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공론과 상상의 장
이선영(미술평론가)
건축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기념비적인 매개체다. 건축이 현재를 넘어 과거와 미래까지 연결되는 것은 기억과 창조를 통해서다. 지난 2월 6일에 개막하여 두 달간 열린 제19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 귀국전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은 건립 30년을 맞은 한국관을 과거와 미래의 맥락에 놓는, 기록과 상상이 복합된 전시다. 제 1전시실의 실제 자료(한국관 건축 및 전시 사 관련 자료와 이를 비평적으로 편집한 작업)를 중심으로 배치했고, 제2전시실에서는 국내외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되 다양한 분야와 접목시켜 활동해왔던 참여 작가들이 당시 한국관의 조건을 해석하고 확장한다. 1층과 2층은 역사적 공론장으로서의 역할과 베니스에서 열렸던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을 담론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구별됐다. 4명의 작가(김현종, 박희찬, 양예나, 이다미)와 예술감독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 정다영, 김희정, 정성규)이 참여했다.

제1전시실(이하 모든 사진자료는 아르코미술관에 있음)
하나하나 많은 정보량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전시물을 보다가 중간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이 전시의 기조가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건축에 대한 화자(話者) 중 하나에 그곳 고양이를 상상한 것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곳은 한국관이 개방 시간이 지나서 문을 닫을 때도 어둠이 내릴 때도 주변을 자기영역으로 삼는 근처 고양이들의 활동 영역이 된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은 일부이고, 더 긴 시간을 주변의 동식물이 함께한다. 머무는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그들이 그 장소의 주인공이다. 대개 해당 동물의 대학살과 관련된 동물 이름 들어간 행사명을 짓는 지역 축제의 문화 마인드와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 차이다.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이라는 전시 부제에 두꺼비가 화자로 등장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집 모양을 짓는 흙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전래 동요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파빌리온을 집으로 해석했을 때 선택된 은유다.
두꺼비 또한 고양이 만큼이나 지상의 낮은 곳에 서식하는 동물이다. ‘변화와 재생을 상징하는 존재’인 두꺼비는 그곳의 나무들과 함께 자르디니 공원의 생태계가 건축가들에 의해 많이 고려됐음을 말한다. ‘집’이라는 표현 또한 살갑게 다가온다. ‘건설적이다’라는 표현을 낳은 무지막지한 발전주의의 시대를 통과한 풍경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시간은 서사를 담는다. 한국관이 생긴지 30년이 흘렀기에 관련 서사는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발전주의는 발전이라는 유일한 선적 서사만을 중요시한다. 해당 건축가(김석철) 이름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전시장은 비엔날레를 국가 대표 선수 출전 쯤으로 리그화 시키는 관례도 지양한다. 정복자 시선을 가진 오만한 기념비가 아니라, 최대한 투명하고 가볍게 그 장소에 살짝 끼어들고자 했던 의도가 작가 소개의 방식에도 잘 드러난다.

레이어링 아카이브

리빙 아카이브
공론장 성격의 전시장은 한국관의 ‘위용’을 드러낼만한 거대한 이미지도 없었다. 아카이브 형식으로 제시된 자료들 중 자그마한 모형으로 봤을 따름이다. 한마디로 이 전시는 베니스에서 있었던 행사를 한국에 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베니스 현지에서 한국관을 체험한 이들은 또다른 현장, 즉 담론의 현장을 접하는 것이다. 제1 전시장와 2 전시장을 통털어, 각종 전시물들은 주로 읽게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아카이브적인 성격을 띄는 이 전시는 끝날 무렵에 또 한 권의 자료집으로 탄생했다. 전시 자체가 책자를 펼친 것같은 모습이었는데, 공공영역에서의 전시라는 한시적 시간을 거친 후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집약됐다.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책을 세계로 보는 것처럼 빼곡한 자료집이다. 필립 블롬은 [수집]에서 수많은 인생, 시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목소리를 그 안에 담고 있는 책은 그냥 물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이 전시는 자료집이 많이 나와 있다는 점 뿐 아니라, 사실과 픽션을 포함한 많은 전시물은 수집과 창작의 산물인데, 그것들은 페이지의 낱장 같이 보여진 부분이 많았다. ‘세상에 수집품이 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사실,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필림 블롬)은 전시가 한 권의 책으로 집약될 수 있음을 말한다. ‘글쓴다는 것을 존재의 가장 큰 이유’로 간주한 보르헤스에게 ‘책은 하나의 세계이고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책과 세계는 서로를 반영하면서 접고 펼치기를 반복한다. ‘문학의 공간’을 강조했던 문학가 모리스 블랑쇼는 책을 쓰거나 읽는 행위에 대해 ‘유희는 박물관들의 박물관이다. 그 속에서 유희가 한번씩 행해질 때마다 모든 작품들, 예술들, 지식들이 그 무한한 다양성, 변화하는 관계들, 순간적인 통일성 속에서 활기를 띠고 깨어난다. 유희란 살아있는 통일성 속으로 모든 시대의 작품들과 창조들의 집합을 모아들이는 것에 있는 지고한 창조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제2 전시장, 이다미

