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잇다
이선영(미술평론가)
2014년 말 데이트 갤러리에서의 김두리 전 [이음, 공간 Joint, Space]은 그가 영감받은 조각보의 영향이 있었다. 모노톤 작품도 출품됐지만, 색색의 전통 천이 조합된 작품은 전통의 재현과 이의 현대적 재연 틈 사이에 존재한다. 그는 당시 ‘나의 작업 이음공간은 천/패브릭으로 한 작업이며 고유의 천 즉, 옛 천과 현대 천을 염색하고 다듬어서 바느질하여 이루어지는 작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산력의 저조로 다른 모든 것 만큼이나 천 또한 귀했던 시대에 자투리를 재활용하는 일은 기능과 유희를 결합한다. 한국의 70년대에 가내 수공업으로 자투리 가죽 조각을 붙이는 광경도 본 기억이 있다. 가죽 조각들이 사각형도 아니라서 여러 색 가죽의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퍼즐 맞추는 일은 고난도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평면은 옷이나 가방 등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기능이 사라진 이전의 대상들은 심미적 대상이 된다.

DooRee,Kim_untitled_86x83cm_Panel on Fabric_2011년

DooRee,Kim_untitled_22.5x28cm_Korean Fabrics on Vintage wood box_2013
김두리의 작품은 기하추상의 문법으로 읽히지만, 면이나 그 면을 채우는 색이 많을 경우 조각보의 느낌이 남아있다. 관객 앞에 걸려있는 사각형 평면은 그자체가 추상적이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감각 세계에서 전문화가 거의 안 되어 있는 유목민은 결코 직사각형 공간을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밭을 의미하는 한자어 ‘전(田)’에 내포되어 있듯이, 사각형은 인류 생산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이자 결과인 분업과 관련되며, 국제양식으로 대변되는 네모로 이루어진 현대도시는 그 극단적인 결과라 할 것이다. 미술 또한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기본적인 문법으로의 환원이 이루어졌다. 김두리의 작품은 분절화된 공간이 단위를 이루지만 그 단위는 신축적이다. 그의 작품 형식은 그림을 평면으로 환원시켰던 모더니즘 보다 유연하다. 하나의 사각형으로의 축소가 아닌 N개의 사각형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열려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열린 예술작품]에서 형식은 유기체 또는 자체의 고유한 삶의 리듬에 따라 형성되었으며 자체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물리적 실체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형식은 사고와 느낌 그리고 소재를 조화롭게 배치하고 작품이 만들어져 나가면서 작품 자체가 요구하고 드러내는 법칙에 따라 이 세 요소를 통일시켜 나가는 구조화된 대상’(에코)이다, 김두리의 작품은 경직된 모더니즘 논리가 아니라, 자기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자율적이면서도 바깥과 소통하는 생명과 비교된다. 2011년(작품제목이 모두 무제이기에 제작년도로 표기한다)의 작품은 질감이나 형태보다는 색감과 배치를 염두에 두며, 여러 개의 방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2013년 작품처럼 많은 면들은 보라색 계열이 통일감을 준다. 조각보로부터 출발했지만 조각보는 아닌 그의 작품은 단색의 천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이어짐은 계속된다.

