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으로의 여정

 

이선영(미술평론가)

 


다색의 색의 모래를 뿌려 정교하게 제작되는 만다라는 나중에 다시 흩어 트리는 과정으로 완성된다. 마치 공들여 쌓은 모래성 무너지는 듯한 모습은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준다. 유승옥의 만다라 시리즈 또한 실제의 만다라 제작처럼 에너지가 집적된 후 풀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그의 작품은 만다라라는 전통적인 도상의 재현이 아니라 그 과정의 재연이다. 물감으로 제작되는 작품은 실제의 만다라처럼 허물어지지는 않지만, 빈 캔버스를 마주하고 매번 다시 시작되는 과정은 동일하다. 화가는 그리고 또 그려도 계속 다시 시작하는 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작업은 우선 설레임으로 시작된다. 매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유는 시지푸스의 운명적 고통일 수도 있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임일 수도 있다. 유승옥의 작품에도 만다라를 이루는 모래같은 무기질적 요소는 있다. 그는 주로 유화로 작업하지만, 유화보다 빨리 말라서 애용하는 아크릴 물감은 캔버스에서 약간 뜨는 느낌이 있다. 그러한 단점을 가라앉히려고 물감에 화산재 등을 섞어서 혼합재료로 작업한다. 



만다라   Mixed media on Canvas  116.7x80.9cm  2026(모든 사진 출전은 전북도립미술관에 있음)


그는 예전 작품에서도 돌가루나 기왓장 가루 등을 섞어서 작업하기도 했다. 이미지가 부재한 추상에서 질감이나 색감은 작품의 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긴장이 쌓였다가 풀어지는 과정은 그의 작품을 춤사위 같이 역동적으로 만든다. 만다라가 주로 제작되는 지역에서 세상을 향해 바람결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려한 천 조각도 떠올린다. 이전에 유승옥이 축제를 주제로 작업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 [만다라]는 노랑 바탕 면에 파랑 빨강 보라 등 화려한 색이 떠서 춤추는 모습이 축제적이다. 또다른 [만다라]에서 화면 하단으로부터 튀어 오른 듯한 색의 선들이 춤을 춘다. 화면 하단은 블루톤으로 통일되어 있고 가로선이 주도적이고 상단의 색 선들은 여러 각도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위아래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또 하나의 주요 작업 이력에는 달항아리도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달항아리 실루엣의 작품이 출품됐다. 완전한 비례가 아닌 비스듬한 실루엣의 폐곡선은 달처럼 노란빛으로 가득하다. 


원이나 정사각형은 만다라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대표적 도상이다. A. 야페는 [미술과 상징]에서 티벳 승려가 그리는 만다라에서의 원은 도시 계획의 기본이 되는 원이나 초기 천문학자가 품고 있었던 우주 개념으로서의 원이라고 하며, 이러한 모든 원의 상징은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궁극적인 완전성을 표상한다고 말한다. ‘인도와 극동아시아의 시각예술에서 4방위선 또는 8방위선이 그어진 원은 종교적인 명상을 상징하는 기본형이다. 그것은 실존의 본질로서 완전성’(야페)을 나타낸다. 하지만 유승옥의 작품에서 삼각형을 비롯해서 만다라를 이루는 안정적 도형들은 조금씩 변형된다. 이러한 불안정은 안정으로의 움직임을 낳는다. 그에게 만다라는 자명한 시작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과제이다. 만다라 자체가 중심을 향한 여정으로, 그 여정에는 지름길이 없고 수많은 우회로로 이어진 미로로 간주된다. 중심은 텅 비어 있을 수도 있다. 그 경우에 구도의 과정만이 남는다. 어떤 일이든 수단과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술은 양자를 통일시킬 수 있는 몇안되는 분야이다. 



만다라   Mixed media on Canvas  116.7x80.9cm  2026-3



만다라   Mixed media on Canvas  116.7x80.9cm  2026-4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인 거듭되는 시작은 단순한 되돌이표나 무효, 낭비나 실패가 아닌 그 자체로 향유 할 만한 과정이다. 작가란 이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이다. 축제는 일상의 질서를 일시적으로 무너뜨리는 과도기의 시공을 의미하며, 달항아리같은 정교한 도자기 작업에는 수많은 깨뜨림의 과정이 전제된다. 도공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망작을 부수어 버리곤 한다. 적어도 달항아리의 경우에 무엇이 완성작인지 작가만이 판단하는 미묘한 기준이 있다. 유승옥의 추상화 또한 마찬가지다. 만다라 자체가 추상적이다. 만다라가 해체를 전제로 하는 정교한 구축적인 작업이라고 할 때, 서로 반대되는 과정 한 화면에 고착하려는 노력이 그만의 만다라이다. 굵은 가로선을 죽 쌓은 화면과 휘몰아치는 선, 난색과 한색, 모노톤과 다색의 대비, 때로는 그려진 것과 지워진 것 등의 대조를 통해 화면은 이항적 요소가 길항 작용을 하는 장(場)이 된다. 여러 대조항은 안정된 정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추동력이자 잠재력이다. 


