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로부터 다시 구축되는 세계 

    

이선영(미술평론가)


심승욱의 개인전 [검은 중력](2008, 2012), [검은 풍경](2009)에 나타나듯, 그의 작품에서 검정은 주요색이며, 얼마 전 [흐르는 시간 속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2024)에서도 강력하게 남아있다. 그의 작품은 거칠거칠하고 야성적이지만, 검은색은 AI 시대에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블랙 팩토리, 블랙 실험실 등, 빛이 별로 필요 없는 무인노동/작업 현장이 그것이다. 산업 시대의 주요 에너지원도 검은 화석연료였다. 노동의 종말 또는 가치 변화는 조각 예술의 근간인 인간 정체성의 핵심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 방식보다는 조립과 해체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도 기념비성이나 견고함은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작업실 한켠에는 레고 블록이 쌓여있다. 부분별로 분류되어 쟁여진 박스들은 규칙적 속성을 가진 레고가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잠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그저 취미라고 말하지만, 손에 닿는 가장 가까운 중요한 자리에 있는 레고는 작품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숙이 자리한다.




구축 혹은 해체_2011_초산비닐수지, 각종 목재, 아크릴물감, 판지_가변설치_작품 소실

 


레고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이모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작가에게 선물로 준 귀한 장난감으로, 유년 시절 화사한 색상의 작은 블록으로 만들어진 유토피아에 대한 몰입으로 즐거울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레고는 그의 작업 방식인 구축과 해체의 어법을 공유한다. 레고의 단위는 원자론의 모델처럼 이합집산하면서 세상을 짓는다. 장 살렘은 [고대 원자론]에서 원자론과 레고를 비교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레고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잇다, 선별하다, 그리고 읽다’를 의미한다. 고대에도 있었던 원자론은 ‘우리가 지각하는 물체들 사이의 차이는 그것들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형태, 배열, 위치의 차이로 귀결된다’(장 살렘)고 본다. 고대 원자론자들의 관점에서 우주는 거대한 일종의 레고인 것이다. 구축에 내재된 해체, 또는 그 역에 대한 대한 관심은 [구축/해체](2014), [컨스트럭션 디컨스트럭션](2013) 등의 개인전에 명확하다. 어른이 된 이후 예쁜 색의 레고로 지어진 유토피아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반전된다.

 

그의 레고 세상은 알록달록한 색을 잃고 흑화(黑靴)됐다.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화학적 물감이 나오기 이전에 블랙은 유기물질을 철 냄비에 태워 만들어진 진한 검정 분말로 만들어졌다고 밝힌다. ‘모든 색의 총합인 빨강과 파랑, 노랑을 섞으면 거의 검정이 나온다.’(에바 헬러)는 색채론의 기본 법칙은 심승욱의 검정이 혼돈과 파괴의 느낌을 자아내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역설의 논리로 다시 보자면, 바닥을 친 블랙은 그로부터 나온 모든 색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작품 [오브제 A-녹아내린 세계](2024)는 레고 블록으로 쌓은 동네가 전소된 듯 연출되어 있고, [오브제 A](2017) 시리즈에서의 마을은 전체가 좌초되는 중이다. 검은 마을 풍경은 사진 작업으로도 발표됐다. 입체작품을 사진으로 연출한 [오브제 A-검은 풍경](2016) 시리즈는 스펙터클하게 펼쳐진 폐허로, 재난이 계속 이어지듯 줄지어 행진한다. 만들어진 만큼 허물어질 수 있다는 의식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구축 혹은 해체_2013_ 초산비닐수지, 각종목재, 아크릴물감, 판지_ 245X230X210cm



양가적 의미를 중시하는 그에게 불확실성은 자유의 또다른 면이다. 예술 자체가 불확실하다. 그가 현대미술사의 주요 작품들을 패러디했을 때, 그 위상의 취약성이 두드러진다. 작품 [승리의 여신](2024)은 고전적 유산으로 가득했던 역사를 다 쓸어버리자고 의기기양양하게 외쳤던 미래파의 주장을 그들이 경멸하고 반대했던 고전주의만큼이나 시대착오적으로 만든다. 심승욱의 대표색은 블랙이었지만 2024년 전시에서 분홍이 들어왔다. 미술사를 패러디한 작품군에 쓰인 분홍 또한 전형적인 상징을 벗어난다. 그는 이 분홍을 ‘장미빛 미래? 핑크빛 환상!’이라고 풍자한다. ‘은빛의 탄환처럼 내달리는 스포츠카는 사모트라케, 승리의 여신보다 아름답다!’고 외친 미래파는 작가로 하여금 ‘역사를 통해 새로움을 지향하는 신념 속에 내재된 모순과 위선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다. 에바 헬러는 분홍이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의 색이며 부드러운 피부를 떠올리기 때문에 에로틱하며, 분홍과 심리적인 반대색은 검정이라고 지적한다. 


