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LAN, Surprise! 윤진섭과 함께 한 72시간의 기록
윤진섭 | 미술평론가
광주에서 오르랑(ORLAN)과 함께 예술 동료들과 하루를 보낸 후 오전 11시 30분 송정리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문득 오르랑과 어제밤 파티에서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오르랑, 당신(YOU)이 이른 일곱, 나도 어느덧 칠십 줄에 접어들었어요. 이제 헤어지면 못 만날 수도 있어요.“
나는 촉촉한 비감에 젖어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육신은 사라져도 정신은 남는 것. 뭘 걱정해?"
오르랑의 불어 대답을 그녀의 제자인 이경호 선생이 통역했다. 그는 이번에 열린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오르랑 초대전(ORLAN hybrids: Artistic Intelligence)의 주체인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의 센터장이다. 셰계 여성 100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오르랑은 말 그대로 ‘월드 스타’다.
그래도... 순간, 하나의 아이디어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래. 오르랑에게 24년에 걸친 우정의 선물을 하자.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경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디어를 대략 설명했다. 알았죠? 오르랑 선생님께는 비밀로 하시고.
O.K 사인이 떨어졌다. 이젠 출범이다. 계산해보니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72시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김노암 선생에게 전화해 간단히 핵심만 말했다.
"좋습니다. 마음을 보여주시자는데, 아름답잖아요?"
역시 김노암 선생. 만일 그때 누가 내 얼굴을 봤다면 틀림없이 만족해서 옆으로 길게 찢어진 내 입을 봤으리라. 순간, 내 머리는 고속으로 돌아 3일 후인 전시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72시간, 총 3일간의 초고속 기획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전시장은 인사동 선화랑 뒷골목에 있는 DAS ZIMMER GALLERY. 마침 빈 방이 있었다.
"김노암 선생, 댕큐! 잠시 후면 용산역에 도착하니까 바로 거기로 갈께요."
새로 개관한 파주 출판단지의 아트스페이스 휴를 비워두고 김선생은 DAS ZIMMER에 있었다.
DAS ZIMMER GALLERY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시장에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비롯하여 소정 변관식, 우봉 조희룡, 표암 강세황, 월전 장우성, 청전 이상범 등 동양화의 걸작은 물론 하인두, 이강소, 권기수, 최영욱 등 원로에서 중견에 이르는 작품들을 모은 [시간여행자의 갤러리](최문선 기획)이 열리고 있었다.
마침 이틀 후 전시가 이루어질 방은 비어있었다. 깨끗하고 아담했다. 됐어. 아주 좋아, 베리 굿!
번갯불에 콩구어 먹는다고 곧이어 전시를 위한 기획회의가 열렸다. 나는 행사 개요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했다. 대략적인 행사의 골격이 갖춰지자 김노암 선생이 제목이 갖는 의미와 상징성에 대해 발언했다.
잠시동안의 갑론을박 끝에 드디어 제목이 결정됐다. 오르랑과 윤진섭의 오랜 우정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ORLAN, Surprise!_윤진섭과 함께하는 72시간의 기록(72 hours with Yoon Jin Sup)]. 자, 제목이 결정됐으니 이제 출발이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자, 기획팀은 이리 모이세요. 김노암 감독이 팀원들을 독려했다. 최문선, 김민재, 신나라, 정다해 등 다섯 명의 막강 팀이 당장 일에 달라붙었다. 제목을 짓고 포스터와 배너 디자인이 즉석에서 나왔다. 자, 제목과 디자인이 나왔으니 다음은 뭐지? 그때 전시장 한 구석에 놓여있는 세계전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 저 패널에 오르랑과 내가 그동안 활동한 세계 각 나라에 표시를 하자. 곧이어 빨강색과 파랑색의 스티커가 등장하고 한 사람은 오르랑의 홈페이지를 검색, 경력을 보며 전시한 나라들 위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도판이 시뻘겋게 뒤덮였다. 다음은 내 차례, 이번에 파란색 스티커다. 자 가자.
광주발 서울행 KTX 객실 안에서 첫 통화를 한 후 일곱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포스터가 나오고 지금 전시를 꾸미고 있다니, 이건 정말이지 반갯불에 콩을 구어 먹어도 유분수지 원.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늦은 저녁을 먹은 일행들은 내일 할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헤어졌다. 첫 전화부터 여덟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음날(9월 7일) 오후 2시쯤 전시장에 들어서니 김노암 감독을 비롯하여 김민재 팀장, 신나라 작가가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제안된 전시를 위해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기존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잡동사니를 한편 구석으로 치우고 있었다.
