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G신진작가대상 공모전 심사평



고충환 | 미술평론가


재단법인 안국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주관하는 2026 AG신진작가대상 공모전에 총 375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그중 총 3차에 걸친 블라인드 심사과정을 통해서 문준호, 박종화, 성필하, 조윤국(이상 4명 우수상), 전효경(최우수상), 김형우(대상) 등 6명의 작가가 최종 선정되었다. 

선정된 작가들을 보면, 먼저 문준호는 흑백 모노 톤의 검은 풍경을 보여준다. 가지런하게 전지된 수목 사이로 사슴이 뛰어노는 목가적인 풍경을 회색 조의 절제된 색감으로 그린 것인데, 목가적인 풍경과 암울한 분위기의 색감이 충돌한다. 아마도 목가적인 풍경은 없다는 역설적인 현실을 알레고리로 풀어낸 것일 터이다. 여기에 보통의 물감 대신 실리콘을 안료로 사용한 실리콘 페인팅이 이색적이다. 

박종화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화가들과 그림 속 모티브를 영화 속 장면과 결합하는 방법으로 현실과는 또 다른 현실을 제안한다. 뒤샹의 샘(변기), 피에로로 분장한 와토, 르네 마그리트와 데미안 허스트, 쿠르베의 사제,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마티스와 기타 치는 여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보티첼리의 비너스, 프리다 칼로와 제프 쿤스의 강아지가 영화 속 장면과 어우러진다. 상호 간 이질적이고 무관계한 것들을 한자리에 그러모아 그럴듯한 제3의 현실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브리콜레르와 브리콜라주를 예시해준다.
 
성필하는 겨우내 죽은 듯 무성한 마른 풀과 덤불, 숲속에 숨은 웅덩이, 이름 모를 들풀 사이로 흐르는 개울, 물그림자, 잎을 다 떨군 마른 나무, 전신주를 휘감아 도는 웃자란 넝쿨, 잔설과 같이 없는 듯 있는 풍경을 그린다. 존재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풍경이란 점에서, 시선이 간과한 풍경이란 점에서 변방풍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시선이 간과한 풍경이지만, 그 와중에도 치열한 자연을, 생명을, 생태를, 순환하는 시간을 그려놓고 있다. 

조윤국은 똑같은 크기와 생김새의 주택들이, 비슷한 크기와 생김새의 아파트가 오밀조밀 모여 사는 모듈 구조의 거주 형태를 예시해준다. 그리고 그 거주 형태의 구조물을 상실의 섬이라고 부르고, 현대적 기념비라고 부른다. 회색 도시와 콘크리트 공화국이라는 말로 형용 되는 도시에서 고독한 개인을 떠올려주는, 다닥다닥 포개진 성냥갑처럼 조금의 틈도 찾아볼 수 없는 도시에서의 삭막한 삶을 떠올려주는, 그리고 그 삶에 기념비적인 아우라를 부여하고 있는 작업이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전효경 작가는 연필과 목탄과 먹으로 그린, 무채색의 빽빽한 화면을 보여준다. 반쯤 무의식적으로 그리기, 자동기술적으로 그리기, 무작정 그리기, 밑도 끝도 없이 그리기, 사물과 사물 간, 모티브와 모티브 간 관계나 논리적 개연성 없이 그리기,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을 부르는, 하나의 의미가 다른 의미를 불러들이는 자유연상을 따라 그리기, 사물의 위치가 달라지면 의미 또한 달라지는, 데페이즈망 그러므로 사물의 전치를 통해서 그리기와 같은, 초현실주의에서 유래한 방법론을 예시해준다. 마치 감각적 세계가 해체되고 재편되는 꿈을 꾸는 것도 같다. 

그리고 대상을 수상한 김형우는 선정 작가 중 유일하게 조각을 베이스로 한 작가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가와 모델을 소환해 동시대적인 사물과 결합하는 방법으로 상황 논리를 비트는 작업이다. 아그리파의 코에 반창고를 붙인다거나, 미켈란젤로에게 버버리 머플러를 입힌다거나, 반 고흐의 초상에 리바이스 청재킷을 입힌다거나, 다비드의 나체상에 케빈 클라인 상표의 팬티를 입히는 식이다. 여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잘린 귀에 그대로, 여전히 꽂혀있는 이어폰이 인상적이다. 온갖 상품으로 넘쳐나는 물신주의 사회를 풍자하는 부분이 있다. 심사과정에서 요즘 보기 드문 대리석 조각이라는 점이, 그것도 인체를 모티브로 한 사실주의 구상 조각이라는 점이 오히려 신선하게 와닿는다는 평을 받았다. 

차용이 많았고, 트랜디한 경향성의 회화가 많았다. 차용은 원작을 재해석해 또 다른 의미를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트랜드는 형식적으로나 의미로 동시대적인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그 자체로 이미 굳어진 부분이 있다. 그 이후를 예시해주지 못하고 일차원적인 차원에 머문 점이 아쉬웠다. 좀 더 의식을 공 굴리는, 치열한 주제 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