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의 장례식, 그후 1년
 

윤진섭 | CRICURATIST
Ⅰ. 
 세월이 참 빠르다. <샘(Fountain)>의 장례식을 치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주년이 됐다니! 
 그랬다. 평촌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2기적 팩토리에 작가,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미술관 관장 등등 미술계의 인사들이 모여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변기, 곧 <샘>을 장사지내고 나서 인근의 거리를 활보하며 왁자지껄한 거리 퍼포먼스를 벌였다. 행위예술가 김석환이 상두꾼이 돼 즉석에서 만든 딸랑이를 요란스레 흔들며 앞장을 섰다. 걸쭉한 입담이 상두꾼의 입에서 연신 터져 나와 일행을 즐겁게 했다. 문상객들은 각자 준비한 의상과 탈, 망토, 요란스럽게 치장한 각반 등으로 분장을 해 엄숙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웃음이 가득 찬 잔치로 승화시켰다.  
 그렇다.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즐겁기도 한 일이다. 더군다나 미술가들을 100년 이상이나 ‘개념’이란 최면에 빠트린 ‘샘’의 죽음에서랴! 아니, 그것은 되려 축하할 일이 아닌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아니라 마르셀 뒤샹의 <백년 동안의 몽혼(夢魂)>이라 해도 어울릴 집단적 최면이었으니 말이다. 
 미술사가 양은희는 장례식 브로슈어에 실린 샘의 약력을 작성했는데, 그중에 일부 사건을 발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917년 4월 뉴욕 미드타운의 마르셀 뒤샹 작업실에서 출생. 올해 107세.
당시 대량생산된 남성용 변기에 뒤샹이 ‘R. Mutt 1917’이라고 사인을 하며 탄생. 
(중략)
⁕1993년 작가 캔델 기어스, 브라이언 에노, 피에르 피노첼리가 각각 전시중인 샘에 소변을 누며 애정을 표함, 
⁕1996년 포스트모던 작가 세리 르빈이 샘을 청동으로 카피한 작업 제작. 각각 ‘마돈나’와 ‘부처’라는 부제를 달았고 ‘차용’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게 됨. 
⁕2006년 파리에서 작가 피에르 피노첼리가 망치로 전시중인 샘을 구타해 8조각이 남. 
⁕2023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윤진섭의 자택에서 사망. 
이후 1년 후인 2024년 12월 11일 경기도 평촌에 있는 2기적 팩토리에서 다수의 미술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샘의 사망을 공식화하고 장례를 퍼포먼스 형식으로 치룸. 

Ⅱ.
 샘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한동안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랬고,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분주했다. 대체 무엇이 달라진 거지? 
 낫씽!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그동안 왜 그렇게 요란스러웠어? 그동안이라니? 샘이 태어나고 나서 100년 동안 말이야.
 아마 모르긴 해도 샘이 태어난 1917년 이후 마르셀 뒤샹과 샘에 관해 쓴 전 세계의 글과 기사를 다 모으면 한 트럭 분은 충분히 될 걸? 이런저런 사연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넉근히 갈 거야. 클클클. 
 샘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서울아트가이드, 아트인컬처, 월간미술, 퍼블릭아트, 미술세계, 미술과 비평, 서울문화투데이 등등 각종 미술잡지(2024.12-2025.1)와 신문에 관련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샘에 관한 이야기가 미술동네에 죽비(竹篦)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건 마치 선가(禪家)의 죽비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작가 K는 하도 세게 맞아 아직도 정신이 얼얼하다고 했다. 감사하다! K가 말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샘의 죽음’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Ⅲ. 
 ‘샘의 죽음’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니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잡지에 실린 기존의 글을 인용한다. 


 “2023년 3월 23일, 드디어 나는 ‘샘’을 죽였다.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살의(殺意)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계기가 있다. 아트인컬처 1)  잡지에 실린 한 장의 광고사진. 거기에는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샘(Fountain, 1917)의 사진이 가운데 있고 그 위에 다음과 같은 붉은색 손글씨가 씌여 있었다. “마르셀 뒤샹의 자리를 넘보다.”
 오호! 순간,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신의 한수’가 당도하셨도다! 나는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정사진을 만들자. 마침 집에 며칠 전 길에서 주워 온 커다란 흰색 타일이 있었다. 이걸 가리켜 안성맞춤이라 하던가. 일이 될려고 하는지 마침 타일 중앙에는 담배갑 두 배 크기에 사각구멍이 나 있고 망사로 덮혀 있었다. 잡지의 ‘샘’ 사진을 잘라 붙이니 매우 그럴 듯 해 보였다. 나는 검정색 테잎으로 타일의 앞면을 꼼꼼히 감싼 뒤, 그 위에 베이지색 테잎으로 ‘ㅅ’표시를 했다. 그럴듯한 영정사진이 완성된 것이다.”

-졸고, <샘, 영면에 들다>, 아트인컬처 2025년 1월호, 161쪽- 

 이 짧은 지면에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복잡한 전 과정을 다 쓸 수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앞에 열거한 잡지들을 참고하시라. 할!
 그리하여 아무튼 장례를 치렀다. 그 후 1년. 나는 뒤샹의 말처럼 ‘숨을 쉬면서’ 살았다. 오직 숨쉬는 것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거사를 치르고 난 뒤, 한참을 지나고 나니 모든 게 농담같기만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운이 좋았다. 잡지에서 샘의 광고를 만난 것부터 어느날 2기적팩토리 이미경 대표의 오브제에 관한 강연 요청, 나의 수락과 더불어 오브제 작품 전시 제의. 
와 이 대표의 O.K, 2차례의 전시 중에 가진 강연과 전시 마지막 날에 벌어진 샘의 장례식 등등 ‘운칠기삼(運七技三)’2) 의 연속이었다. 좋은 운의 퍼레이드, 그 속에서 축포는 농담처럼 허공으로 퍼져올랐고, 간간이 번쩍하는 깨우침이 죽비처럼 땅으로 내리꽂혔다.
 그러던 어느날, “소소(SoSo) 3), 고마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저만큼 검정 양복을 입고 지적으로 보이는 노인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진으로 본 뒤샹 옹(翁)이었다. 노인은 사진 속에서 쾌활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그 옆을 보니 얼굴이 흰 샘이 옆에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옆구리에 검정 글씨로 ‘R. MUTT 1917’라고 쓴 사인이 보였다. 모든 게 꿈결 같았다. THE END  

- 1차 게재 미술세계 2026.1



1) 이 글을 쓸때만 해도 이 광고가 실린 잡지가 아트인컬처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월간미술이나 퍼블릭 아트인 것도 같다. 아직 미확인이다. 발견하신 분은 알려주시길.  

2) ‘운이 칠십 프로요 기술이 30프로’란 뜻으로 기술보다 운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 

3) ‘소소’는 윤진섭의 100여 개되는 예명 중 하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