김노암 감독은 늘 긍정적인 사람이다. 친화력이 높고 일에 임하면 순발력이 좋은 일당백의 인물이다. 1995년, 한국의 실험미술과 전위미술을 역사적으로 정리했다는 평을 받는 [공간의 반란 : 한국의 입체. 설치. 퍼포먼스 1967-1995]전에 이어 [서울국제행위예술제(SIPAF2000)]를 인사동에서 기획할 때 김노암 감독을 처음 만났다. 그 이후 나는 학연을 떠나 그를 깊이 신뢰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시회의 발의 이후 시간은 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준비해간 아카이브 자료들을 풀어놓았다. 드디어 벽장 속에서 사반세기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오르랑의 대형 포스터를 비롯하여 [2000서울국제행위예술제]의 자료들이 햇볕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감개가 무량했다.
단 삼일동안만 전시를 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어쩌랴 사정이 그렇게 된 것을!
밤 9시가 되자 전시는 어느덧 구체적인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한된 72시간 중에서 32시간이 경과된 시점이었다.
이제 일요일인 내일 오후 5시 오픈만 남았으니, 이건 기적이 아닌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모두들 오시라. 예측할 수 없는 잔치 속으로!
후기: 2024년 9월 8일 오후 5시, 오픈 시간에 맞춰 오를랑은 드디어 이경호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G.MAP) 센터장과 함께 갤러리 밖에서 기다리는 50여 명의 관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나의 안내로 전시장 안으로 들어선 오를랑은 진열된 전시물들을 돌아본 뒤 특유의 괴성과 함께 빙글빙글 돌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곧이어 나의 환영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간단한 합동 퍼포먼스와 오르랑의 사인회 겸 사진 촬영이 있었다. 상황이 종료된 시각은 밤 9시, 참으로 숨 가쁘게 돌아간 하루였다.
문득 오르랑과 어제밤 파티에서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오르랑, 당신(YOU)이 이른 일곱, 나도 어느덧 칠십 줄에 접어들었어요. 이제 헤어지면 못 만날 수도 있어요.“
나는 촉촉한 비감에 젖어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육신은 사라져도 정신은 남는 것. 뭘 걱정해?"
오르랑의 불어 대답을 그녀의 제자인 이경호 선생이 통역했다. 그는 이번에 열린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오르랑 초대전(ORLAN hybrids: Artistic Intelligence)의 주체인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의 센터장이다. 셰계 여성 100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오르랑은 말 그대로 ‘월드 스타’다.
그래도... 순간, 하나의 아이디어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래. 오르랑에게 24년에 걸친 우정의 선물을 하자.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머리가 기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경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디어를 대략 설명했다. 알았죠? 오르랑 선생님께는 비밀로 하시고.
O.K 사인이 떨어졌다. 이젠 출범이다. 계산해보니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72시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김노암 선생에게 전화해 간단히 핵심만 말했다.
"좋습니다. 마음을 보여주시자는데, 아름답잖아요?"
역시 김노암 선생. 만일 그때 누가 내 얼굴을 봤다면 틀림없이 만족해서 옆으로 길게 찢어진 내 입을 봤으리라. 순간, 내 머리는 고속으로 돌아 3일 후인 전시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72시간, 총 3일간의 초고속 기획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전시장은 인사동 선화랑 뒷골목에 있는 DAS ZIMMER GALLERY. 마침 빈 방이 있었다.
"김노암 선생, 댕큐! 잠시 후면 용산역에 도착하니까 바로 거기로 갈께요."
새로 개관한 파주 출판단지의 아트스페이스 휴를 비워두고 김선생은 DAS ZIMMER에 있었다.
DAS ZIMMER GALLERY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시장에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비롯하여 소정 변관식, 우봉 조희룡, 표암 강세황, 월전 장우성, 청전 이상범 등 동양화의 걸작은 물론 하인두, 이강소, 권기수, 최영욱 등 원로에서 중견에 이르는 작품들을 모은 [시간여행자의 갤러리](최문선 기획)이 열리고 있었다.
