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동시대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전시를 본 적이 있다. 피카소가 당대의 작가들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뉴욕에서 보았던 이 전시의 의도는 피카소가 당대 혹은 후대의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주기보다는 그가 그 주변의 작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피카소의 작품도 많았지만 함께 전시된 당대의 다른 작가 작품도 퍽 많았다. 음악가인 나에게도 익숙한 이름들, 세잔, 루소, 마티스, 미로, 브라크 … 등.
기획의 의도가 그렇기도 하지만, 전시실마다 걸린 피카소의 그림은 각각 “그가 얼마나 브라크(또는 마티스 또 혹은 다른 누구)로부터 영향받았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만큼 닮은 그림이 많았다. 그 많은 작가로부터 그렇게 영향받은 결과가 피카소였던 셈이다.
전시를 보고 난 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토록 다른 작가와 닮은 그림을 그린 피카소를 두고 우리는 어떻게 ‘저 작품은 피카소의 것이다’라고 알아볼 수 있는가?” “저 다양한 스타일을 관통하는 ‘피카소’의 고유한 모습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이 있기는 있는가?” “한 작가의 스타일은 그가 의도적으로 추구해서 이루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남긴 족적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되는가?”

『Cézanne to Picasso: Ambroise Vollard, Patron of the Avant-Garde』 2006.9.14-2027.1.7.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작곡가로서 나는 작곡을 위촉받는다. 개인 연주자,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악단, 교회나 학교 같은 기관 등이 주로 위촉한다. 위촉받다 보면 그 위촉자의 요구나 기호, 능력등을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 위촉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양하게 위촉받다 보면 여러가지 음악양식을 사용하게 된다. 때로 현대적인 수법이 필요한가 하면 고전적으로 되어야 할 때도 있고 우리 전통음악의 어법을 사용하거나 아주 쉬운 음악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때도 있다. 물론 위촉자의 요구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 나의 언어, 나의 기호, 나의 습관도 작용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작품들의 스타일들은 서로 들쭉날쭉하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나에게 작품을 위촉하여 수난곡을 작곡한 적이 있다. 그중 한 곡을 유명한 라틴어 가사 「Ave Verum Corpus(성체찬미가)」에 붙였다. 우리 교회 성가대가 해 낼 수 있는 음악수준을 알고 있는 나는, 회중들의 음악감상 눈높이를 짐작하고 있는 나는 이 점을 고려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곡을 만들었다. 마치고 보니 그 곡은 거의 찬송가 수준의 개성 없는 곡이었다. 이건용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민 끝에 그 곡을 빼고 다시 한 곡을 썼다. 약간의 한국적 리듬을 넣고, 대위법적 진행을 만들고 내가 다른 곡에서 자주 사용하던 언어를 사용하였다.
쓰고 난 후에 여러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 “이건용의 작가적 개성이란 약간의 한국적 리듬과 대위법적 진행 등에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첫 번째 곡에 드러나지 않는 이건용의 개성이 두 번째 곡에는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두 개의 다른 「Ave Verum Corpus」에서 모두 나타나는 이건용은 없는가?”, “내가 의도하지 않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심층의 이건용 모습은 없는가?”
아직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희망하는 바는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적인 스타일이 표면적으로는 들쭉날쭉한 나의 작품들을 관통하며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 자신도 모르고 있는, 모르면서 모색하고 있는, 모색하면서 이리저리 족적을 남기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닐지 생각한다.
피카소와 동시대의 작가들을 다룬 기획전에서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던 이유, 좀 더 짚어 말하면 힘을 얻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건용(1947- )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악대학 작곡과 졸업. 효성여대 및 서울대 음악대학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및 총장 역임. 현재 ARKO창작음악제 추진단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