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수, 〈숲〉, 1974, 캔버스에 유채, 50×61cm ⓒ 백영수미술문화재단
미술관에 들어설 때, 가끔은 작품보다 공간이 먼저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나에게 백영수미술관이 그러했다. 도심의 소음이 차단된 호젓한 골목 안, 단정하게 자리 잡은 그곳은 미술관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소중한 초대장 같았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특유의 하얀 빛을 담은 인물들이 나를 반긴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와 그들을 감싸는 부드러운 색채들. 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쌓였던 소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단순히 ‘예쁘다’는 감상을 넘어, 백영수(1922-2018)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무해한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자가 느끼는 특권 같은 것이었다.
미술관이 위치한 의정부 호원동은 지형적으로 수락산의 줄기가 뻗어 내려오는 곳이다. 거대한 바위산의 강인함과 그 아래 숲의 포용력이 공존하는 이 지역은 백영수 예술의 뿌리가 된 공간이다. 과거 의정부는 군사도시라는 거친 이미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제4차 법정 문화도시’로서 지역의 문화 자산을 아카이빙하고 이를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부드러운 변화를 겪고 있다. 의정부시는 이 일환으로 백영수미술관을 향후 시립미술관 승격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 보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백영수가 의정부에 처음 뿌리를 내린 것은 1973년의 일이다. 1947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의 막내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서 있던 그가 복잡한 서울을 떠나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가로서 온전히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숲’이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당시 야산이었던 곳에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벽돌을 쌓아 집을 지었다. 이 시기 탄생한 〈숲〉(1974)은 의정부의 자연과 교감하며 얻은 평온함의 결정체다. 작품 속 나무들은 화가의 붓끝에서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른 초록의 구름처럼 포근한 덩어리로 표현되어 있다. 마치 수락산의 흙과 이끼를 옮겨 놓은 듯 투박하면서도 따스한 색채는 숲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비록 1977년 파리로 떠나며 이 공간과 30여 년의 긴 이별이 시작되었지만, 그는 타국에서도 이 포근한 의정부의 숲을 그리워했다.

백영수미술관 아틀리에
아직 백영수미술관을 방문하지 않은 이가 있다면 이곳으로의 걸음을 권하고 싶다. 백영수미술관은 시간이 지나 그의 캔버스 속에 등장하는 집의 도상이 물리적 공간으로 구현된 결과물로, ‘건축적 조각’이다. 또한, 이곳은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곳을 넘어 작가가 걸어간 삶의 궤적을 뒤따라가며 내 것처럼 느껴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한편에는 작가가 생전에 사용하던 아틀리에와 채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낡은 이젤, 때 묻은 팔레트, 그리고 고요한 채플의 공기는 작가가 붓을 내려놓고 고뇌하던 그 순간의 온도를 느끼게 한다. 전시장이라는 틀 안에 머무는 예술이 아니라, 화가가 숨 쉬었던 흔적을 따라 일상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에 서면 그의 하얀 빛깔을 품은 인물들이 왜 그토록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아틀리에에 놓여있는 〈별〉(2011)은 그가 아내인 김명애 관장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밤하늘을 보기 좋아하던 아내를 위해 화면 가득 별이 수놓아진 그림을 선물한 것이다. 파리 시절, 남편이 오직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힘썼던 아내는 그에게 있어 예술적 뮤즈이자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다. 작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삭혀진” 두 색이 만들어내는 화면은 순수한 예술적 유희의 결과로서 일상의 분주함에 쫓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청색을 좋아하고 하얀 빛깔을 좋아하고,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사는데 달라져요. … 삭혀서 빛깔을 어떻게 색으로 만드느냐하는데, 우리 화가들을 그런 걸 많이 매력을 가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