마침 이틀 후 전시가 이루어질 방은 비어있었다. 깨끗하고 아담했다. 됐어. 아주 좋아, 베리 굿!
번갯불에 콩구어 먹는다고 곧이어 전시를 위한 기획회의가 열렸다. 나는 행사 개요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했다. 대략적인 행사의 골격이 갖춰지자 김노암 선생이 제목이 갖는 의미와 상징성에 대해 발언했다.
잠시동안의 갑론을박 끝에 드디어 제목이 결정됐다. 오르랑과 윤진섭의 오랜 우정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ORLAN, Surprise!_윤진섭과 함께하는 72시간의 기록(72 hours with Yoon Jin Sup)]. 자, 제목이 결정됐으니 이제 출발이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자, 기획팀은 이리 모이세요. 김노암 감독이 팀원들을 독려했다. 최문선, 김민재, 신나라, 정다해 등 다섯 명의 막강 팀이 당장 일에 달라붙었다. 제목을 짓고 포스터와 배너 디자인이 즉석에서 나왔다. 자, 제목과 디자인이 나왔으니 다음은 뭐지? 그때 전시장 한 구석에 놓여있는 세계전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 저 패널에 오르랑과 내가 그동안 활동한 세계 각 나라에 표시를 하자. 곧이어 빨강색과 파랑색의 스티커가 등장하고 한 사람은 오르랑의 홈페이지를 검색, 경력을 보며 전시한 나라들 위에 빨간색 스티커를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도판이 시뻘겋게 뒤덮였다. 다음은 내 차례, 이번에 파란색 스티커다. 자 가자.
광주발 서울행 KTX 객실 안에서 첫 통화를 한 후 일곱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포스터가 나오고 지금 전시를 꾸미고 있다니, 이건 정말이지 반갯불에 콩을 구어 먹어도 유분수지 원.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늦은 저녁을 먹은 일행들은 내일 할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헤어졌다. 첫 전화부터 여덟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음날(9월 7일) 오후 2시쯤 전시장에 들어서니 김노암 감독을 비롯하여 김민재 팀장, 신나라 작가가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제안된 전시를 위해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기존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잡동사니를 한편 구석으로 치우고 있었다.
김노암 감독은 늘 긍정적인 사람이다. 친화력이 높고 일에 임하면 순발력이 좋은 일당백의 인물이다. 1995년, 한국의 실험미술과 전위미술을 역사적으로 정리했다는 평을 받는 [공간의 반란 : 한국의 입체. 설치. 퍼포먼스 1967-1995]전에 이어 [서울국제행위예술제(SIPAF2000)]를 인사동에서 기획할 때 김노암 감독을 처음 만났다. 그 이후 나는 학연을 떠나 그를 깊이 신뢰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시회의 발의 이후 시간은 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준비해간 아카이브 자료들을 풀어놓았다. 드디어 벽장 속에서 사반세기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오르랑의 대형 포스터를 비롯하여 [2000서울국제행위예술제]의 자료들이 햇볕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감개가 무량했다.
단 삼일동안만 전시를 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어쩌랴 사정이 그렇게 된 것을!
밤 9시가 되자 전시는 어느덧 구체적인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한된 72시간 중에서 32시간이 경과된 시점이었다.
이제 일요일인 내일 오후 5시 오픈만 남았으니, 이건 기적이 아닌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모두들 오시라. 예측할 수 없는 잔치 속으로!
후기: 2024년 9월 8일 오후 5시, 오픈 시간에 맞춰 오를랑은 드디어 이경호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G.MAP) 센터장과 함께 갤러리 밖에서 기다리는 50여 명의 관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나의 안내로 전시장 안으로 들어선 오를랑은 진열된 전시물들을 돌아본 뒤 특유의 괴성과 함께 빙글빙글 돌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곧이어 나의 환영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간단한 합동 퍼포먼스와 오르랑의 사인회 겸 사진 촬영이 있었다. 상황이 종료된 시각은 밤 9시, 참으로 숨 가쁘게 돌아간 하루였다.
- 1차 게재: 미술세계 2024년 10월호
윤진섭(1955- )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재학중인 1977년에 전위미술그룹 <ST>를 통해 화단에 입문했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로즈 셀라비여, 왜 재채기를 하는가?>로 등단, 이후 비평과 전시기획, 창작을 겸하고 있다. ‘놀이’가 평생의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