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 / 그림을 ‘운명’으로 삼은 화가의 운명 이야기
윤진섭 | 미술평론가
언제나 그렇듯이 이상용은 내게 ‘침묵의 사나이’로 비친다. 과묵해 보이는 그의 개성은 그러나 그 안에 수많은 이야기를 내장하고 있다. 약간 수줍은 듯 보이는 표정과 할 말을 다하지 않고 끝을 흐리는 듯한 특유의 화법은 내게 어떤 여운을 진하게 남긴다. 그것은 뭐랄까, 사물을 봤을 때 시선이 옮겨간 뒤에도 뇌리에 남는 잔상에 가까운 이미지라고나 할까? 혹은 그런 여러 이미지들의 조합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이상용이 만들거나 그린 숱한 작품들은 작가인 그가 봤고 경험했거나 혹은 상상한 세계에 대한 진술이다. 그 폭과 넓이가 대단히 넓고도 깊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놀라는 이유는 단지 잘 정돈된 질서와 작품의 어마어마한 숫자뿐만이 아니라, 만물상을 연상시키는 내용의 다양성에 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내용들인데, 문제는 중년을 훌쩍 넘긴 그가 아직도 어린이 같은 신선한 상상력과 분출하는 창의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상용은 한국 화단의 이단아임에 분명하다.
이단아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내가 한국의 전위작가들에게 자주 붙이는 접두어다. 실로 이상용이 그러하다. 그는 끊임없이 사물을 주워 모으고 조합하는 사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유컨대 <아라비언 나이트>의 주인공인 세헤라자데 왕비와도 같은 존재다. 천 일 동안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지 못하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 처한 이 비운의 왕비처럼, 이상용 또한 늦은 나이임에도 결혼도 마다하고 이야기꾼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얼마 전에 GALLTHE’S에서 가진 이상용의 <운명(FATE)>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이 전시는 주를 이룬 회화와 전시장 한쪽 벽을 차지한 벼루 작품, 그리고 약간의 조각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그 가운데서 시선을 끈 것은 단연 회화작품들이었다.
이상용의 작업은 긴 시간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둉집약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번 출품작들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연판 위에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악보를 연필로 여러 차례에 걸쳐 그린 후 그 위에 다시 여러 기호와 숫자, 무늬, 부호 등등을 빼곡히 채워넣는 특유의 기법이 시선을 끌었다. 특이한 것은 이번 그림들에 화려한 색채의 의상을 걸친 인물상들이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여인이 몸에 걸친 의상이 무수한 새들과 사물의 조합이라는 사실이다. 우선 얼굴부터 심상치 않다. 마치 입체파의 도상처럼 두 개의 얼굴이 머리를 맞대고 겹친 가운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하학적 도형과 새들의 다양한 모습이 이어지다 발치께의 하단부에 이르면, 새들이 분산돼 공간 속으로 흩어지는 모양새를 보인다. 그렇다면 일련의 윤곽선에 의해 형성된 여인의 몸을 이루고 있는 저것은 새들의 무늬가 박힌 옷인가 아니면 실제의 새들이 몸을 감싸고 있는 형국인가? 이 그림을 더욱 기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이 인물상이 두 개의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몸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2개의 가는 팔이 뻗어있는데, 왼쪽의 손 바로 밑에는 공 모양의 이상한 물체가 그려져 있고 반대편 손의 위에는 게를 연상시키는 기이한 물체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세 개의 독립된 손의 결합임을 알 수 있다.
이 의미심장하면서도 기이한 그림의 해석에는 정신분석학, 도상해석학, 게쉬탈트심리학, 기호학 등등 다학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머리가 나뭇가지로 된 유사한 화풍의 인물화에는 까마귀로 짐작되는 검정새가 나온다. 운명 교향곡의 악보를 바탕으로 한 그림에서 등장인물은 양손을 앞으로 벌리고 어디론가 가고 있으며 그 앞에서 검정새가 길을 안내하고 있다. 마치 한 존재의 운명을 인도하듯이.
- 1차 게재: 퍼블릭아트 2026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