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잡지에 게재된 서양명화 스크랩을 시작으로 월간 전시계, 국립현대미술관, 가나아트를 거쳐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하며 한국 미술자료 수집과 정리에 헌신한 개인 김달진의 모습은 감사하게도 미술계와 언론의 관심을 꾸준하게 받아왔다. 미술자료전문가라는 직함을 사용하며 수집한 자료를 기반으로 현상을 기술한 글이 당시 언론에 널리 인용되었고, 아카이브 기반 비평의 가능성으로 연결되며 아카이브 교육과 강의의 기회도 많이 찾아왔다.



2014.1.22,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19차 모임


이는 개인활동이지만 동시에 ‘미술아키비스트’라는 직업군을 대중에게 가시화하는 기회였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온라인 발행하는 『위클리경영』 2009년 6월 18일자에 양지언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가 인터뷰한 「“현실을 개척하며 스스로 자기 몫을 만들라” [CEO에게 듣다] 김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편」에서는 “미술계 파이 커지려면 세분화된 전문영역 인정하는 문화 필요”, “미술분야 직제 세분화가 되면 정말 필요한 직종이 아키비스트”라고 정리되었다.

2010년에는 [커리어넷이 만난 도전하는 한국인] 직업정보시리즈로, 2013년에는 금성출판사 발행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다. 또한 2016년 유민문화재단 중앙일보사가 주관하는 7회 홍진기창조인상 문화예술부문으로 수상하며 한국 근현대미술자료를 수집·정리·연구한 공로가 인정되었다. 2018년에는 (주)더리서치에서 발간하는 한국직업사전에 미술아키비스트 등재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술아키비스트의 직무 개요·수행 직무·정규 교육·숙련기관·직업 강도·자격 면허 등 정보가 함께 게재되었다.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2004년 8월 일본 아트도큐멘테이션연구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일본효고현립미술관에서 열린 제3회 아트도큐멘테이션 연구포럼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한국의 미술·문화재 정보화 현황」을 발표했다. “동아시아에서의 미술 문화제 정보의 네트워크화를 생각한다”를 주제로 열린 국제 심포지엄으로 우리도 이러한 아트도큐멘테이션, 아트 아카이브 모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했고, 이에 공감한 아카이브유관기관 실무자와 연구자가 함께 모였다. 8년 후 2012년 7월 코리아 아트 아카이브소사이어티(가칭) 1차 예비 모임에 강철, 김달진, 박주석, 서진석, 이호신, 장엽, 2차 예비모임에는 김근미, 김은영, 박상애, 신보미, 정지윤이 추가로 합류했다. 이러한 17차 준비모임을 통하여, 2013년 12월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가 창립식을 가졌고, 『아트아카이브에 관한 몇 가지 담론』 자료집을 발간했다. 김금미·정보원·박주석·이호신·서진석·심보미·김은영이 참여하여 외국에서 발표된 예술기록 관련 논문·미술관 정보 관리 관련 논문 7편을 번역했고, 김철효·김달진의 한국사회의 예술기록관리 현상과 실천에 관한 연구 2편으로 구성되었다. 이어 2014년 11월 『문화자원 아카이브를 활용한 경제적 가치창출 모색』, 2015년 12월 『밖으로 나선 아트아카이브』를 발간했다. 또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서울시 후원으로 아트아카이브 교육프로그램 ‘라키비움 프로젝트’를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운영하며 자료집 7권으로 정리했다. 협회 운영의 한계와 후임 부재로 협회증을 종로세무서에 반환하고 2021년 활동을 마무리하였으나 이 당시 활동을 달진닷컴 daljin.com ▷ 지난 칼럼▷ 현장! 아카이브에 공개하고 있다.



『김달진, 한국미술아키비스트』(2024, 벗나래)


2024년 『김달진, 한국미술아키비스트』(김재희 저, 벗나래)가 발간되었다. “새로운 가치창조, 수집에서 공유로”를 부제로 1부는 수집, 2부는 공유로 기록의 공공화에 지향해 온 활동을 담아냈다. 개인이 축적한 자료를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시키고, 연구자와 대중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함으로써 미술 생태계의 기반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노력과 저술과 강연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한국 미술계에서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제도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했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