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 실기실이 자리한 복도 끝에 자리한 홍명섭의 작업실은 내 한 발이 들어갈 틈조차 없이 어지럽고 빼곡하다. 학생들의 작업실과 붙어서 그렇게 별 구분없이 작업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곧 있을 개인전 준비에 분방한 그를 너무, 오래간만에 만났다. 그 공백의 시간이 자책감으로 뭉쳐져 자꾸 밀려든다. 미술계의 말석에서 이런 저런 글을 쓰면서 많은 작가를 만났지만 그 어떤 작가보다도 내게 이 작가는 각별하다. 그는 내게 늘 두려움과 긴장감을 벼리게 해주는 이다. 그를 통해 미술을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며 안목을 배웠고 좋은 작가들을 소개받았다. 그는 미술계에서 ‘설치의 도사’, ‘현대미술의 논리와 개념에 가장 해박한 작가’, ‘최고의 모더니스트’라고 불리기도 하며 책도 몇 권씩이나 낸 이다. 근자에 와서야 나는 그의 작업에서 다분히 불교적 사유와 깊은 동양사상의 자리하고 있음을 얼핏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의 작업은 서구현대미술의 논리와 잣대로만 측량하기에는 곤혹스러움이 있다. 

자신의 작업이 어떤 일정한 의미로 읽히는 것을 극구 사양하는 그에게 작품은 하나의 ‘장치’이다. 이 장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기있는 관심을 토대로 그 관심사의 표현에 최대한의 장력”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우리의 감수성에 최대한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예술에서 하나의 형식이 지배적인 것으로 대우받으면서 남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참된 형식이 될 수 없다. 예술에서 정신이 어떤 것에 집착하고 고집을 부릴 때 그 정신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작가노트)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불경에 깊이 심취했으며 청담스님의 책이 특히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상한다. 한때 중이 되기를 열망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 인식론적 관심으로 불교를 접해왔다고 한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불교적 관점이 그에 접목되면서 그만의 독자한 미술관이 가다듬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재학시절부터 그는 기존의 모든 조각적 전통에 대해 일정한 반성을 시도해왔다.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작업, 인연과 시간성에 대한 주목 등이 그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작품은 순간순간 변하는 것을 선호했다. 예를 들어 그가 즐겨 쓰는 종이, 테이프 등이 그것인데 그것은 가장 비조각적인 재료이다. 부피와 질량을 지닌 덩어리가 아니다. 비싼 재료가 아니라 값싼 재료이며 가변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변화해 가는 그런 재료다. 전통적인 딱딱한 조각적 재료가 갖는 영구성을 역겨워하는 그는 ‘종이 발’작업을 통해 곤충의 허물(껍질)과도 같이 부서지기 쉬운 그 연약한 느낌의 재료적 속성에 주목한다. 그러한 정서 자체가 작업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무엇보다도 소멸되어 간다는 점에서 생명의 주기를 닮고 있다. 종이로 떠낸 발 역시 일정한 시간 지속되긴 하지만 세월에 변질되거나 쭈그러들거나 차츰 누렇게 변색, 바래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오래가길 원하지 않는다. 일시적이고 우연적으로, 인연이 되어 특정한 공간에 기생하면서 일정한 시간을 머물다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누구에 의해 소유되기 어렵다. 이렇듯 기념비적인 것,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이 그의 작업의 중심축이 되었다.

“작업이란 어떤 인연에 끌려가는 것이지 내가 만들고자 해서 꼭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거기서 어떤 인연을 볼뿐이다. 인연이 닿으면 나의 작업이 다가올 것이다.”(작가노트)

그러니까 그에게 작업을 한다는 것은 다같이 업을 지음과 동시에 또한 업을 벗어남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한 동시에 의미를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공이요 화근이다. 득이며 실인 것이다.