그는 추상의 두 계열인 ‘차가운 추상’과 ‘뜨거운 추상’을 공존시키려 한다고 말한다. 이원론은 서로를 지탱한다. 그만큼 안정적이지만 그 덫도 만만치 않다. 현대철학은 이항 대립을 거부하며, 이는 주체/객체의 이원항에 의거한 재현주의를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질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에서 플라톤주의로부터 비롯된 이원론을 반대하면서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건립되고 파산하는 모델, 끊임없이 확장되고 파괴되고 재건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이원론을 원용한다면 그것은 다른 이원론을 거부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모든 이원론을 통과함으로서 다원론=일원론이라는 마법적인 공식에 도달해야 한다...’(들뢰즈) 가령 유승옥의 작품을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태극과 비교하자면 그의 태극은 풀어지고 있다. 그것은 만다라의 마지막 과정처럼 해체된다.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 삼각형 조형 언어가 등장하는 작품은 ‘불안정, 변화’를, 동그라미의 경우는 ‘원만함’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서 형태가 강조되는 작품군은 차가운 추상, 색이 강조되는 작품군은 뜨거운 추상인데. 대개 양자가 병행된다. 



만다라   Mixed media on Canvas  116.7x90.9cm  2026



만다라 Mixed media on Canvas 157x197cm, 2025



만다라, oil on canvas, 80.9x116.7cm, 2023년


갑작스러운 전시 일정의 변화에도 전시장을 충만하게 채운 최근작(90% 이상)은 ‘에스키스 없이 즉흥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그의 작품은 결과에 상관없이 ‘뜨거운’ 작업 방식을 거친다. 116.7x80.9cm의 같은 크기로 그려진 시리즈 작업은 빛이 가득한 난색 계열과 서늘한 그림자같은 한색 계열이 공존한다. 그 둘이 섞이는 작품도 있다. 두 가지 대조항을 멀리 벌리는 만큼 섞임도 극적이다. 그의 작품에서 ‘차가운 추상’의 기본 요소인 삼각형은 여러 조합으로 나타난다. 광활한 공간 속에 배치된 여러 겹의 산세같은 풍경적인 요소가 있는가 하면, 전통 매듭공예나 동영상의 플레이 버튼 같은 기호적 배열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매듭이나 산세같은 이미지의 경우 삼각형 실루엣 안에 또 삼각형들이 채워져 마치 프랙털 도형같은 느낌도 준다. 전통과 자연이 아닌 스마트 기기에만 몰두하는 이들에게는 하루에도 수없이 동영상을 재생했을 삼각형 버튼이 화면에 가득하다. 작품 [만다라]는 삼각형 단위들을 이어붙여서 수직의 흐름을 만든다. 


푸른 바탕 면은 마치 거품이 이는 물살처럼 형태를 수면 위에 띄운다. 유승옥의 만다라는 도처에 편재한다. 그가 약 3년 전부터 몰입하기 시작한 만다라는 우주에 대한 상징이지만 작가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만다라가 실행되고 향유되는 불교는 신이 아닌 깨달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종교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구성과 해체라는 기본 문법으로 그의 만다라를 만든다. 만다라라는 전시부제나 작품제목이 아니라면 만다라를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은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추상미술과 수행성의 관계를 예시한다. 여러겹으로 칠해진 화면은 그 내부에 시간성이 내재된다. 전시장 1층에 걸린 116.7x80.9cm 크기로 통일된 작품들은 작품 간의 움직임이 있으며, 각각에도 움직임이 내재한다, 동심원 모양으로 선들이 배열된 작품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의 작품은 연속해서 보면 움직임이 나타난다. 하나의 중심이 아닌 지속적인 과정을 관장하는 시간성은 만다라라는 상징적 도상을 끝없는 해석을 요구하는 알레고리로 변화시킨다.   


출전;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