DooRee,Kim_ Untitled_2014_ 49.6x40.2cmOld Korean Fabrics on Panel

DooRee,Kim_untitled_2018_22.3x23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
그는 ‘사각의 단색, 즉 색상에서는 단색조의 회화성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단색의 천을 종횡으로 가르는 선에서 잇기가 아닌 나누기를 볼 수도 있다. 가령 2014년 작품은 각기 결이 다른 회색의 방이 쟁여져 있고, 2019년 작품은 황토색으로 일괄되고 그 내부를 나눈 선만 두드러진다. 김두리의 작품을 관통하는 이음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면 하나의 면 또한 여럿으로 상상된다. 전체를 파악하기 위한 부분적 분석이 요구되는 것이다. 분석의 틀은 분석 대상이나 상황, 분석자에 따라 다르다. 이어짐은 전통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사회학자 에드워드 쉴즈는 [전통]에서 전통은 공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표현이 숙달되지 못했으며 거의 수사적이거나 추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계층의 문화에서 발견된다고 하면서, 과거에 이루어진 예술적, 문학적, 철학적 작품들은 비록 찬양을 받기는 하나 미래의 창작의 모형으로 간주되지는 못한다고 평가한다.
에드워드 쉴즈에 의하면 재연을 이끄는 모형으로서의 전통은 단일한 것이 아니다. 전통에 대안 응답은 선택적이다. 그는 누가 완전히 현대적인 문화를 창조할 것인가를 물으면서, 옛 건물과 새 건물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시와 비교한다. 여러 시간대의 천을 두루 활용하는 김두리의 작품은 바느질을 통해 한칸한칸을 늘려나가는 자유로운 방식이다. 그것은 일괄적으로 이전의 것을 대체하지 않는다. 하나씩 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에드워드 쉴즈의 말처럼 변화된 전통 또한 전통이 된다. 전통과 대화적 관계를 가지는 작품은 창조 또한 재발견임을 깨닫는다. 예술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창조란 종교적인 관념이다. 현대적 인식의 모델이 되는 과학은 창조라는 개념에 비판적이다, A.L. 바라바시는 [링크]에서 수학의 예를 든다. 그는 ‘수학적 진리는 절대적 진리들의 목록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들을 단지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인용한다.

DooRee,Kim_untitled_2019_17.2x17.2cm_Old 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

DooRee,Kim_untitled_2014_25.5x28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

DooRee,Kim_untitled_23.5x24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_2012년
조각들을 잇던 그 흔적은 남아서 기능과 유희, 의미와 형식, 전통과 현대, 재현과 창조, 공예와 미술 등등의 조화 또는 긴장감을 내장한다. 그의 작품은 만들기(바느질, 염색)와 그리기(칠하기)라는 과정 또한 중첩된다. 본디 나누어질 수 없는 것들이 분업화 체계 속에서 걸러진 만큼 한 조각의 단편에도 전체를 담고자 하는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작가란 작품에서 그 전체를 담아내는 이다. 물론 완전한 실현은 불가능하지만, 경계를 낮추기 위한 지속적인 도전이 거듭되는 시작의 자리에 있는 자가 바로 작가다. 예술은 분업과 분열을 종합과 집합의 과정으로 변환시킨다. 사각형 안의 사각형들을 조합하는 방법은 무한대이며, 여러 형태적 틀을 채우는 색감의 조합은 평면/회화에서 가능한 다양성을 낳는다. 형과 색은 배치라는 문법을 따른다. 그의 작품은 방법을 고정시킴으로서, 색과 면에 있어 차이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계열적인 작품이다.
자체의 문맥을 통해 잇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현대적이다. 문맥은 실제의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했던 것들이 박물관에 안치되면서 생겨났다,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박물관]에서 자연은 예술작품이 수세기 동안 살아왔던 분위기였다고 하면서, 이는 인간과 우주가 관계를 맺는 포괄적인 장소였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박물관은 대상을 관계로 전환한다. 근대의 박물관과 함께 진보라는 개념도 활성화된다. 새로운 작품은 조밀한 관계의 그물망에서 하나의 사건처럼 나타난다. 김두리의 작품은 다른 색감과 형태의 사각형이 등장할 때마다 다른 서사로 읽혀질 수 있는 자체의 문맥을 가진다. 문맥에는 또 다른 문맥이 있다.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예술적 문맥만 중요했지만 말이다. 초기 추상에는 언어와 자연이 공존했지만, 미술사를 특정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단선적 과정으로 읽으려는 일파는 한쪽만 강조한다.

