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물 사이에서 떠도는 작품제목



사과를 재현한 그림에 ‘저건 사과야’라는, 즉 무엇을 그렸는가가 의미를 대체하며 제목을 고민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재현의 시대를 지나자 작품 제목이나 전시 부제를 정하기 어려워졌다. 그럴싸한 제목을 짓기 위해 관련 자료를 뒤져도 작품마다 빼곡하게 쌓인 사연을 몇 단어로 축약하는 일은 해당 작품을 시작하고 끝낸 당사자도 쉽지 않다.


작품과 제목은 수렴을 지향할 뿐, 완전한 일치는 힘들다. 글과 그림의 일치가 이루어진다면 굳이 힘들게 작업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부제와 제목만 멋진 작품에서 말과 사물 간의 거리는 작품 해석을 더 풍부하게 하는 대신 기만이나 과장으로 다가온다. 작가 스스로도 소화하지 못한 난해한 제목은 심술맞은 수문장처럼 작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선다. 반면 찰떡같은 제목은 작품의 내포적 다양성과 외연을 확장한다. 예술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용과 형식의 관계이기에, 제목짓기는 부차적이 아닌 내재적 문제다. 그것은 작품을 문자로 반복하는 것이지만, 반복 속에 차이가 깃들기 마련이다. 작품이라는 비선형적 대상을 선형적 논리로 꿰어내는 일은 작품제목·전시부제·작가노트 궁극적으로는 그에 대한 기록이나 비평까지 관통하는 공통적인 과제다. 제목이 〈무제〉여도 그 결정의 이유마저 피해 갈 수는 없다. 




좌) 염성순, 〈상가수의 소리〉, 2006, 캔버스에 아크릴, 53×45.5cm. 서정주의 시

우) 염성순, 〈꽃이 향기롭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캔버스에 아크릴, 116.5×91cm. 이상의 시


염성순은 서정주와 이상의 시로부터 온 작품 제목을 통해 시와 회화의 관계를 표현했다. 

문학에 관심이 많아 김기택, 장정일 등의 문학가와 협업해 출판을 하기도 했다.



한편 계속 같은 제목을 쓰는 경우도 있다. 시기마다 뉘앙스는 달라질지언정 작품의 기본적 내용은 같다고 보는 것이다. 내용이 중요하지 이름이 중요한가에 대한 문제는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화로 채워진 철학사의 주요 대목이다. 연역/귀납, 선험/경험 등의 대조적 논리처럼, 작업의 시작과 끝에 대한 방점도 다르다. 전자는 일관성 있는 시리즈 작업, 후자는 개별적 특수성을 낳는다. 현대미술이 개념화되면서 강화된 이론적 국면 또한 문장으로 구현되는 제목을 강조한다. 현실과 작품은 실재와 이름의 관계를 가지며, 작품과 이론(미학·미술사·비평)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일부 현대미술 작품은 의미 자체를 부정하기도 하고, 무의미의 의미를 주장한다. 글자로 이루어진 제목은 작품이라는 뭉쳐져 있는 선에 비해 풀어져 있으며, 난해해 보이는 작품에 의미의 방향타가 되어준다. 성공적인 명명으로 구구절절 작품 내용에 대해 부연할 필요가 줄어든다. 일상에서도 명명의 중요성은 크다. 패션이나 화장품 분야에서 자주 발견되는 외국어 상품명은 제품의 ‘고급스런’아우라를 지켜준다는 기대가 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대학 관계자들이 미술 관련학과 이름을 어떡하든 변조하려는 집요한 시도 또한 이름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정보화 시대에 유저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항목 중에서 키워드나 제목의 중요성은 크다. 이미 성큼 다가온 AI 시대에 적절한 프롬프트(prompt)는 필요한 정보를 찾는 최적의 경로를 제공한다. 제목은 작품으로 들어가는 주요 입구이다. 철학이나 문학과 관련된 작품에서 문장의 역할은 더욱 크다. 미술은 문학의 단순한 삽화로 머무르지 않는다. 화가는 문학적 단어와 별개로 전적으로 자기 상상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현대철학의 영향에 의해 작품도 텍스트라는 견해가 있지만, 작품은 문자가 아니다. 이론도 아니다. 책상머리에서 고안되는 ‘개념미술’이라는 것도 있지만, 작업은 여전히 물질과 몸이 부딪히는 원초적 영역에 속한다. 물질과 몸은 코드와 달리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만인과 만인이 경쟁하는 공적 무대와는 거리를 두고 자기 주도형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한 만족감이 있다. 예술적 작업은 그러한 일 중 가장 밀도와 강도가 높다. 작업 과정 또한 중요해서 어떤 제목을 염두에 두었는데 작업 후에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해당 작업이 작품을 변화시킨 경우이다. 이러한 변화가 쌓여 작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는 작업이 주는 가장 큰 열매이다. 그 경우, 작가로부터 시작된 작품에 수많은 관객의 상상력이 더해지는 열린 예술 작품으로 고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