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서울의 풍경은, 내 유년의 공간은 사실 박수근의 그림 속에 납작하게 들어와 앉아있다. 산동네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살았고 대부분 가난하고 모든 게 부족했다. 우리들은 늘 허기져있었으며 코를 흘리고 추위에 떨면서 그 좁은 동네를 마냥 배회했다. 혜화동과 삼선교, 미아리는 내 유년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공간이다. 경복궁과 비원, 우이동 계곡과 솔밭, 화계사 등은 소풍과 미술대회로 또한 빈번하게 갔던 장소다. 그리곤 여전히 그곳을 근거리에 두고 가끔씩, 아주 가끔씩 찾아간다. 그럴 때 서울이 고향임을 깨닫곤 한다. 서울의 공간적 특성에 비교적 익숙한 편이지만 서울의 풍경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근자의 일이다. 일정한 조망의 시선을 확보하면서 그 풍경이 새롭게 읽히기 시작한 것 말이다. 한강을 넘나들 때마다, 저 멀리 북악과 도봉이 눈에 가득찰 때마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벅참이 밀려듬을 수시로 느낀다. 그래서 새삼 이 서울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음을 거듭 생각해내곤 한다. 그러니까 서울을 둘러싼 병풍 같은 산들이며 유장한 한강을 볼 때 그런 느낌은 더욱 부풀어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 도봉산을 즐겨 오르던 추억이 내재되어 있어서인지 아니면 늘 보던 풍경이라 그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서식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술평론을 직업으로 갖게 되면서 나는 인사동과 사간동 출입이 잦아졌다. 아니 내 일상이 그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면에서 ‘내 마음 속 풍경’은 단연 인사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사동에서 보낸 내 삶들은 전시장, 식당, 찻집이 전부다. 전시를 보고 밥을 먹고 작가를 만나고 술자리에 참석하고 카페에 들어가 글을 쓰거나 게으르게 책을 보던 곳, 그 누군가를 만나고 취했고 슬프고 우울했던 그 모든 기억들이 자리한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커왔다고 말해야한다.
인사동과 사간동, 그리고 교보문고를 드나들면서 이렇게 늙어간다는 생각도 든다. 바쁘고 황망하게 그곳을 거닐 때마다 나를 구원해주는 장면은 다름아니라 인왕산이다. 나의 일상에서 고개를 들면 만나지는 풍경이 다름아닌 인왕산인 것이다. 경복궁에 들어가 국립중앙박물관 너머로 보이는 모습도 좋고 대림미술관 4층에 올라가 바라보는 인왕산도 좋다. 보고 또 봐도 좋은 그런 산이다.
<인왕산은 높이가 338미터밖에 되지 않은 산이다. 산 전체가 온통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상반부는 거대한 암반이 송두리째 드러나 있다. 그래서 길게 누운 모습 전체가 무척 장엄하다. 그래서일까, 조선시대에는 줄곧 명산으로 숭앙되었다고 한다. 전통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경복궁 뒤로 북악산이 서울의 주산이고 타락산(낙산)이 좌청룡, 인왕산이 우백호에 해당한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새 왕궁 터를 정할 적에 이 인왕산을 서울의 주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무학대사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조선 왕조 천년의 운세가 오백 년으로 줄었으며 왕위가 맏아들에게 상속된 적도 적었으며 불교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인왕산을 볼 때마다 나는 정선이 그린<인왕제색도>를 떠올린다. 인왕산은 그렇게 정선의 그림과 함께 출몰한다. 정선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인왕산을 그렸다. 그들 역시 겸재가 그린 인왕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강경구가 그린 인왕산이 좋고 우순옥의 설치작품에서 창문 너머로 만났던 인왕산도 좋았으며 박영선의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혔던 인왕산도 그랬다.
겸재는 인왕산에 큰비가 온 끝에 그 비가 개어 가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해서 그렸다. 거대하고 시커먼 바위산의 압도적인 중량감이 잘 표현된 이 작품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있다. 이 작품은 정선의 절친한 친구인 시인 이병연이 임종을 앞두고 있자 그의 쾌유를 비는 차원에서 그려졌다고 한다. 그림 하단에 위치한 기와집이 바로 그 친구의 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압도적인 힘과 비장한 감정이 서려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기와집이 유난히 정갈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우리 옛 그림 속의 자연은 그저 단순한 객관적 자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상 자연인 동시에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인왕산을 볼 때마다 겸재를 떠올리고 우리 미술을 생각하고 미술계 언저리에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내 자신을 서늘하게 돌아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인왕산은 여전히 내가 이 서울에서 살고 있음을 느닷없이 환기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박영택
#2452
인왕산
박영택
2003. 11. 30.
박영택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688
미술평론가 박영택(b.1963)은 [얼굴이 말하다, 마음산책(2010)], [예술가의 작업실(2012)]을 저술하였고 아시아프 총감독(2010)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