읽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하여간 이 문장을 보면서 고대 중국 황제들이 궁중의 누각에 공신의 초상화를 그려 걸게 했다는 대목이 무척 흥미로웠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조선시대에도 태조대의 개국공신에서 영조대의 분무공신에 이르기까지 총 28회의 공신녹훈(功臣錄勳)이 있었다. 701명의 공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신호를 받은 신하는 나라에서 직접 초상화를 그려주고 이를 보관·배포한다거나 신도비를 건립하는 등의 명예적 특전이 주어졌다. 공신의 초상화는 후손에게는 가문의 영광을 길이 보존하고자 하는 일종의 표상이기도 했다. 후손들은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초상을 걸고 절하며 혈연의 근원을 기억하고 선조의 공을 이어 가문의 영광을 빛낼 의지를 다짐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공신상은 뛰어난 초상화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국가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초상화를 남겨두었을 것이니 조선시대 공신상이란 조선 왕조의 성격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했으리라. 

최근 특정 기관에 걸린 사진으로 시끄럽다. 방첩사(이전 보안사령부) 본청 복도에 역대 보안사령관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그 자리에 여전히 전두환, 노태우 씨의 사진이 부착되어 있어 이를 철거하라는 국회의원들의 요구가 있었다. 각각 20대·21대 사령관을 지냈으나 내란과 군사반란 죄로 대통령 직을 박탈당한 이들의 사진이 여전히 부착되어 있었다는 것이 당혹스럽다. 국방부는 향후 내란이나 부정부패로 형이 확정된 지휘관의 사진은 걸지 못하도록 규정을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보수정당 국민의 힘 당사에 걸린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 옆에 전두환, 노태우 씨의 사진을 걸어야 한다고 보수 유투버인 한 당원이 강력히 요청했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이 당 지도부가 무응답으로 호응하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아버지의 사진을 내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보수정당이 수구집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지적이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반란과 살인의 혐의로 단죄한 이들을 여전히 특정 기관의 청사에 걸어두는, 두려는 이들의 퇴행적 역사관이 무척 의아스럽다. 국가에 공을 세운 공신의 상을 걸지 못할지언정 이래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