심승욱의 작품에서 뼈에서 발려 나온 듯한 살덩이는 분홍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 몸이 연상되는 여러 사물들은 좁은 구멍에서 삐져 나온 공업 물질처럼 살풍경하다. 부친의 죽음이라는 실제의 비극이 닥치자 그는 어둠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블랙이 주는 진지함과 우울은 분홍의 가벼움으로 상쇄하려 했지만, 산산조각난 파편같은 요소들이 더 강조될 뿐이다. 살과 분리된 뼈대, 즉 본질은 굳건하기 보다는 취약하게 다가온다. 분석적 구조의 이면에 대한 자각은 사물의 표피에 대한 집중으로 이어진다. 검은 비닐로 뒤덮인 작품 [지난 시간 속에 남겨진 다섯 개의 군상](2024)은 압축단열재, 발포우레탄, 비닐, 마송 구조목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재료만으로 볼 때는 큰 검은 비닐에 싼 폐기물과 다를 바 없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작품 [비닐 산수](2024)에서 각목 지지대에 올려진 산수의 실루엣 또한 견고한 토대를 잃고 바람에 휙 날려 막대기에 걸쳐진 쓰레기 봉지같은 모습이다. 



오브제 A-검은 풍경_2016_C-프린트_80X200 cm_4개 연작 중 No1, No2 



비록 재료가 그러해도 큰 규모의 군상은 사색적이며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존 하비는 [블랙 패션의 문화사]에서 검은색은 자아를 묻어버리는데 쓰여 온 색상이라고 지적한다. 금욕생활을 하는 사막의 은자들이나 수도승은 검은 의상을 걸쳤고 그들의 주요 의무 중 하나는 애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끊이지 않는 전쟁과 자연재해를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공감을 준다. 빛을 받은 검은 표피는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부피는 일정해도 표면은 무한하게 다가올 수 있다. [검은 중력] 시리즈(2008-2010)에서의 머리털 같은 소재는 표면의 최말단에 해당된다. 이 비루한 소재는 묵직한 죽음의 무게도 털어낸다. 그 작품들은 샤워 시설이 없던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하수구 속 머리카락처럼 깊고 어둡게 뒤엉킨 물질의 기억’을 담았다. 샤워 후 몸에서 탈각된 털들의 뭉치같은 것들은 무엇인가 녹아내린 것이 줄줄 흐르는 괴기스러운 형태들로 변모한다, 몸의 배출물처럼 대부분 소실된 작품이다. 


인간과 자연에 본질과 핵심이 있다고 믿어졌던 믿음은 표면에서의 부질없는 방황으로 바뀐다. 본질이 아닌 상황에 놓인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는 젊었을 때는 시간의 흐름을 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삶 자체가 시간이라는 축에 놓여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시간은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귀결될 수 있으며 그것이 작품의 서사를 이룬다. 물론 기승전결이 완결된 서사는 아니다. 이전시대의 조각처럼 서사를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단면은 없으며 도처에 빈 칸이 있다. 이는 원자론에 필수적인 불연속적인 공간, 즉 허공처럼 불확실성과 자유를 동시에 낳는다. 현대사회는 제도화, 형식화를 통해서 불확실성을 해소하려 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삶의 많은 부분을 자동적으로 결정하려 한다. 심승욱은 그동안 사회적 사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작품 안팎으로 실천도 해왔지만, 알수록 모호해지는 역설을 피해 갈 수 없다. 