제2 전시장, 양예나
한국관이라는 작품 이후의 작업들 또한 건축에 대한 담론의 공간을 펼치는 창조적인 장이 되었다. 전시장은 관객이 앉을 만한 장소는 여기저기 마련되어 있고, 인쇄물 뿐 아니라 여러 미디어 기기가 동원됐다. 건축 분야의 큐레이터 및 참여 작가들이라서 그런지, 복잡한 자료를 배열하는 효율적 방식도 눈에 띄었다. 많은 자료가 보여지려면 한정된 부피 안에 면을 늘리는게 필수인데, 두터운 가벽 대신에 투명한 벽을 설치하여 개방감을 높였다. 미로같이 어둡고 폐쇄적인 장소라면 관객은 대강 훑어보고 빨리 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실제로 영상 중심의 어두운 전시장에 관객들이 충분히 작품을 보고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전시장은 전체적으로 밝은 조명 아래 자료용 책자들이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 훌륭한 도서관은 훌륭한 전시장이기도 하며 그 역도 사실이다. 실물 자료의 공간적 배치는 사이버 스페이스의 알고리즘 연쇄와도 다른 뜻밖의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
베니스에서의 전시 자료가 제시되는 제1전시실은 철제 탁자들과 그 위의 자료들, 그것을 볼 수 있는 달을 닮은 조명등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었다. 관심있는 관객에게 관련 책자들을 보게 하기 위한 편의성이 제공된다. 애초의 원본 전시를 재현할 수 없기에 그것이 가능했거나 불가능했던 맥락을 여러 자료를 통해 재구성한다. 〈레이어링 아카이브〉는 여러 기원을 가진 자료들을 통해 선형적 재현이 아닌 겹쳐 읽기를 권한다. 자료들은 통시적이기 보다는 공시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것은 언제가 생성됐던 단편들이며, 또다른 단편들과 함께 서사를 구성한다. 〈리빙 아카이브〉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과거 전시 기록을 열람하는 공간이며, 〈언폴딩 아카이브〉는 여러 기관에서 수집된 자료를 엮은 영상 작업이다. 자르디니 공원에 한국관이 조성된 여러 맥락을 짚는다. 핵심 관계자들의 인터뷰는 한국관 건립의 방향성을 말해주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자료들이 함께 편집되어 흘러간다.

제 2전시장, 박희찬

제 2 전시장, 김현종
제2전시실은 사실과 기록을 출발로 한 창작의 무대다. 스케치와 드로잉, 렌더링, 영상, 오브제들이 동원된 무대는 1층 전시장과 큰 차이 없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그들이 한국관의 출발 조건에 주목한 것은 이를 통해 가지치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세 가지 전제를 갖고 탄생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첫째, 기존 요소(방치된 벽돌건물과 보호수목)를 보존할 것, 둘째, 지면을 훼손하지 않을 것, 셋째, 언제든 철거할 수 있게 지을 것’ 등이 그것이다. 그에 대한 건축적 해답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 등 주변을 최대한 끌어안고 개방되며 가벼운 구조였다. 기존의 것들을 방해물로 생각하고 그것을 싹 밀고 새출발하는 식의 건물에 익숙한 (재)개발공화국의 관점에서는 더 복잡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맥락을 중시하는 현대건축의 흐름과 함께 하는 한국관 자체가 독백이 아닌 대화로 진행된 프로젝트였고, 그에 대한 전시에서도 대화적 상상력을 이어간다.
참여작가 이다미가 〈덮어쓰기, 덮어씌우기〉에서 설정한 화자는 한국관을 지키는 ‘나무’와 이곳을 드나드는 고양이 ‘무카’ 등 비인간적 존재들이다. 인간중심주의적 서사가 빠져들기 쉬운 상투형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이 꼴라주되어 있다, 양예나의 〈파빌리온 아래 삼천만 년〉은 한국관을 선사시대를 포함한 장구한 시간 속에 배치하는 상상적 작업으로, 건축은 생물학과 문화인류학 등의 상상을 품는 넉넉한 장이 된다. 사실적 자료로 제시되었지만 조작된 픽션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들로 출발했을지라도 편집이라는 과정에는 픽션적인 요소가 스며들기 마련인데, 작가는 그 과정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박희찬의 〈나무의 시간〉은 한국관의 중요한 설계 조건인 현지의 나무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자르디니 공원의 숲을 품기 위한 한국관 설계자의 노력은 투명한 구조로 나타났다. 전시장의 이상적인 구조로 각광받는 폐쇄적인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주변의 빛과 공기를 받아들였고, 이는 현장의 전시에도 영향을 주었다.

제2 전시장, 정진호
김현종의 〈새로운 항해〉는 사방으로 트인 전망대이기도 했던 한국관 옥상으로부터 영감받았다. 옥상에서 보이는, 아드리아해를 향해 돛을 펼친듯한 전망은 베니스 현장에서는 규약과 안전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귀국전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던 미완의 프로젝트를 이미지와 텍스트, 모형 등으로 제시한다. 〈큐레토리얼 우화〉는 건축을 전공한 그림책 작가 정진호가 ‘두껍아 두껍아’ 동요 가사와 전시 줄거리를 참고한 시각적 우화다. 다른 전시물과 달리 미술작품처럼 이미지로 완결되어 벽에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그 또한 알레고리여서 읽기의 연속이다. 여기에서 건축은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두꺼비 집과 비유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국관이 일시적인 이벤트 공간을 넘어서 ‘집’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기억과 기록, 공론과 상상의 장이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에서의 전시가 단지 보여지는 것을 넘어서 읽기-쓰기-말하기-듣기라는 다층적인 ‘후일담’을 통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