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力走)
이선영(미술평론가)
많은 것들이 코드로 변환돼 순환되는 정보화 시대에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예술사는 정보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부터 ‘현대’와 ‘실험’을 앞세워 조형 언어의 코드화를 지향하기도 했다. 가령 동구와 서구의 구성주의는 추상미술을 넘어서 건축과 디자인 등으로 확장되고 예술을 지양하기에 이르렀다. 전후에는 각종 ‘POST-’ 국면들 또한 인간, 역사, 근대처럼 처리하기 힘든 묵직한 것들을 가볍게 초월했다. 그러나 분업화가 가속도를 붙이면 붙일수록, 그래서 삶이 더욱 파편화될수록, 예술은 실재(the Real)를 향한 근원적 향수에 잠긴다. 자끄 라캉은 그자체로는 재현될 수 없지만 무의식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실재를 바다나 대지와 비유한 바 있다. 실재는 모든 지상적 존재의 출발이자 귀결이지만, 그자체로는 자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끝없는 과정을 통해 접근될 따름이다. 예술은 과학이나 종교 등과 더불어 그러한 과정을 수행하는 몇 안되는 중요한 분야로 생각된다.

김재홍, 융단폭격_Oil on canvas_50x180.5cm_2025

류연복,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서일출을보다401002023
김재홍의 회화와 류연복의 판화는 인간 및 자연을 작품 서사의 중심에 두는 진지함이 공통적이다. 청년 시절 진보적 문화예술의 맥락에서 읽혀왔던 그들의 작품 경향이 20세기만큼이나 21세기에서도 유효한 이유는 작품의 지평이 보편적인 삶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다른 정보처리 방식으로도 가능한 시시콜콜한 항목들의 재현을 넘어서, 그렇다고 관념적인 초월도 지양해야 하는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삶에 대해 말한다. 김재홍은 몸과 대지를 중첩시킨 풍경을 통해 이 땅의 몸뚱아리에 닥쳤던 비극적 역사를, 류연복은 자연의 풍요로움과 거대함을 부각시키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두 경향이 어두운 현실 비판과 밝은 전망이라는 이전 시대의 추상적 코드로 환원될 수 없다. 그들 작품의 토대인 자연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그저 있음일 따름이다. 하지만 있음의 확인만도 큰 위로가 되는 탈중심의 시대다. 대지에 기반한 김재홍과 류연복은 긴 시간의 주기를 가지는 실재를 향한 추구의 과정을 보여준다.
스펙터클하게 펼쳐진 김재홍의 최근 작품 [융단폭격]은 대지이자 몸이 풍경(bodyscape)을 이룬다. 바디스케이프는 자명하게 가정된 자연이 아닌, 각종 권력의 관통하는 유동적인 장(場)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색감은 몸의 일부로 보이지만 거인의 전모를 다 담아내지는 않는 작품들은 몸의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다. 완전한 대칭은 아니지만 좌우로 비슷한 모습이 대칭을 이루는 몸의 구조를 떠올린다. 폭탄 눈 시점으로 펼쳐진 온몸은 무차별 공격 대상이 된다. 다른 작품들에서 몸은 여러 각도로 배치되어 낯선 풍경으로 보여진다. 피부는 몸의 안과 밖의 경계가 되는데, 융단폭격은 그 경계를 허물어 죽음에 이르는 깊은 상처를 만든다.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세계 여기저기에서의 전쟁 참상은 이전부터 그가 그려왔던 몸풍경을 현재화한다. [장막] 시리즈에 몸이자 대지로 등장하는 덩어리에서 창백한 몸에 상처처럼 찍힌 궤적은 허리 잘린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그 의미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김재홍, 죽순_Oil on canvas_122x244cm_2025

김재홍, 장막-20260101_Oil on canvas_160x316cm_2026 (2)

