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사립 미술 자료 전문 기관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Kimdaljin Art Archives and Museum)은 올해로 개관 18년을 맞았다. 개인의 수집 열정에서 시작해 한국 미술사의 빈틈을 채우는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본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시작은 2001년 설립한 ‘김달진미술연구소’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가나아트 자료실 근무 시절, 미술 자료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실을 목격했다. 나는 2001년 연구소를 개소한 후, 2007년 종로구 통의동 국민대총동문회관 지하의 약 198㎡(60여 평) 공간에 자료실을 마련해 일반에 공개했다. 당시 자료실을 방문한 전문가들은 이곳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박물관 등록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건물 소유 문제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법규를 확인한 결과 건물 소유가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박물관 등록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전경


2008년 등록 당시, 기관 명칭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초기에는 ‘한국미술자료박물관’을 고려했으나, 사립 기관이 국가적 대표성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김달진미술자료관’으로 등록했다. 주목할 점은 ‘미술관’이 아닌 ‘박물관’이라는 명칭을 택한 점이다. 통상 미술관은 완성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을 말한다. 반면 나는 주요 소장품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기록물과 자료였기 때문에 이에 집중하고자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2종 전문 박물관 등록 요건의 핵심인 소장품 60점 이상, 전시 공간 약 82㎡(25평) 이상을 충족하며 자료 전문 박물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물관 운영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공간이었다. 2009년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 인근으로 이전했으나, 청와대 보안 구역 특성상 출입이 불편했다. 2010년에는 ‘예술전용공간 임차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마포구 창전동의 약 495㎡(150평)공간으로 이전했다. 보증금 9억 9,700만 원 중 8억 2,700만 원은 정부 지원금으로, 나머지는 자부담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지원 사업이 한시적이었기에 1회 연장 후 2014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다시 위기를 맞았다. 나는 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문화융성위원회·서울시장을 만나 유휴 공간 활용을 건의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다. 노원구의 옛 서울북부지방법원과 은평구 질병관리본부 부지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결국 2014년, 박물관은 공간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로구 홍지동에 대지 약 251㎡(76평), 건물 면적 약 273㎡(82.6평)의 건물을 매입했다. 건축가 김원의 아이디어와 협조로 리모델링한 이 공간은 박물관의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보관하지 못한 자료 2만 여권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시의 후원으로 ‘라키비움 프로젝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기능을 하나로 합친 복합문화공간을 뜻한다. 박물관은 단순히 자료를 보관하는 곳을 넘어, 이를 연구하고 전시하며 일반인과 공유하는 지식의 창고 역할을 지향한다.

2026년 현재도 박물관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지난 1월에는 싱가포르 국립대와 도쿄대 대학원의 연구자들이 박사 논문 준비를 위해 방문했으며, 5월에는 충북문화재단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지역 미술 자료 활성화를 돕기로 했다. 2019년 한국박물관·미술관우수활동상 출판부문을 수상했고, 나도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박물관·미술관 발전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25년엔 박물관포털 ‘e뮤지엄’ 활용 우수사례상도 받았다. 비록 공간의 한계로 인근에 약 132㎡(40평)의 지하 공간을 추가로 임대하는 등 재원의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한국 미술사의 기초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수집보다 공유로 전환하였지만 서울아트가이드 지면 광고에 의존하는 재원의 한계는 극복이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