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비나미술관이 어느덧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였다. 《1만 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전(2.6-4.19)은 이를 자축하는 기념전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30년에 걸친 미술관 활동을 사회적으로 보고하는 자리였다.
이 전시는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1만 일의 질문-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다. 이 전시에는 지난 30여 년간 사비나미술관과 함께 한 많은 작가 중에서 강홍구, 권여현, 김나리, 김명숙, 김성룡, 김을, 김재홍, 박찬용, 배찬효, 안경수, 안지산, 안창홍, 양대원, 유근택, 유현미, 이이남, 이흥덕, 정복수, 한진수, 함명수, 홍순명, 황선태, 황인기 등이 참여한 전시이다. 미술관 측은 전시 소개글에서 본 전시의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본 전시는 창작의 이면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조명한다. 지난 10,000일 동안 많은 작가와 동행해 온 목격자로서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져 있던 창작의 고통과 두려움을 전면으로 이끌어내고자 한다.”
전시는 참여 작가들에게 던진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첫째, 작가들이 창작 시 두려움의 순간에 마주한 질문이란? 둘째, 그러한 질문에 대해 작가들은 조형을 통해 어떻게 응답했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과연 어떤 장치가 “두려움을 창조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는가?

안지산, <앵무조개와 함께>, 2024
1부는 창작심리학과 관련된 이같은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거둔 성과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소의 예외는 있지만, 지난 30년에 걸쳐 사비나미술관이 추구해 온 구상 경향에 사회비판적, 인간중심을 내용으로 한 특정한 미술사조와 관련된다. 권여현, 김명숙, 김성룡, 김재홍, 안창홍, 양대원, 이흥덕, 정복수로 대변되는 이 경향은 단색화 중심의 70년대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80년대 들어 탄생,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줄기를 이룬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그렇다고 해서 이 경향이 30년에 걸친 사비나미술관의 성격을 단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아카이브전에도 드러난 것처럼 사비나미술관은 1996년에 사비나갤러리로 출범한 이래 다채로운 경향의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을 꼽자면 물을 주제로 생태, 기후, 환경의 문제를 제기한 《물의 풍경》(1998.7.22-8.30)을 비롯하여 소위 이발소 그림을 다룬 《이발소 명화-대중미술 바로보기》(1999.7.16-8.22, 예술의전당 미술관), 빅데이터와 한글의 관계를 윤동주의 시어를 통해 분석한 《빅데이터가 사랑한 한글-윤동주 시어에서 뽑은 아름다운 나라말 20》(2020.9.26-11.14), 기타 예술과 과학 등등 그 폭이 매우 넓고 주제의 선정에서 섬세하다. 이 주제들 중 상당수가 이명옥 관장이 그동안 펴낸 저서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니, 전시기획과 저술은 이명옥의 같은, 그러나 서로 다른 쌍두마차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다. 그 기간이 무려 30여 년에 이르니 참으로 복된 삶이 아닌가.
2부 ‘1만 일의 동행, 초상화로 말하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섹션은 예술적 동반자이자 동지인 이명옥 관장에게 바치는 헌정전시의 성격이 짙다. 주인공 이명옥에 대한 화가들 각자의 관점과 화풍, 생각, 추억이 다른 만큼 각자 개성을 살려 대상을 묘사한 다양한 화풍의 그림들이 출품되었다. 김나리, 김창겸, 남경민, 박불똥, 박순철, 안창홍, 유근택, 양대원, 이이남, 이세현, 이재삼, 이흥덕, 일라이 리드(Eli REED), 정복수, 추니박 등 개성이 서로 다른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이 전시가 중요한 것은 관계할 때만 좋은 뿐 시간이 지나면 소원해지기 쉬운 작가와 미술관 관계자와의 사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것은 모든 걸 떠나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경직된 우리의 풍토에선 보기 힘든 매우 흥미 있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