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정음20.8.11.9〉, 2021, 모직천캔버스에 먹.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학교에서의 모든 공부란 결국 말하기와 글쓰기가 아닌가? 그런데 정작 그에 관한 실질적인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이후 글쓰기에 대한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았고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나 권오운의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을 비롯해 여러 책들을 읽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 책들을 읽고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오덕 일기』1-5권 (2013, 양철북)을 읽었다. 그가 살아낸 시기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 군부독재의 치하였다. 사회 전반이 너무나 가난하고 피폐했으며 모든 것이 부조리하고 절망적이었던 그 시간 속에서 고인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끊임없이 읽고 썼다. 경북 산골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며 치열하게 우리 말과 글을 온전히 구사하는 일에, 가난한 이들의 삶에서 나오는 진솔한 생활언어를 소중히 여기고 한자와 일본어에 의해 물든 우리 글을 되살리는데 헌신한 이오덕의 생애가 40년 동안 써온 일기에 고스란히 박혀있다. 나는 이오덕의 일기에 간간이 등장하는 미술에 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국민학교 선생이라 당연히 미술도 지도했기에 이에 대한 관심이 컸다. “역시 고흐, 밀레 같은 훌륭한 화가가 우리에게는 없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나 밤하늘 그림,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이나 〈저녁 종소리〉 같은 그림을 구해서 벽에 걸어두고 싶다.”(2000.7.18.) 교과서에 실린 것을 베끼는 것, 어른의 그림을 흉내 내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 이오덕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그림, 삶에서 나오는 그림을 가르쳤다. 자신의 글쓰기 교육과 일치한다. 

일기를 읽다 보니 새삼 최근의 미술평론이나 작가들의 작업 노트, 작품 설명 등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우둔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그 글들을 읽기가 힘들다. 미술잡지에 실린 리뷰나 작가론 혹은 도록의 서문 등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상하게 글을 쓴다는 느낌, 그리고 서로가 비슷한 스타일로 글을 만들고 있으며 현학취를 과도하게 풍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고스란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 설명과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평론가들의 글쓰기에 지독하게 오염된 것이다. 모종의 허영심과 겉멋에 빠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글이고 그림이다. 다수 평론은 정작 작품 자체에 대한 내용은 실종된 채 온갖 인문학, 철학의 내용만을 잔뜩 늘어놓고 있다. 작가들의 작가노트도 동일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동시대 인문학이나 철학의 담론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해당 작품을 온전히 설명하고 분석하는데 설득력 있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그 내용 자체만 장황하게 제시되면 황당해진다. 작품 자체를 진실하고 정밀하게 읽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간결하고 쉽게 글을 쓰면 어떨까? 평론가나 작가들은 자신의 삶에서 말과 글을 진솔하게 길어 올리고 잘 추려내서 정직한 글, 편하게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 

이는 물론 나에게도 해당하는 지적이다. “글을 써도 추상적인 이론, 관념적인 글만 나오고, 남에게 들은 말, 책에서 익힌 말투만 나와서, 실속은 없는데 겉으로만 무슨 주의나 사상을 가진 것처럼 보이니…”(이오덕 일기, 1987.8.8.) 말과 글이 망가지는 세상은 안목도 사라지고 허영심이나 장사속만 남는 아주 비천한 사회가 되는 길이다. 이오덕은 일기 곳곳에 이런 글을 푸념처럼 늘어놓았다. “아, 이놈의 세상 빨리 썩고 빨리 망하는 수밖에 아무 일이 없구나 싶었다...모든 게 엉터리요 가짜다. 빨리 망하는 수밖에 없는 나라!”(이오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