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표들이 조합된 풍경
이선영(미술평론가)
코드화되는 현실은 모든 것을 보다 쉽게 유통/소통시킨다. 지시대상으로부터 자유로와진 기표의 조합은 보다 용이하다. 무의미도 많지만, 생각지 못한 의미가 생겨나기도 한다. 무분별과 실험 사이의 경계는 늘 아슬아슬하다. 오늘날 회화는 물감과 육체라는 진득한 물질과 밀접하지만, 작업하는 당사자는 부유하는 기표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인간적 삶에서 기표 세계의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수많은 영감과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 또한 다시 기표가 되어 그 회로에 진입한다. 편재하는 정보혁명은 자연과 몸을 비롯해 아직 어둠 속에 남아있는 모든 것을 코드화시키려 한다. 좋게 말하면 이용이고 나쁘게 말하면 착취를 위한 것이다. 예술 또한 코드화와 역학관계에 있다. 예술은 코드를 포함하여 그 모든 것들을 버무려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코드화의 조건은 생산력 극대화를 위한 극도의 분업화이기 때문에, 현대인은 소비를 통해서나 이것저것이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단편화된 과제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지루한 노동에 놀이는 반작용한다. 강제와 자유, 일과 놀이는 어느 지점에서 화해할 수 있을까.

근대 이후 예술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났지만, 일과 놀이의 화해 가능성 때문에 아직은 이상적인 영역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예술 또한 외적, 내적 소외에서 그다지 자유롭지는 않다. 오세관은 어디선가로부터 온 기표를 이리저리 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일상의 논리에 반하는 부조리한 서사와 공간의 구성을 통해 현실을 표현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사이버 공간 속에서 가상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서 벗어난 또 다른 허구의 가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이 크지는 않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마련한다. 가상세계의 궁극적 지향 또한 대상과의 대면이 아닌 몰입에 있다. 동양화에서는 화면 내의 시각적 여행이라는 전통이 이미 있었고, 미니멀리즘 이후의 현대미술에서는 작품 전체를 연극적 무대로 연출하여 관객을 그 안에서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후자는 지나치게 큰 공간을 요구한다. 그에 걸맞는 가장 이상적인 공간은 인간 없고 따라서 의미도 없는(무의미의 의미, 또는 포스트휴머니즘적 의미) 광대한 폐허일 따름이다.
주류 현대미술의 전형적인 장면들과 달리, 오세관이 작품 소재 및 색감은 밝은 편이다. ‘아이언맨, 아톰 등의 슈퍼 히어로의 이미지와 경비행기, 유원지의 오리배, 패러글라이딩 장면, 보트, 아바타 등의 이미지’ 등 여가와 놀이를 연상시키는 대상들,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 등 파스텔톤의 배경 색감이 그렇다. 게다가 전통 산수화의 필법이 활용된다, 그 모두가 뒤섞여 ‘사이버 세상 속과 같은 비현실적 가상세계를 연출’한다. 그는 ’고전 무협 소설에서 나타나는 풍경 속에 가상의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것‘과도 비교한다. 고풍스러운 풍경에 난데없는 비행기가 날아 들어온다. 그런 풍경이 그려졌을 당시에는 없었을 문명의 산물이다. 비행기는 하얀 몸통에 날개의 그림자가 비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나, 풍경은 전통 기법이 발휘된 성글성글한 붓질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을 모노톤으로 변화시키는 겨울 풍경이 그러한데, 실제 풍경과 수묵 풍경이 절묘하게 겹쳐지는 경우가 있다. 현대가 공해로 인해 공기가 달라졌다는 점이 아니더라도 각 시대는 그 시대만의 공기를 품고 있다.

