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자리한 유토피아
이선영(미술평론가)
중년이 지나 누구라도 삶의 전사가 되어있을 무렵,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면 그때는 다시 만나고 싶은 시간일 것이다.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상처받고 지친 심신을 갱신하는 근본적인 회귀말이다. 이는 신화의 오랜 방식이었고 개체발생을 통해 개인에게도 나타난다. 신화는 제의를 통해 재연된다. 신화가 부재하거나 변형된 신화를 가진 현대에도 그 잔여물이 무의식에 남아있다. 가족의 건강과 관련돼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나광호는 살아서 지옥을 체험하고 이를 극복하고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난관은 어찌어찌하여 지나갔지만, 구체적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그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방어기제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또 반복될 수 있기에 예방적 행위는 필요하다. 그것은 반복을 통한 트라우마의 치유라는 역설이다. 치명적 사건을 상상적으로 반복함으로서 예방하는 방식이다.

큰방가지똥 watercolor on arches paper 80.5×120.5cm 2024
오늘날 치유라는 주제를 거는 작품이 오히려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한 것은 정신분석학적 역설 어법의 결과인 셈이다. 얼마 전 일은 희미하지만, 어릴 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그가 회귀하고 싶었던 시절은 부모님이 사준 곤충도감, 식물도감 등을 보고 자연에서 확인하며 그리며 놀던 때이다. 그가 도감과 자연을 좋아했지만, 자연과학 계열이 아닌 예술을 전공한 것은 그의 체험이 종합적이고 심미적이었음을 말한다. 도감은 과학적이며 지식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투명한 언어를 지향한다. 미술도 도감적인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했던 시절로 돌아가면서 자연을 다시 접하고 그렸을 때 그의 언어는 회화적이었다. 사진적 과정이 포함된 작품은 사진의 인덱스적 측면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그가 발견한 대상 그자체의 형태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예에 한정된다. 가령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 [큰방가지똥](2024)(watercolor on arches paper)이 그것이다.
이 귀엽고도 웃긴 이름의 식물은 돌연변이 괴물처럼 전투적으로 보이는데, 잎이 날카로운 톱날처럼 생긴 독특한 형태는 있는 그대로 살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자주루드베키아](2023)(silkscreen, acrylic on arches paper) 또한 낯선 형태를 정확히 담아내는 사진의 역할이 크고 여기에 색감이 조절된다. 작가만의 색채 풀(pool)이 담긴 팔렛트의 잔여 물감처럼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필치가 드러나는 표면은 가뜩이나 익명적인 풀을 더 무명화시킨다. 풀, 잡초, 잡풀 등은 여러 종들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단독의 명칭을 가진 존재라 해도 회화적 흐름에 함께 뒤섞인다. 사진으로 찍으면 바로 무슨 종인지 바로 나오는 앱이 있는 시대에 화가가 하나하나 정확히 재현하는 것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의 작업은 도감이든 풀이든 끝없이 열심히 그리려는 행위에 대한 알리바이는 아니었을지.

