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리지아 꽃
꽃집에 들렀다. 겨울에는 항상 푸리지아꽃이 생각난다. 한, 두 단 사서 컵에 꽂아 놓고 보는 즐거움이 크다. 이른바 완상이란 표현이 어울릴까? 짙은 노란색 꽃잎과 싱싱한 녹색의 줄기가 더없이 서늘하고 신선하다. 누군가를 연애의 감정으로 사귀던 시절, 나는 그 꽃을 조금 사서 신문지에 말아 주곤 했다. 비닐과 리본으로 호사하게 치장한 것이 싫기도 했지만 종이로 밑 부분을 대충 감아주는 게 소박하고 좋았다. 푸리지아 살 돈도 궁하면 그 꽃을 수채화로 그려주곤 했다. 몇 마디 사연을 주석으로 달은 그 문장이 지금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혹 푸리지아가 눈에 띄는 날이면 이내 그 시간으로 기억들이 부산하게 줄달음질쳐간다. 내게 그 꽃은 추억이자 하나의 소박한 역사를 은밀하게 내장한 텍스트다. 지나는 길에 그 꽃이 보이면 사고싶다. 이제 나는 그 꽃을 그래도 풍성하게 살 여유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 단, 아니면 두 단만 산다. 어렵고 궁핍하고 힘든 시절이 자꾸 습자지 마냥 그 위로 겹쳐 들러붙는다. 그런가 하면 그 꽃은 늘상 졸업식과 오버랩된다.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 나는 막막하고 음습한 미래를 떠올리며 대학원에 들어갔다. 사회로 나가는 시간이 잠시 2년 동안 지체되었던 것이다. 2년 후에도 좀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해서 어떻게 먹고살까? 더구나 미술이론을 공부한다고 대학원에 간 이상 또 얼마나 긴 시간을 견뎌야 할지 난감해했었다. 졸업식 날 다른 꽃들이 섞인 사이로 푸리지아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겨울날, 그 노랑과 녹색은 소박하면서도 여전히 싱싱했다. 그 꽃처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턱없는 생각도 들었다.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의 시간을 유폐시키지 말고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면서 미술을 철저하게 즐기고 내 삶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미술’이란 개념과 ‘미술대학’이란 교육적 제도가 우리 삶에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일종의 제도화된 관행과 틀을 거쳐야 비로소 미술을 배울 수 있고 그로 인해 미술전공자, 작가가 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제도는 미술전문인과 비전문인을 분리하고 구별짓는 일종의 장치가 된 셈이다. 제도의 혜택을 받아야 작가로서 행세할 수 있으며 외부의 시선 역시 그/그녀를 미술전공자, 작가로 인정해주게 된 것이다. 당연히 미술에 관심과 소질이 있는 이들은 그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가 무엇보다도 우선시 된다.
언젠가 미술대전에서 독학의 작가가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이전에는 신문팔이나 구두닦이, 혹은 버스 차장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놀라움과 감동 속에서 조명되는 일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사실이 그렇게 크게 얘기되는 것 자체가 이미 그런 일이 가능치 않은 현실적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드물고 희귀한 일이다. 그 일을 마치 보편적이며 누구나 자신의 각오와 능력에 의해 가능하다는 식으로 유포하는 것 자체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다. 제도의 권력과 권력의 재생산과정을 교묘히 덮는 일이라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이 이 사회에서 모든 일은 그렇게 제도의 산물이다. 현실은 제도에서 나오고 제도가 현실을 다시 재구성하고 재편한다. 그러나 제도는 빠른 현실의 변화를 미처 수용하거나 반영하지 못하고 굳기 쉽다. 오늘날 우리 미술대학의 커리큘럼과 교수방법은 여전히 지난 시간대의 완강한 그물에 걸려있어 보인다. 학생들에게 한결같이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후 순도 높은 예술혼과 정열을 지닌 예술가. 작가로 순교하기를 강요하는 지도 모르겠다. 죄다 작가로서의 길을 가라고 요구는 하지만 정작 작가로서 산다는 것, 제대로 작가활동을 하면서 버텨나갈 수 있기 위해 필요로 하는 능력과 힘을 부여해주지는 못하면서 명목론에 머무는 예술가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하기도 하다. 오늘날 미술대학이 무슨 역할을, 어떻게 해나갈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위기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졸업을 했다고 하지만 정작 무슨 공부를, 왜, 어떻게 받았는지는 난감하다. 당연히 졸업 후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되는 지도 막막한 것이 되었다. 직업이 되지 못하는 교육, 전문가를 육성하지 못하는 졸업장, 동시대의 미술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하는 죽은 커리큘럼, 거리로 내몰리고 차가운 실업자란 현실로 던져지는 수많은 졸업생들은 재주껏 살아 남거나 다른 직업을 갖거나 혹은 만만한 어린이 미술학원, 입시학원 혹은 취미생 몇 명을 받아 간신히 운영하는 그런 공간을 운영하는 것으로 자족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한 작가의 작업실에 갔을 때였다. 어둡고 눅눅한 아파트 지하에 위치한 작고 길다란 작업실 공간에서 하루종일 그림을 그렸던 그 작가의 이젤에 붙은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그림을 사랑할 것. 그림 앞에 오래 앉아 있을 것”
결국 작업이란 현실, 삶을 보다 철저하게 살아내면서 이를 형상화시키는 일이자 자신의 삶에서 유래한 모든 고민들을 미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미술을 분리시키지 않고 부단히 함께 안고 가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자명하지만 작업이 안되는 이유는 삶이 안풀려서이다. 동시에 현재의 미술제도, 교육 역시 큰 폭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졸업시즌을 맞이하면서 떠오른 단상들이다.
박영택
#2500
미술전공졸업자의 현실
박영택
2004. 02. 29.
박영택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688
미술평론가 박영택(b.1963)은 [얼굴이 말하다, 마음산책(2010)], [예술가의 작업실(2012)]을 저술하였고 아시아프 총감독(2010)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