김재홍, 장막-20250728_Oil on canvas_160x338cm_2025
몸이자 대지 안팎의 감시초소들은 분단의 현실 뿐 아니라 몸 자체가 감시의 그물망 속에 있음을 말한다. 모든 경계의 설정 및 유지, 확산에는 권력이 있다. 권력은 문지기다. 힘에 의해 유린된 몸은 삶과 죽음이 구별되지 않은 극도의 수동성을 보인다. 우리의 근대사 또한 민간인 학살을 포함한 많은 희생으로 점철돼 있다. 철조망과 초소, 그리고 분단의 상흔을 나타내는 기표들은 대량 살상이 운명적 사건이 아닌 사회 역사적 사건임을 말한다. [장막]이라는 제목은 감춰지고 억압된 것의 베일을 벗긴다는 의미이리라.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몸 자체가 장막이기도 하다. 장막 뒤에 또 다른 장막이 있다. 어두운 배경 속 밝게 처리된 몸은 관객 앞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듯하다. 과장된 원근법은 말 없는 풍경에 외침을 부여한다. 작품 [죽순]에서 대지에 드러누운 몸은 이런저런 굴곡을 가진 산등성이처럼 보인다. 죽창을 떠올리는 뾰족한 말단은 비록 그것이 부드러운 죽순이라 할지라도 몸을 관통하는 고통의 강도를 표현한다. 하지만 지상의 유기적 질서는 죽음을 토대로 또 다른 삶을 가능하게 한다.
화면 전체를 꽃으로 뒤덮은 류연복의 꽃나무는 동물에 비해 정적이라고 믿어지는 식물을 폭발적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그것들은 자기 자리를 지킨 채 격렬하게 운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의 한 장면을 넘어서, 지배권력의 불의에 항거하여 광장에 모인 촛불이나 응원 봉의 불빛이 연상되는 색감과 형태로 이어진다. 가지가 많아도 균형을 이루어 안정감 있는 나무는 아름답다. 거기에서 가득 피어난 꽃들은 화면 바깥까지 이어질 것이다. 작가는 나무를 화면 중앙에 배치하여 세계수(世界樹) 같은 위용을 부여한다. 세계수는 세계의 중심에서 자라며, 땅과 하늘을 잇는 영험한 존재이다. 이 상징적 중심은 지상의 기원을 염원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며, 각기 다른 차원을 연결함으로서 존재의 변모를 꾀한다. 매일 새로운 ‘OO현실’들이 말해지는 현재, 자연의 실재감은 삶 뿐 아니라 그림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풀 또한 나무처럼 여러 계를 관통하는 중심으로 나타난다.

류연복, 꽃한송이200100채색판화2025

류연복,ROADKILL-삵100200단색목판2025

류연복, 미사일나무에 꽃피다100200소멸다색목판2025
류연복의 작품 속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승화의 상징이다. 작가는 진흙에 해당되는 부분에 관객의 시선을 모은다. 아름닾게 핀 연꽃 지하에 묻힌 어두운 광경을 투시한다. 우리 근대사에 점철된 여러 폭력적인 사건과 갈등을 딛고 피어난 꽃은 여전한 희망 사항이다. 누워있는 동물은 죽은 것일까 자는 것일까. 인간의 영역이 극대화되면서 자연이 처해진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슬픈 일들은 더 많지만, 자연의 순리는 모든 것들을 다시 순환시킨다. 류연복의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매해 다시 피는 고목은 재생의 상징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일출을 보다’라는 기록이 남겨진 작품은 웅장한 산과 작은 인간들을 대조한다. 마주한 사람들 앞에 장대하게 펼쳐진 산맥은 마치 거대한 해일이나 산불처럼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힘이 있다. 자연의 숭고함과 마주한 인간은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의 판화는 자연에 내재된 풍부한 질감을 극대화한다. 에너지의 흐름이 물질화된 풍경은 자연처럼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탄생한다.
출전; 해움미술관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 김재홍·류연복
2026-04-30 ~ 2026-07-30
해움미술관
상세정보: https://www.daljin.com/display/D108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