자주루드베키아 silkscreen, acrylic on arches paper 91x116.7cm 2023

미국자리공, 소리쟁이, 양미역취, 주걱개망초 oil on canvas 227.3x181.8cm 2024
나광호는 풀이름 하나하나를 작품 제목에 새겨 호명하며, 이 무명의 존재를 기념비화 한다. 특정 종이 호명된 경우부터 [미국자리공, 소리쟁이, 양미역취, 주걱개망초](2024) 처럼 여러 종이 호명된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 한자리에 여러 종의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한 화면에 오롯이 담아냄으로서 종 다양성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의 징표임을 말한다. 작물로 보이는 [브로콜리, 상추, 바질, 냉이](2023) 또한 생산력과 무관하게 즐기며 식물을 키우는 아마추어 농사꾼의 열성이 느껴진다. 모노톤으로 표현된 [밭](2022)의 경우 인간에게 필요한 단일 식물이 자라는 밭도 풀밭처럼 어수선하기는 마차가지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곳에서 거주하며 작업한 그는 각 지역별로 도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에 관련된 최근 전시는 [강원도감](2023, oci 미술관), [강원도감-별아래 피어난 시간의 단면](2024, 금호미술관)의 예가 있다. 이 시리즈는 새로운 식물과 지역이 추가되는 만큼 계속될 수 있는 열린 프로젝트다.
대지와 밀착한 시점으로 포착된 작품 [질경이, 씀바귀, 쇠비름, 왕고들빼기](2023) 처럼 지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뿌리내린 그것들을 작가는 경이롭게 바라본다. 그러한 자세는 사실주의도 낳을 법하다. 창조된, 또는 생겨난 있는 그대로 한치도 틀림없는 대상 그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나광호는 미술을 자신이 발견한 진기한 무엇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은 풀더미의 물성을 물감의 물성과 중첩시킨다. 도감을 거론하는 것과 달리, 명확한 경계가 없어 다소간 복잡하다. 빈틈이 없는 자연의 속성을 살려 존재와 하나가 된 붓질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는 묘사하려 애쓰지 않으며 심지어 프린트 되듯 전면을 동일하게 그려나간다. 대상과 배경 사이의 우선 순위 없이 캔버스에 층층이 쌓이는 물감은 그 밀도감이 팔렛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질이 에너지라는 물리학적 법칙을 적용한다면 정글같이 얽힌 풀더미는 그자체가 에너지의 산실이다.

브로콜리, 냉이, 바질, 상추 silkscreen, acrylic on arches paper 90x129cm 2023

밭 woodcut, ink on Korean paper 110x360cm 2022 ⓒ안산문화재단
햇빛을 가득 받는 풀들은 잡초라고 없지는 않을 엽록체라는 생체 공장을 활기차게 돌린다. 생태계의 기저에 존재하면서 그들이 생산하는 에너지는 지구 생태계를 지탱한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면서 문외한도 알아볼 만한 풀은 맨드라미다. 그는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맨드라미도 여러 형식으로 표현했다. 2025년 유화로 그린, 길게 줄기를 내고 큰 꽃을 달고 있는 맨드라미는 안정감이 없다. 2024년 유화는 화면 가득히 잡힌 맨드라미가 무질서해 보인다. 판화와 사진으로 표현된 2023-2024년 작품은 사진적 정확성과 목판화 색의 결합되어 맨드라미의 실체적 이미지가 부각된다. [맨드라미](2023)(silkscreen, acrylic on arches paper)는 주름진 꽃의 거대한 형태가 뇌를 닮았고, [맨드라미](2024)(cyanotype on arches paper)는 낯선 행성의 표면같이 보인다. 그의 작품 목록 중 나무숲을 그린 것을 제외하면 풀 중에 규모가 큰 맨드라미는 붉은 꽃 부분이 동물적인 느낌을 준다.
맨드라미 꽃은 피를 머금은 고깃덩어리처럼, 또는 가늘고 긴 관을 역류하여 분출하는 붉은 체액처럼 화면 여기저기를 붉게 물들인다. 그는 유화로 그린 [맨드라미](2025, 2024)에서 그러한 꽃봉오리 부분을 강조한다. 붉은 꽃과 대조색인 녹색은 붉은색을 더 활기차게 한다. 붉은색도 녹색에게 그렇게 한다. 색은 단독이 아니라 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거칠거칠한 질감이 두드러진 그의 작품이 추상은 아니다.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아도 일단 그것은 일종의 본(本)으로 존재해야 했다. 그러한 방식은 미술사에 등장하는 대가들과 대화적 방식으로 작업했던 이전 작업과도 관련된다. 참고 대상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재현이 아닌 재연의 과정을 지탱해주는 무의식적 실재다. 전적인 무(無)로부터 ‘창조’한다는 관념은 예술이 종교의 어떤 측면을 계승했음을 말할 따름이다. 나광호의 최근 작품은 유화, 사진+목판, 사진+실크스크린 등의 복합적인 형식을 통해 그가 최초에 미술을 하게끔 한 원초적인 세계 속 식물을 표현한다.