DooRee,Kim_untitled_10.3x14.2cm_Korean Fabrics on Vintage wood box_2020년

DooRee,Kim_untitled_2014_24x24_old 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
조각보만큼이나 기하추상의 어법과 관계되는 김두리의 작품은 추상과의 관련 속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버트 린튼은 [20세기의 미술]에서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등 초기 추상화가들이 빠져 있었던 신지학은 내면적인 인식의 길 위에서 정신의 문제에 접근하였다고 말한다 노버트 린튼에 의하면 이러한 신비 사상의 이면에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깊은 불안, 녹색 세계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추상화가들은 우연히 나타나는 자연의 외관을 초월해야 해야 한다고 느꼈다. 미술을 형태와 색채를 통한 감각의 소통으로 생각하였다. 이것은 미술이 자연의 한계를 초월하고 완전성을 지향하는 고대 미학의 강령이 연장된 것이다.’(노버트 린튼) 꽃 핀 사과나무 등에서 발전한 몬드리안의 작품은 직선과 명확히 한정된 3원색을 기본 요소로 삼았다. 그는 이러한 기본 요소들을 통해 ‘우주적 관계를 정확하게 재구성’함으로서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였다.
안나 모진스키의 [20세기 추상미술의 역사]에 의하면 몬드리안은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처럼 예술이 고차원의 리얼리티, 혹은 자연을 초월하는 진리를 반영하기 원했으며, 그 완벽함을 통해 위대한 깨달음이나 지식에 도달하기를 믿었다. 몬드리안처럼 엄격한 기하추상이 보편적 진리에의 탐구에 방점을 찍는다면, 중심/주변의 위계질서가 없는 계열적인 특성을 가진 추상미술도 존재한다. 계열적이라고 해서 자연이나 진리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정보혁명에 의한 그물망적(Web-based) 시각은 진리를 관념적으로 재현하려는 이전 시대의 위계적인 지식과 달리, 보다 평등한 연결망을 중시한다. A.L. 바라바시의 [링크]는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보르헤스)를 인용하면서 우리의 생물학적 존재, 사회적 세계, 경제, 그리고 종교적 전통들은 상호연관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인터넷이 순전히 인간이 창조해낸것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유기체나 생태계와 보다 가깝다. 고도로 상호연결된 삶의 그물망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배제되어 있지 않으며 문맥을 조금만 바꿔도 이제까지 숨겨져 있던 문을 열수 있다.’(바라바시)

DooRee,Kim_untitled_14.5x29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_2020년

DooRee,Kim_Untitled_2016_74x52cm_Korean Fabrics on panel
김두리의 작품에서 중요한 색은 단독이 아니라 문맥을 통해서 작동한다. 단색으로 이루어진 작품조차 그것을 횡단하는 선들은 다양하지 않은가. 2012-2016년의 작품은 보라색 계열의 색감이 두드러지며 ‘보라’로 단지 이름 붙여질 수 있는 색이 얼마나 많이 전개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색은 형태와 달리 코드화가 힘들기에 온전히 미술의 몫으로 남아있다. 색의 계열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인접색이 끼어들기도 하고 가로/세로 비율을 달리하여 배치의 다양성을 꾀하기도 한다. 바느질로 나뉘어진 색의 영역은 그의 작품 키워드에 포함된 ‘이음’을 전제한다. 사각형은 사면에 인접 사각형을 만들고 그 과정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가위로 천을 자를 때 그것은 이어짐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자르지 않으면 연결할 수 없는 것이다. 각 작품마다 다른 간격, 즉 크고 작은 면의 이어짐은 잇기 그자체를 전면화한다. 무엇과 무엇을 잇는 것이 아니라 이어짐이다.
이어짐을 한정짓는 것은 최초에 설정된 화면이라는 경계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디지털 차원에서 QR 코드처럼 매번 다른 배열을 생성한다. 코드는 어떤 정보를 정확히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전통 조각보가 밥상을 덮는 명확한 기능이 있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김두리의 작품에는 그러한 경계가 만들어내는 공간을 중시하며 그 안에 무엇이 담기는 지는 미지의 것으로 남아있다. 조각보와 비교되곤 하는 몬드리안의 수직/수평과 삼원색은 디자인이나 구축적 공간으로도 확장됐다. 구성이라는 방식도 공유된다. 구성주의의 일파는 구체(concrt)적 차원으로, 미술을 지양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초기 추상의 선구자 중 하나인 몬드리안의 방식은 자연과 정신(신지학)으로부터 차츰차츰 그가 정한 조형언어로 환원되는 과정이었다. 이는 현대미술사의 대표적인 모델이 됐다. 기하추상은 도시적 현실을 구성하는 주요 문법이 됐고, 재즈같은 도시적 리듬과 조응했다.