승리의 여신_2024_미송구조목, 압축단열제, 에폭시퍼티, 아크릴 채색_ 380X376X282cm(김종영미술관 전경) 



그는 2018년 작가노트에서 ‘나의 작품은 상호 양립 불가능한 구축과 해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과잉과 결핍의 불균형 속에서 발현되는 충족되지 않는 인간 욕구를 동기로 하여 구축되는 사회현상과 관계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비롯하여 견고해 보이던 시스템이 누수되고 좌초되는 국면들은 작품의 무의식에 깔려있다. 작품 [구축 혹은 해체-부재와 임재 사이](2015)는 페허 위에 우뚝 솟은 메가폰들을 보여주는데, 침몰하는 배 안에서 그냥 그 자리 지키고 있으라던 그날의 메시지가 들려오는 듯하다. 철학적으로 볼 때 구축은 곧 해체이며, 양가성이 강한 그의 작품은 어느 한 편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상상, 새로움, 엉뚱함, 오역 같은 것이고 그것은 많은 잠재적 경우의 수와 의외의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제 일어난 사건은 원래 그의 작품 기조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구축 혹은 해체](2011) 시리즈에서 주조색 블랙은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진 잡다한 것들을 통일 시켜준다. 잘 정돈된 공간의 상징인 화이트 큐브라는 맥락은 역설의 강도를 높인다. ‘구축 혹은 해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작품 군들은 더 이상 재구축될 수 없을만큼 해체되어 있다. 그 시리즈가 대부분 소실되어 사라졌을 정도로 말이다. 조셉 칠더즈와 게리 헨치가 편집한 [현대문학 문화 비평 용어 사전]에 의하면, ‘구조주의가 한 텍스트 속에서 개별 요소들의 배열을 지배하는 논리적 관계들의 체계를 구축(construction)한다’는 맥락에서 탈구축(deconstruction) 또한 이해된다. 심승욱의 작품에서도 구축/해체는 형이상학적인 본질이 아닌 배치, 즉 모든 방향으로 확장하는 표면의 문제이다. 구조적 투명성에 기반하는 근대적 논리는 거듭해서 해석해야 하는 정처 없는 시간적 과정으로 변화한다. 이는 모든 것을 지배 권력의 조명 아래 놓겠다는 코드화된 세상에서 삶과 예술의 불투명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한다. 




지난 시간 속에 남겨진 5개의 군상_2024_비닐, 압축단열재, 미송구조목, 우레탄폼_가변설치(김종영미술관전경)

자연재해와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에 대한 애도의 몸짓이 드러난 작품이다. 하지만 묵직한 서사를 이끄는 인간의 위상은 검은 비닐봉지 안에 얼기설기 채워넣은 물질만큼이나 비본질적이다.  



작가 심승욱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 예고, 홍익대 조소과와 대학원, 시카고 예술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초빙 교수로 강의를 맡고 있다. [드라이 플라워 가든](2005, 갤러리 아트사이드)을 시작으로 [검은 중력](2008, 칼 해머 갤러리, 시카고), [검은 풍경](2009, 티팟 갤러리 포 컨템포러리 아트, 쾰른), [사유의 경계를 허물다](2011, 텐리 갤러리, 뉴욕), [구축/해체](2014, 문화역서울284 RTO) 등을 거쳐, [흐르는 시간 속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2024, 김종영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에서 1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심승욱이 기획한 주요 전시로는 [새벽의 검은 우유](2020, 김종영미술관), [우주전쟁 그러나 시에스타](2021, 수애뇨339 갤러리), [수! 수! 수수! 수퍼노말!](2025, 스페이스 수퍼노말) 등이 있다. 난지창작 스튜디오(2019), 인천아트플랫폼(2017), 고양레지던시(2016), 장흥가나아뜰리에(2012), 뉴욕ISCP 레지던시(2010) 등의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2014년 푸르덴셜 아이 어워드 컨템포러리 아시안 아트상을 수상(조각상 수상/ 푸르덴셜, 사치갤러리) 했다. 그는 개인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익숙함](2020)에서 자기 작품을 관통하는 양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작품 전반에 표현된 것은 불안. 혹은 불안정과 관계 있다...나는 그 불안과 불안정을 조각과 설치에서 검게 타 녹아내린 듯 혹은 형태가 서로 뒤엉킨 검은 물체의 이질감으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작업에서 대상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불확실성과 서로 모순된 양가성에 주목했다’ 그는 이러한 작업 내용을 조각과 설치 뿐 아니라 회화, 사진, AI를 활용한 매체 간 실험으로 진행하고 있다. 


출전; 문화일보-크라운 해태 공동기획 세계로 가는 K 조각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