천인국 woodcut, ink on arches paper 90x106cm 2023

질경이, 씀바귀, 쇠비름, 왕고들빼기 woodcut, ink on arches paper 90x129cm 2023
한 대상도 여러 가지 형식으로 표현하면서 그들이 가진 작은 매력도 놓치지 않으려 촘촘하게 접근한다. [부추 씨앗](2024)(oil on canvas)의 경우 화면 가득히 잡힌 식물은 줄기와 가지의 구분이 명확치 않고 서로 얽힌 선으로 회화성이 극대화된다. 인간이 소인으로 변한다면 정글같은 그곳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부추씨앗](2023)(woodcut, ink on Korean paper)의 경우 사진의 인덱스적 특징과 만드는 기술이 결합되어 그가 주목한 한 식물의 면면이 보다 확실하다. 작품 [접시꽃](2023), [백일홍](2022)처럼 판화와 사진의 결합은 정확한 형태와 선명한 색감의 조합이 두드러진다. [장미], [만수국], [엉겅퀴](2023)(cyanotype on arches paper)는 수집물처럼 일정 크기의 평면 안에 재현되어 있다. 이 복합 형식의 작품은 세계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사진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그의 작품 목록은 야생의 숲과 밭을 가리지 않는다. 산과 숲은 풀과 나무의 거처로, 보다 거시적이다.
작품 [산방산](2025)에서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 또한 부드러운 식물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주름이 잡혀있다. 모세혈관처럼 뻗은 나무의 선적 형태를 자세히 드러낸 [구만리숲], [야산](2025), [제주 팽나무](2024), [감나무](2021)(woodcut, ink on Korean paper) 등 모노톤 작품은 자연에 내재한 질감이 풍부하게 드러낸다. 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난 개념이 ‘풀 더미 유토피아 (Full Dummy Utopia)’이다. 그것은 2025년 충남 창작스튜디오에서의 개인전 제목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큰 일을 겪고 난 그는 ‘별일 없는 하루하루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게 됐다. 잡초는 발에 차이고 밟히는 보잘것 없고 쓸모없는 것이라 치부되지만, 그는 그 주변성과 생명력을 사랑한다. 다양한 명명 또한 어릴 적 놀이와 학습이 구별되지 않았던 추억을 떠올린다. 동음이의어의 유희가 적용된 ‘풀 더미 유토피아’는 ‘아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건강 문제로 아내와 아이 가족 모두를 잃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나를 지배했을 때’, 그 지옥같은 현실의 반대급부인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 시작됐다.

맨드라미 silkscreen, acrylic on arches paper 91x116.7cm 2023
그것은 먼 미래가 아닌 유년 시절, 즉 ‘내일로부터 자유로운 경제적 걱정 없이 뛰어놀던’ 시절에 있었다는 생각이다. ‘식물도감을 들고 숲을 거닐며 실제 식물을 마주하며 화가를 꿈꾸던 찬란했던’ 바로 그 순간 말이다. 하지만 그가 연구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그 존재는 불확실하다. 작가는 ‘풀 더미(Full Dummy)는 문자 그대로의 건초 더미(草堆)를 지시하면서, 영어 dummy가 내포하는 모조, 모형, 대역 등의 다의성을 끌어들인다. 이종격투기에서 사람 대신 타격하거나 던지는 훈련 모형, 혹은 폭발 기능이 제거된 모의탄(dummy round)처럼 더미는 현실의 기능이 제거된 가상적 실체를 가리킨다. 풀 더미는 현실의 외양을 유지한 채 그 기능을 유예하며 유토피아를 작동하는 개념적 장치’라고 밝힌다. 신화학자 진 쿠퍼는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 상징사전]에서 낙원이 항상 외부에 대해서 닫힌 공간으로, 또는 바다로 에워싸여 하늘을 향해서만 열린 공간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또한 섬이며 이 세계 밖의 특이한 장소에 놓인다. 유토피아라는 말이 만들어진 책은 원래 [국가의 가장 나은 상태에 관하여, 혹은 새로운 섬 유토피아](1516년)라는 긴 제목을 가진다. ‘유토피아’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에 의하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지구상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 즉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희망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힘과 노동의 양을 축소화시키고 삶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블로흐에 의하면 근대의 자연법 사상도 유토피아 사회상과 가까운 무엇을 설계하려 하였다. 로크에게 자연의 상태란 ‘평화, 선한 의지, 상호간의 도움, 그리고 보호’ 바로 그것이며, ‘자연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하나의 법칙, 즉 이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광호에게 자연은 보편적인 법의 기준이 된다. 도발과 위반으로 가득한 현대미술의 관례와 비교하자면, 그는 법을 인정하고 준수하는 반듯한 작가에 속한다.