DooRee,Kim_untitled_15x29.5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_2019년

DooRee,Kim_untitled_18x18.2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_2015년
이후 기하적 추상미술의 전개는 조형언어의 환원이 단조로움이 아닌 확산을 위한 조치임을 보여준다. 기하적 추상이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 등 초창기 선구자들 이후는 보다 엄격하게 전개됐다면, 천을 잘라서 이어붙인 김두리의 방식은 부드러운 기하학이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면과 면을 나누거나 잇는 선은 직선이되 자를 대고 그은듯한 반듯함은 없다. 작품 속 바늘 땀은 점같이 보인다. 점이 모인 선이 되는 것은 기하학과 공유한다. 선과 면이지만 바느질로 그어진 경계는 또다른 영역이다. 몬드리안으로 대변되는 기하추상이 출발점으로 놓았던 자연적 연상을 점차 거부하면서 회화의 지양으로 이어졌다면, 김두리의 작품은 연상적이다. 재현적 대상은 없지만 계절의 변화와 함께 했던 전통예술의 공기감, 색감, 공간감을 보유한다. 특히 명도의 차이는 시공간의 변화를 추상화한다. 가령 2020년의 청/회색 딱 두 개로 이루어진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는 하늘같다. 2019년의 어두운 계열의 작품은 밤이나 겨울이 연상된다.
2014년 꽃무늬가 비치는 천을 활용한 작품은 무늬의 연속된 부분도 있고 단절된 부분도 있지만 마치 창호지나 얇은 베일에 미친 바깥의 식물 그림자 같은 이미지다. 2018년 작품은 비슷한 어두운 계열 색상 안에 박힌 붉은 사각형이 마치 불 켜진 방같다. 남들 휴식하는 시간에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불을 켜야 하는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2013년 작품에서 명도가 높은 큰 방은 열린 창이 연상된다. 그 창으로 빛과 바람이 들어와 눅눅한 실내를 변화시킬 것이다. 건축가가 도면을 그릴 때 여러 공간의 관계를 염두에 두듯이 그의 사각 공간들은 방을 떠올린다. 세포(cell)라는 단어에 방이라는 의미가 있듯이, 칸막이를 치면서 분열하는 방은 자라난다. 그는 ‘나의 작업 이음공간은 공간을 만들어 붙이면 또 다른 공간이 생기고 더 확장되어 나아간다. 공간에 공간을 이어가면 한 색상 또는 다양한 색상이 어우러지면서 또 다른 이음이 이어진다...’고 말한다.

DooRee,Kim_untitled_22.3x23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_2018년

DooRee,Kim_untitled_27.6x21cm_Korean Fabrics on Vintage wood box_2018년

DooRee,Kim_untitled_13.5x13.5cm_Korean Fabrics on Antique wood box_2015년
공간의 이어짐에는 시간성을 전제한다. 작품 재료명에 기재된 ‘앤티크 패브릭’, ‘ 앤티크 우드 박스에 천’ 등 또한 고풍스러운 시간성을 가진다. 그가 요즘 천과 더불어 사용하는 한복 천은 점차 사라지고 있가. 급속한 전통의 고갈은 전통조차 새로움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김두리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인 천 자체가 시간성을 내재한다. 천(들)로 이어지는 시공간에는 서사가 쟁여져 있다. 칸막이는 시공간을 한정한다. 분절화된 시공간은 변화의 조건이자 결과이다. 한편 분절화된 공간은 문자나 말같은 기호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방 하나는 짙은 보라 그다음 방 하나는 연보라 등. 색이 포화된 정도는 방마다 다르다. 방의 크기와 비율도 다르다. 하지만 그것은 세포의 벽처럼 미세한 통과하는 관이 있다. 숨 쉬고 살아있는 존재의 특징은 바깥과 내부, 즉 타자와 연동된 동일성이다. 특정 색으로 포화된 사각형 방은 반복과 차이 속에서 이어진다.
출전; 데이트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