세간世間이 곧 출세간出世間이며 여기가 극락極樂이고 여기가 마장魔障이다. 석용산 스님은 여인네 신도들의 치마폭에 시달림 받아야 하는 포교승들에겐 여인이 마장이며 이 여인네라는 마장을 통해서 포교승은 커야 한다고 말한다. 생활인들에게 생활이 극락이고 곧 마장이듯이 예술가에게 예술 역시 극락이자 마장이라는 것이며 이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四果’중에 세 번째 단계인 ‘不還果’란 우리가 더는 그 무엇으로도 다시 태어남과 끝난 경계를 말한다. 더 이상 윤회가 되풀이되지 않게 끝나는 이 단계처럼 예술 작업이란 것도 작가 개인에겐 어느 선에서 더 이상 작업이 되풀이될 수 없게 예술의욕을 잠재워 버리고 마는 단계가 있지 않을까. 그런 경계가 있을 것 같다. 그렇지 못하니까 또 다시 새로운 작업의 경계에 들고, 또 다시 지어내려는 의지에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기 자신만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업을 거리낌없이 또 다시 지으면서...‘나’라는 자아의식에의 포로, 자아의 허구에 오늘도 놀아나면서 나는 아직도 ‘나’라는 환상을 추구하는 자만감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작가노트)




그는 한지로 발을 떠서 배열한 작업에 ‘회향’, ‘회향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향’이란 자기가 닦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돌려주어서 범부가 닦은 마음이 불과로 들어감을 뜻하는 말이다. 정신이 공과를 육체에 돌리고 그럼으로써 정신과 육체가 함께 불과에 드는 것이다. 그의 발들은 수평에 납작하게 깔려있다. 수 십 개의 발로 이루어진 군족의 형태로 이루어진, 같으면서 다른, 끊임없이 변화하는 반-복의 작업이다. 어떤 공간에 물체를 깐다는 것은 결국 공간확보가 아니라 시각을 낮추면서 시간을 포섭하는 것이다. 수평구조를 휴식공간으로 보는 그는 번잡하게 들끓는 예술적 욕구를 잠재우고 명상적 시각구조를 갖고자 원한다.

비유하길 물이 흐르는 이유는 그것이 ‘수평에의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평과 같은 고요함을 유지하려는 속성의 물은 수평을 찾아서 흐르게 되어 있다는 것인데 자신의 작업 역시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가라앉히는 수평의 고요함을 발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세계에 대한 공손한 외경감으로 명상하는 제스처, 수평의 평정을 회복하려는 것이 그의 발 작업이다. 발은 인간 중심적인 표정을 지우고 대지와의 교감을 이어주는 신체적 통로이다. 발은 대지와 가장 가까이서 대지의 음덕과 수평의 균형을 조화롭게 하는 뿌리와도 같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발은 신체의 어느 부위보다도 무척 익명적이다. 아울러 발의 연장인 신발은 또한 대지와의 친화력을 띠는 순환, 죽음과 탄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존재와 부재를 이어주는 이미지인 셈이다. 우리는 흔히 삶을 떠나는 길목에 신발이 놓이는 장면을 목도한다. 물에 몸을 던져 이 세상을 등지는 사람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는 것은 이승과 하직을 고하는 의식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벗겨진 신발은 실종과 상실의 기억이며, 존재의 껍질, 허물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 ‘화선지-발’의 기본 아이디어로 “물상에 대한 명상, 즉 세계에 대한 어떤 리사이클링(허물, 업業)의 한 패턴(meta-pattern)”을 말한다. 메타라는 표현은 바로 주관성의 표현을 해체하기 위한 표현이다. 동양적인 윤회사상을 떠올리는 이 얘기는, 화선지라는 재료의 속성과 어울린 발의 형상이 부초처럼 떠도는 인생의 허허로움을 은연중 떠올려 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오늘 나는 어지러운 비평의 난무, 공허한 의미과잉으로 치닫는 우리 화단에 의미가 퇴색된 껍질과 같은 평온한 휴식을 서비스하기로 맘먹어본다. 일러 회향심(回向心)이라 할까”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정주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화단의 주류에 거스르면서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천착해 온 홍명섭의 작업세계는 불교의 사유와 동양적 지혜, 수행적 차원에서의 작가적 삶을 융합해온 한 경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 출처 / 홍명섭전 2004. 3.19 - 4.2 표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