맨드라미 oil on canvas 227.3x181.8cm 2024

부추씨앗 oil on canvas 227.3x181.8cm 2024
널리 인정된 미술사의 대가들을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의 반영이라 생각된다. 그에게 자연은 식물적 속성을 가진다는 점이 추가된다.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야생(sauvage)이란 말이 숲을 뜻하는 실바(silva)에서 유래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신화와 자연과학적 사고에 있어서 자연은 식물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에덴동산이 가까워질수록 차갑고 황량한 풍경이 점점 변하면서 청명한 대기에 꽃향기가 진동했으며 신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땅은 푸른 빛을 띄기 시작한다.’(자크 브로스) 리차드 해리스는 [파라다이스]에서 ‘숲이나 초원을 거닐면서 여기저기 있는 꽃이나 가지를 뽑아대고, 되는대로 음식을 씹어먹으면서도 그 사실을 매번 잊어버리기 때문에 수천번을 동일한 흥미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이것이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영원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임을 묘사한 근대 자연법 사상가 루소를 인용한다.
유토피아는 노동의 걱정이 없는 시기이다. 하지만 신화나 종교가 말하듯이 인간은 그 축복받은 시공간으로부터 쫒겨나고, 특별한 노력이나 행운을 통해서만 잠시 복귀할 수 있을 따름이다. 복락원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광호의 경우 자연에서 도감을 끼고 그리던 그림이 그에 해당된다. ‘신화란 인간의 정신구조 속에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관한 하나의 영상’(레비 스트로스)이라면, 그의 작품들은 식물 이미지로 대변되는 이상적인 세계와 관련된다.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이상적인 세계는 ‘어떤 안정된 전체감을 인간에게 제공하며, 슬픔을 축제에 의해 해결할 수 있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영혼의 지배력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황금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광호의 또 다른 소재인 미술사는 실제로 낙원으로 떠났던, 떠나지 못했다면 작품을 통해 낙원을 이루려던 대가들을 기록한다. 가령 고갱은 ‘문명’국 유럽인들에게 ‘낙원의 섬’으로 간주된 ‘원시’ 타히티 섬으로 떠났다.

산방산 woodcut, ink on Korean paper mounted on hanging scroll 185x190.5cm 2025

구만리 숲 oil on canvas 181.8x259cm 2025 충남창작스튜디오 제공 ⓒ이의재
프랑수와즈 카생은 [고갱]에서 ‘아주 먼 옛날의 어떤 야만적인 호사스러움’을 묘사하고 싶어했던 고갱이 새로운 것을 이루려면 근원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밝힌다. 어린 시절에 대한 예술가들의 동경은 그 시기의 ‘알지못함’이 순수의 에너지임을 예시한다. 모든 것이 미리 결정 되어있는 듯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토머스 모어의 소설은 나광호의 작품 형식에도 반영됐다. 그에 의하면 ‘라틴어로 발간된 책의 도판은 흑백 목판화로 제작되었다. 오늘날 컬러 도판은 이후 색채를 입힌 것’이다. 라틴어는 당시에 국제 공용어로서 보편성을 갖추었고 사진이 없던 시절 장인들의 판화는 있음직한 환상을 제공했다. 그가 풀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그 생명력이다. 일정 부분 현실이 된 그의 꿈처럼 평생 작업을 함에 있어서 긍정적 사고방식과 건강한 몸은 필수다. 나광호는 풀처럼 ‘우직한 뚝심을 갖고 천천히 차곡차곡 하루하루 붓질을 쌓아가는 작업이 유토피아가 되길’ 바란다.
출전; 호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