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의 '한만영' 발제에 대한 질의문
윤진섭 | 미술평론가
한만영(1946- )의 작품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사를 되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한만영의 회화 내지는 오브제, 설치작업이 지닌 의미의 울림과 진폭이 크기 때문이다.
한만영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1970년대 초‧중반은 개념미술을 필두로 극사실회화, 팝아트, 비디오 아트, 실험영화, 이벤트 등등 다원주의적 경향이 화단에 번져가던 시기였다. 1972년에 국제전 출품작가 선정을 위한 한국미술협회 주최의 《앙데팡당》전이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으며, 이어서 1975년에는 《서울현대미술제》와 《에꼴드서울》의 창립전이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려 화단은 실험과 전위미술의 열기 1) 에 휩싸였다.
한만영이 4각의 프레임 안에 여성의 얼굴 옆모습을 그려 상자를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초현실주의풍의 내용을 담은 작품 <무제>(193.9x130.3cm, 캔버스에 오일, 1972)는 이후 이러한 경향의 작업이 전 화업의 기조가 됨을 암시하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즉, 여기서 발원한 작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념미술과 극사실 기법의 혼합, 박스와 여행, 오브제의 도입 및 설치작업으로의 확대, 동서양‧한국의 고전 명화의 인용, 추상과 구상의 혼융, 알레고리 및 시간성의 도입 등등의 요소들이 첨가되면서 울림과 진폭이 확장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서두에서 “한만영(1946- )의 작품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사를 되돌아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 이유이다.
1970년대의 작업에서 한만영의 작품이 지닌 선구적인 위치는 서양의 고전 명화를 차용한 인용(appropriation)의 사례에서 찾아진다. 1992년에 무역센터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창작과 인용》전 2)의 초대작가이기도 한 그는 모나리자의 얼굴 이미지를 소재로 한 <공간의 기원(Origin of the Space 78-21)을 비롯하여 앵그르, 모딜리아니 등등의 명화 속 이미지의 일부를 차용한 일련의 연작을 발표하였다.
이상의 사항을 염두에 두고 발제자의 논문을 읽었다. 우선 장문의 글을 통해 ‘극사실기법’과 ‘이미지의 차용’에 국한된 기존의 논의들에서 벗어나 “심리적 기제와 창작의 관련성을 고찰해 미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 발제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이를 위해 발제자가 정한 시기는 1990년대를 점유한 ‘입체적 설치작품’과 2000년대의 회화 시리즈이다. 발제자는 이 시기의 창작 성과를 밝히기 위해 작가의 글과 인터뷰에 나타난 ‘내재적 심의(心意)와 사유, 창작에 접근하는 태도’를 살핀 후 그 적용 양태를 살핀다. 그 주안점은 1990년대에 나타난 오브제 도입과 그에 따른 회화적 확장성의 관계와 2000년대에 나타난 변화적 양상,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작가적 사유의 배경을 이루는 동아시아 예술의 역사성 측면에서 살피고 “장르와 형식을 초월한 ‘초형사(超形似)’적 관점에서 만년의 작가 세계관을 살펴보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발제자는 이러한 관점들을 논증하기 위해 이어지는 글에서 오브제와 박스, 여행, 우연, 무작위성, 유희성, 시간성, 날개, 돈황석굴, 고분벽화(이상 1990년대), 은일(隱逸)적 상징성과 초형사(超形似)의 유희적 세계관(이상 2000년대-근작)의 개념과 그 적용을 살핀다. 과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특히 1996년 <현대문학>에 실린 작가 수상을 도가와 유가의 선비적 은일 사상과 결부시킨 후자는 기존의 연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과 논문의 도입부에 밝힌 ‘초이상외(超以象外)’의 개념은 얼핏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란다.
1차 게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주최 세미나 질의문, 2025
1) 이 시기 한국 전위 및 실험미술을 주도한 그룹은 ‘AG’와 ‘ST’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2023.5.26.-7.16) 도록을 참고할 것.
2) 필자 기획의 전시로 1992년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참여작가는 다음과 같다. 고영훈, 권여현, 김영진, 김정명, 김 훈, 박기원, 박도철, 박불똥, 변종곤, 예유근, 유창현, 이상윤, 이호철, 임봉규, 최한동, 한만영, 홍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