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이 난망한 평론가, 2026, ⓒ 김성호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작가들이 다 떠날 줄 알았다. 성후가 전시 서문의 평론 비용을 갑자기 올렸기 때문이다. 2023년, 성후는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서문 평론비를 10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올렸다. 2012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8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인상해서 활동한 시간이 얼추 10년이 넘었을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을 고려하고,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조치이기도 했다. 50만 원 인상은 느닷없고, 20만 원 인상은 그나마 현실적이었다. 사실 그 결정에는 “우리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최소 이 정도는 받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던 동료 평론가와의 약속 아닌 약속도 한몫했다.


그런데 정작 작가들이 용인하지 않았다. 비싸다는 거지. 인상 첫해, 열 명 중 일곱 명은 평론을 청탁하다가 글 값을 듣고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비평 현장도 시장이라면 시장이니, 수요와 공급의 궁합이 안 맞았던 셈이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성후는 돌아가는 작가들을 붙잡지 않았다. 나중에는 글 값이 비교적 싼 후배 평론가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으니까. 


그러면, 성후와 글 값 인상을 약속했던 동료 평론가는 어떻게 했을까? 뭘 어떻게 해? 작가들이 비싸다고 푸념하면 몰래 깎아주기도 했지. 성후는 그를 보고 배신자라고 농 섞인 말을 하긴 했지만, 전업 평론가인 그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게다가 글 값에 연연하지 않는 다른 평론가들을 생각하면 성후의 고민은 배부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다. 그렇게 착하디착한 마음으로 봉사하듯이 평론을 쓴다면, 결국 후배 평론가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박한 원고료’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하긴, 한 평론가는 지면을 준다는 이유로 원고료를 제대로 주지 않던 잡지사에 결국 글 갖다 바치기를 그만두지 않았던가? 


성후도 그랬다. 30대 초, 모 잡지사의 평론상에 당선되어 평단에 데뷔한 뒤, 이름을 알려야 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잡지사에서 글을 쓸 지면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짜 평론을 무수히 써오지 않았던가? 또래 작가들의 전시 카탈로그 서문 청탁을 받고는 돈을 받는 것이 어색하고 무안해서 도서상품권 몇 장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30대에는 서문비로 많이 받아봐야 50만 원이었고, 40대까지는 80만 원이 최대치였다 100만 원을 받기 시작한 것도 50대였으니 뭐 그렇다. 물론 신문사, 잡지사, 재단, 기관에서 청탁받은 평론문의 원고료는 성후가 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불만이 있어도 정해진 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토를 달았다가는 청탁이 끊길까 두려웠고, 미술계에서 돈 밝히는 평론가로 소문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구는 어떤 작가의 글 한 편을 써서 400만 원을 받았다거나, 모 작가에게서는 1,000만 원을 받았다는 소문은 성후에게는 그저 남의 일일 뿐이었다. 아뿔싸! 갓 데뷔한 신진 평론가가 최근 서문비로 150만 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후는 잠시 흔들렸다. “나도 또 올려야만 하나?” 누구는 신진 작가에게 무료로 글 써 주거나, 누구는 돈 많은 화가에게서 기백만 원의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비평계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논리’가 작동하는가? 공급이 수요에 응대한 결과라 해도, 글 값이 청탁자의 경제력이나 위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적어도 시장 시스템 안에서,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에게 글 값은 공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즈음, 성후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보내온 ‘한국 미술평론 원고료 권고(안)’가 그것이었다! 그 권고안은 “한국 미술평론의 창작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평론문 청탁, 집필, 수정, 게재, 아카이브 이용 등 전 과정에서 공정한 계약 관행을 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작가론, 쟁점 평론, 학술 평론, 전시 서문, 전시 리뷰, 도록 및 기관 출판물 수록 평론문 등에 적용되는 안이었다. 
이제라도 한국 미술평론의 원고료가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 중요한 것은 비평 역시 창작 노동이기에, 정당한 계약과 보상 체계 안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합의를 지금이라도 마련하는 일이리라. 쩝! 

* 이 글은 팩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