한 시대를 사는 인간에 의해 걸러진 풍경은 더욱 그렇다. 시대정신이란 시대의 공기를 호흡한 결과다. 오세관의 작품에서 서로 다른 존재의 만남은 여백이라는 동양화의 신축적이고 융통성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비행기 또한 낡은 기종 같지만, 그보다 더 앞서있었을 풍경에 비한다면 진일보한 문명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문명의 산물이 낡아 사라지는 속도는 배경의 자연보다 더 빠를 것이다. 자연은 동일성을, 문명은 차이를 대변한다. 또 다른 풍경에서 여백에 해당될 공간은 대지와 하늘의 색감으로 채워졌다. 수묵화같은 산과 바위, 그리고 그 사이로 나귀를 타고 가는 옛사람은 모노톤이지만,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오는 사람들 및 지상의 자동차는 화려한 색감을 가진다. 많은 스포츠 패션이 그러하듯이 배경으로부터 튀는 색감이 활동성을 강조한다. 오랜 사진이 빛이 다래듯이 과거의 장면은 현재에 비해 흐릿하다. 하지만 두 차원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그 모두가 자연 속에서 이동하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위치의 차이로 경과된 시간을 암시하는 동양화의 관습이 있듯이, 같은 색으로 그려진 세 명의 낙하자와 두 대의 차량은 시간의 추이에 따른 공간적 위치를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정지된 그림이 운동을 표현하는 고전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풍속화 형식으로 그린 두 여인네와 사실주의에 충실한 꽃그림을 병렬시킨 작품은 나비가 두 패널을 이어준다. 여러 나비일 수도, 나비 한 마리의 여러 동작일 수도 있는 나비는 꽃과 쌍을 이루는 성적 메타포를 품고 있다. 두 장면의 연관은 포르노그래피 못지않은 은밀한 화첩도 존재한다고 할 때 난데없는 조합은 아니다. 꽃과 나비 떼들을 병렬시킨 또 다른 작품은 나비 떼들이 도달하지 못할 보다 고상한 꽃처럼 보인다. 모노톤의 전통적 풍경화와 비행기의 조합에 반짝거리는 글자의 조합은 이질적인 것을 충돌시킨다. 전통과 현대, 자연과 문명, 고상함과 유치함 등, 하지만 풍경이라는 양식은 그 모든 것들을 품어준다. 그의 그림에는 현대적 비행기와 노를 저어가는 나무배가 공존한다. 물론 이러한 시대적인 차이가 반드시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현대인은 자연과 전통이 파괴되지 않고 아직 남아있는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 세계화가 많이 진전되었지만 여전히 지역적 차이는 존재하며, 이 차이를 잘 살리면서 보편성을 갖출 때 흥행도 보장된다. 전통 스타일의 붓질로 그려진 풍경과 비행체의 조합은 시간 여행같은 환상적 장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조합은 침략적으로 다가온다. 정지된 풍경에 빠르게 접근하는 전투기나 로봇이 그러하다. 그것들은 마치 드론의 시점처럼 근접 접근 및 관찰의 시점을 가지며, 이는 공격과 연결시킬 수 있다. 자생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전통이 파괴되고 단절된 그 어디서나 같은 운명이다. 오세관의 작품은 여러 패널을 연결시켜 장면과 서사를 연출하는데, 그것은 작품들 간에도 그렇다. 다른 패널에 있었던 기계 비행체와 고풍스러운 풍경이 다른 작품에서는 한 공간에 배치된다. 비행체는 빠르게 자연을 휘젓고 다닌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조용히 존재했건만, 시공간을 압축시키는 기계는 무조건 발전을 요구한다. 멈춤은 죽음기 때문이다. 근대적 발전이란 파괴를 전제한다. 예술은 모더니즘적 자율성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파괴적 발전을 전제하는 모더니티와는 긴장 관계에 놓였다.
둥근 화면 안의 비행체와 풍경은 마치 망원경으로 바라본 것같은 모습이다. 둥근 틀 때문인지 두 시대 또는 상황은 그다지 적대적이지는 않다. 멋진 환상과 판단 오류를 동시에 낳을 수 있는 시대착오는 속도와 밀접하다. 오세관의 작품에 많은 현대적 사물 중에서 굳이 비행기나 비행체, 비행과 관련되는 움직임이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폴 비릴리오는 [소멸의 미학-시간과 속도의 여행]에서 합리적인 기술들은 우리를 객관적 세계의 도래로 여겨지는 것에서 끊임없이 멀어지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신속한 여행, 사람들, 기호들, 사물들의 운송은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면서 피크노렙시(기억 부재증)의 효과를 다시 생산하고 강화한다. 합리적 기술들은 인간을 주체적 시공간 밖으로 납치하는 강한 자극을 영원히 되풀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이체와 연결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단은 이러한 기억상실증을 굳이 나쁘게 보지 않았다. 예술은 사회적 의무나 역사의 무게로부터 해방이라는 욕망에 의해 추동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할이라도 충분히 행해진다면, 그것이 예술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일 수 있다.
출전; 미술과 비평 202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