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서울시립사진미술관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중요한 전시가 막을 내렸다.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2025.11.26-3.1)전이 그것이다. 한희진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 전시는 개념미술이 강세를 보인 1970년대 초반부터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 첨예하게 대립한 80년대 후반까지의 한국 현대미술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기획자는 20여 년에 걸친 기간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실험미술의 양태가 어떠했는지 사진매체를 중심으로 샅샅이 훑는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 36인은 화단의 중진 내지는 원로작가로서 이미 역사의 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대략 40-5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당시 한국의 현대미술이 과연 어떤 모습을 띠고 전개됐는가 하는 점을 사진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곽덕준, 〈다른 공간 743 〉, 1974, 패널에 사진, 드로잉, 84×59cm,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이 전시가 끼친 영향으로는 여럿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미술교육의 측면이다. 이는 비단 사진 전공의 학생뿐만이 아니라 작가 지망의 미대생이나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대중에게 과거 한국의 실험 내지 전위미술의 보기 드문 사진 작품의 고전들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이로써 10년에 걸친 개관준비 끝에 출범한 서울시립사진미술관으로서는 세 번째 맞는 이 기획전이 앞의 두 전시에 이어 성공적으로 마침에 따라 국내 최초의 공립 사진미술관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는 순항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용철, 〈포토·페인팅·텔레비전 ‘이것은 종이입니다’〉시리즈 #1-3, 1979,
흑백사진에 탈색, 실크스크린, 45×57.5cm 작가 소장
한국 현대미술사상, 사진이 단순히 기록의 차원에서 벗어나 작가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된 것은 70년대의 개념미술에 와서다. 이 전시가 1 전시실에서 이승택, 김구림, 김차섭, 곽덕준, 이규철 다섯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초창기 한국 개념미술의 단면을 제시한 이유이다. 기획자는 사진이 지닌 기록의 차원을 넘어 “개념과 행위, 유희, 조형실험이 만나는 새로운 예술 언어로 확장”되는 양상에 주목한 것이다. 이승택의 ‘사유화’와 포토몽타주, 김구림의 포토세리그래피, 김차섭의 풍경 사진을 이용한 석판화, 곽덕준의 자화상 사진과 대중매체 이미지의 결합, 이규철의 개념적 사진매체 실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여운, 〈작품 74〉, 1974, 창문 틀에 신문, 사진, 콜라주, 73×115×2.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 전시실에 이르면 관객들은 본격적인 한국 개념미술의 양상을 접한다. 그 속에서 사진이 과연 어떤 기능과 역할을 했는가 하는 점을 70-8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을 통해 그 다양한 변용 양상을 살펴보게 된다. 특히 ‘S.T.’그룹의 김용철, 성능경, 이건용, 장화진 등과 70년대 당시 한국실험미술의 메카인 《대구현대미술제》의 창설 주역인 박현기와 이강소의 전위미술과 그 기록으로서의 사진 작업, 판화 실험에 주력한 송번수와 한운성의 작업을 통해 사진의 다양한 실험과 활용양상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는 이건용과 성능경으로 대변되는, 행위미술의 일종인 이벤트의 기록 매체로서 사진의 기능이 돋보인다. 경제적인 이유에서 무비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에 기록은 순전히 카메라의 몫이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사물과 언어의 병치를 사진으로 풀어낸 최병소의 작업도 이채를 띠었다.
3 전시실은 70년대 극사실 회화에 주력한 지석철과 회화에 오브제 실험을 한 한만영,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교준과 서울대 출신의 청년그룹 ‘서울'80’의 문범, 이인현, 김춘수, 서용선, 안규철 등이 행한 사물과 신체, 사진 매체와 감각 표현에 대한 다양한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4 전시실은 ‘현실과 발언’(1979-1990)으로 대변되는 민중미술 작가 김건희, 김명희, 김용태, 김인순, 김정헌, 민정기, 박불똥, 손장섭, 신학철, 안창홍, 여운, 정동석 등과 김용익, 안상수 등의 작업을 배치, 순수지향의 모더니즘과는 결이 다른 현실비판적인 시각의 민중미술의 단면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었다. 70-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을 사진을 통해 보여준 의미있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